자세교정의 달인, 나범주

아주 건강한 사람은 그를 잘 모른다. 아프지 않으니,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딘가 아픈 사람들은 늘 그의 주변을 맴돈다. 게임만 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생긴 학생, 몸이 점점 구부정해지는 은퇴한 교수님, 훈련 받다가 통증이 심해진 운동선수들이 자세교정 전문가로 이름난 나범주 소장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를 만나 어떤 자세가 건강에 좋은 것이며, 그 자세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자세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본다.

나범주 물리치료학을 전공한 그는 우리나라 1세대 도수치료사이다. 경험이 40여 년에 가까운 그는 자세교정의 달인이다. 백석대 대학원에서 도수치료특론 외래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도수치료연구학회와 도수교정연구회 학회장으로 있다. 현재 신우신경외과재활의학과 척추센터 소장이다. 저서로《NBJ진단과 교정》, 《척추전문인1,2》가 있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나범주 물리치료학을 전공한 그는 우리나라 1세대 도수치료사이다. 경험이 40여 년에 가까운 그는 자세교정의 달인이다. 백석대 대학원에서 도수치료특론 외래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도수치료연구학회와 도수교정연구회 학회장으로 있다. 현재 신우신경외과재활의학과 척추센터 소장이다. 저서로《NBJ진단과 교정》, 《척추전문인1,2》가 있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세가 바른 몸을 가지려고 합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똑바른 자세가 좋은 자세일까요?

어렸을 때 똑바로 앉으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자세가 좋지 않다며 똑바로 앉으라는 말을 계속 듣는 사람들이 꽤 있을 텐데요. “똑바로 앉아!”, “똑바로 서!”라는 그 말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오그라든 어깨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15도 상방으로 향하게 하면 ‘똑바로’가 되는 걸까요? 가끔씩 허리를 곧게 세워 반듯하게 걷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똑바로’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허리부터 폅니다. 그게 바른 자세라고 배워왔으니까요.

문제는 그 상태로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차려 자세로 10분은 견디지만, 1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힘이 빠지고 어깨는 아래로 처지면서 다시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갑니다. 곧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곧은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곧 자연스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앉을 때 허리가 의자와 수직 방향이어야 좋은 자세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예, 저는 수직선 같은 곧은 자세가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요? 우리 몸의 타고난 뼈대가 곧지 않거든요. 18세기 유명한 해부학자들 중에 네덜란드의 알비누스Albinus라는 분이 있어요. 그가 1747년에 출판한 책은 지금까지도 해부학 교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요. 그 책의 삽화를 보면, 우리 몸에서 직선 형태의 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6개나 되는 곡선 형태의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인체의 골격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제가 교정을 하려고 뼈를 만져보면 사람마다 모양이 아주 조금씩 달라요.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봐요. 동일인도 건강 상태나 나이에 따라 뼈의 모양이 약간씩 변하고요. 인간은 기계로 복제된 제품이 아닙니다.

좀 더 설명을 드리면, 우리 몸의 뼈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요. 성인 한 명의 뼈를 모두 합해도 무게가 고작 9킬로그램 정도지만 1톤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만치 뼈는 강합니다. 사람의 두뇌 이상의 지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첨단 로봇을 보세요. 걸음걸이는 어떻죠? 넘어질 듯 부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서 있을 때엔 무릎이 꺾이지 않지만, 걷거나 앉으려고 하면 바로 무릎 관절이 풀어지면서 140도까지 구부러지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요. 현 상태의 로봇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뼈의 기능이죠. 사람 몸의 뼈는 자로 잰 듯한 직선 형태가 없습니다. 그러니 직선 형태의 똑바른 자세를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없겠죠?

지금까지 해부학 교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알비누스의 책에 그려진 삽화. 왼쪽은 해부도, 오른쪽은 근육도이다. 삽화를 보면 목 끝부분에 있는 척추와 흉곽과 엉덩이 사이에 있는 척추에서 수직에 가까운 뼈를 관찰할 수 있을 뿐, 다른 뼈들 중에 수직 방향은 없다. 사진제공 미국국립의학박물관 홈페이지
지금까지 해부학 교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알비누스의 책에 그려진 삽화. 왼쪽은 해부도, 오른쪽은 근육도이다. 삽화를 보면 목 끝부분에 있는 척추와 흉곽과 엉덩이 사이에 있는 척추에서 수직에 가까운 뼈를 관찰할 수 있을 뿐, 다른 뼈들 중에 수직 방향은 없다. 사진제공 미국국립의학박물관 홈페이지

그러네요. ‘똑바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좋은 자세란?

내가 가장 편한 자세가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는 게 편하면 그게 그 사람에게 좋은 자세이고, 다리를 꼬고 앉아야 편하면 그 자세가 그 사람에게 좋은 겁니다.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자는 게 좋으냐고 제게 자주 물어봅니다. 내 몸이 편한 자세로 자면 된다고 합니다. 척추 후만증 환자는 옆으로 누워 자는 게 편할 것이고, 척추 전만증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무릎 아래에 쿠션을 대고 자면 더 편하겠죠.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어떤 자세든 50분마다 바꿔주는 습관을 갖는 겁니다. 비딱하게 앉든, 똑바로 앉든 그 자세가 당장 몸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정지된 상태로 몇 시간씩 있으면 근육과 뼈대가 굳어집니다. 부동의 자세는 우리 몸의 건강에 매우 나쁩니다.

