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 시간이 아직 멀어서 공항 대기실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신문을 펼치려고 할 때, 저 앞에 마주한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 낯익어서 보니, 옛날에 나를 가르치신 법학과 교수님이셨다. 내가 시험을 준비할 때뿐 아니라 변호사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고마운 분이셨다. 뜸하게 찾아뵙긴 했었지만, 다시 만난 그날은 몇 년이 넘도록 연락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반가운 마음에 교수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은 학회에 가시는 길이었고, 반가워하시면서 내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셨다.

비행기 탑승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도착하면 학회에 같이 가는 일행들을 먼저 보낼 테니 공항 커피숍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차를 마시던 교수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박 변호사, 그런데 왜 공부를 다시 안 해?” 지방의 국립대 로스쿨 학장으로 계신 교수님은, 시간이 더 지나면 공부할 기회를 얻기 힘드니 지금이라도 빨리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내비치셨지만, 이번에는 굉장히 적극적이셨다. 아예 석박사 통합과정을 한번에 밟으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지적재산권 분야에 탁월한 식견과 경험이 있으셔서 언젠가 교수님 밑에서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공부한 걸로 만족하고 있었다. 이미 15년 전에 개업을 해서 먹고 사느라 실무만 했고, 학교를 간다고 해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누가 대신해 주지도 않을 테니, 시간을 따로 빼서 학교에 다니는 건 내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당신이 정년이 되기 전에 내가 학교에 들어와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날 내 입에서는 대답하기 애매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탄성 비슷한 소리만 나왔다.

“아, 네… 교수님…”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의 안전지대에서 나온 대답이다. 그런데 이날부터 교수님은 대학원 입학 기간만 되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박 변호사, 원서 아직 안 냈어?” 내 대답은 2년 동안 똑같았다. “아, 네… 교수님…” 그렇게 다시 2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결국 원서를 냈다. 도대체 내가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왕 남은 24년(나의 48세~72세)을 가장 치열하게 살기로 한 것을 떠올리며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다.(이 생각은 투머로우 2022년 11월호에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나의 대학원 공부가 시작됐다. 매주 꼬박꼬박 수업을 듣고 발표를 하려고 학교에 갔다.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가족만 알았기 때문에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처럼 겉은 평온해 보여도 물속에서는 정신없이 발을 동동거리며 지냈다. 힘들었다. 공부를 한다고 내 일을 누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었고, 게다가 투머로우 잡지를 돕기로 한 시기와도 일치한데다가, 기회가 되면 상사중재商事仲裁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틈틈이 관련 공부까지 병행해야 했다. 거기에 보고 싶은 책과 하고 싶은 것은 왜 그리 많은지. 공부에 대한 마인드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글을 썼고, ‘서초동 박 변호사’라는 간판을 걸고 공부 방법에 대한 유튜브 강의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내가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지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거나 다른 분들이 나를 믿고 맡긴 일이라 감사하면서 산적해 있는 일과 공부를 병행해갔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이번이 마지막이었고, 당장 큰 결과를 얻을 순 없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분야로 들어가는 데 초석을 마련한다는 생각에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묵혀두었던 변리사 자격을 다시 살렸다.

무사히 2년이 지났다. 시간이 없어서 다음 학기로 미루려 했던 논문도 거의 마무리하였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 나를 쳐다보던 아내는 “아이들이 저렇게 공부해야 하는데”라며 씁쓸해할 때가 많았고, 내가 발표를 준비하고 있으면 날더러 ‘우리 집 큰아들’이라고 불렀다.

특별히 내게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굳이 학교에 다녀야만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기억하시고 더 이끌어주시려는 교수님이 감사했다. 정말이지 교수님은 매 학기마다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공부를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게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공부만 가지고 하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면 할수록 부족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내가 부족한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밝은 새해다. 나는 새해가 밝았다는 것보다 ‘밝은 새해’라는 표현이 좋다. 어렵고 힘들어서 포기한 게 있다면 이제 1월이니 다시 한 번 일어나 달려가보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글 박문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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