자세 바꿔주는 습관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깊이 잠들었을 때엔 일부러 동작을 바꿀 수 없지만, 의식이 깨어 있을 때엔 수시로 몸을 움직여주세요. 습관화를 위해 스마트폰의 알람 기능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학교 시스템도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으로 되어 있잖아요. 어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꼼짝 않고 예습이나 복습을 하는데, 저는 그때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화장실에 가는 동작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50분 앉아 있다가 일어섭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걷고 뛰고 계단을 성큼 오르내리고, 멈춰 섰다가 뒤로 돌아 회전하고…. 매우 다양한 자세와 난이도가 다른 동작들이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과정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낼 때 집중과 휴식의 시간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건강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오랜 임상 경험을 쌓은 그는 한번 본 환자의 얼굴은 가물거릴 때가 많지만, 뼈를 만져보면 금방 기억해낸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오랜 임상 경험을 쌓은 그는 한번 본 환자의 얼굴은 가물거릴 때가 많지만, 뼈를 만져보면 금방 기억해낸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대단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동작을 단순히 바꿔주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학생 시절엔 ‘국민체조’가 있었어요. 체육 시간이나 점심 후에 학교에서 국민체조를 시켰죠. 팔다리 운동에서 시작해 숨 고르기로 마무리를 하기까지 호루라기 구령에 맞춰 따라 하는 기본 동작들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짧은 시간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국민 스트레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져서 단체 운동보다 개인 교습을 선호하지만, 국민체조 같은 맨손 운동의 일상화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자세를 자주 바꾸는 게 건강에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엔 내리누르는 중력이 작용합니다. 우리 몸도 그 영향권 안에 있고요. 중력은 척추에 큰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상하좌우로 균형감을 갖는 스트레칭을 하는 이유는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입니다. 오랫동안 중력을 받게 되면 사람의 키가 줄어들고 피부가 처지는 노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로 인해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따라서 동작을 자주 바꿔 중력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갈 때 사람들의 행복지수도 올라갈 수 있다고 봅니다.

흔히들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의 독소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어줄 운동을 합니다. 소마틱스, 요가, 필라테스가 그런 예인데, 이 운동들은 몸동작의 변화로 마음과 정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치유까지 병행합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이 자세가 어떤지 체크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예방의학 차원에서 자세 체크는 필요합니다. 우리 몸이 자라나 성장의 정점을 찍고 나면 다시 퇴화되는 내리막길로 들어섭니다. 누구나 겪는 노화의 일반적인 과정이지요. 큰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생에 3번 정도 자세 체크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5~6학년 때입니다. 이 시기에 점검을 받으면 성장 속도와 함께 앞으로 몸의 방향을 미리 잡아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신체 성장이 끝나는 25~37살 사이로, 이때 허리 통증과 몸의 불편함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기는 60세 이전입니다. 이 나이가 되면 관절이 노화되면서 주변 근육과 인대, 힘줄도 점점 약해집니다. 따라서 1백 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노후예방 차원에서 자세 체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척추 질환이 생긴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척추 질환이 생긴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 박가원 객원기자

건강 유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겉모습이 똑바르다고 해서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죠. 우리 몸은 태생적으로 ‘똑바로’가 안됩니다. 그런데도 자세를 똑바로 만들어달라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똑바로’라는 관념에 너무 매여 있어서 그래요. 우리가 똑바르다는 것은 심미적인 관념일 뿐입니다. 똑바르다는 것은 곧은 상태의 지속을 말하는데, 달리 표현하면 움직임이 거의 없는 부동의 정적 상태입니다. 인간은 식물이 아닙니다. 움직여야 사는 동물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똑바로’의 관념을 바꾸는 게 근골격 건강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뼈대를 감싸고 있는 근육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운동을 매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잃으면 속상해 해도 자기 몸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건 별로 아까워하지 않아요. 우리 몸에 근육은 600개가 넘는데 이 근육들이 나중에 약해진 뼈대를 대신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은 곡선이다. 반듯하게 앉고, 똑바로 서 있으려는 것 자체가 타고난 형태를 거스르는 것임을 인터뷰하면서 알았다. 생각해보면 몸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살아가는 인생의 길도 모두 곡선과 같다. 구불구불한 산길처럼, 오르내리고 에둘러가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상황에 투덜거리지 말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자세가 아닐까 싶다.

“임상에서 고민하고 느껴온 경험들을 기초로 서술한다. 나는 몸 치료보다는 마음 치료를 지향하고, 기술 치료보다는 환자의 편안함을 추구해왔다. 보다 더 깊이, 보다 더 멀리 보기 위해 한 번 더 촉진觸診하고 한 번 더 생각한다.” 나범주 소장이 쓴 책의 머리글에서, 그가 여느 자세교정 전문가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보였다. 그는 겉모습이 보기 좋은 것에 치료의 중심을 두지 않고, 마음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을 선택해온 것이다. ‘편한 자세가 곧 좋은 자세’라는 그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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