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국가대표, 강민혁

배드민턴 남자 복식 국가대표 강민혁 선수(25세, 삼성생명)에게 2023년은 희비로 가득한 한 해였다. 8월 28일, 올림픽 다음으로 치는 BWF(Badminton World Federation, 세계 배드민턴 연맹)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지만 이후의 경기들에서는 번번이 패배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렇게 아쉽게 2023년을 마무리할 것 같았지만, 모든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이 난 게 아니듯, 지난 12월 17일, 그해 최강자를 가리는 BWF월드투어 파이널(배드민턴 국제대회 한 시즌을 정리하는 대회로, 배드민턴 경기의 ‘왕중왕전’)에서 세계 1위를 꺾고 ‘왕중왕’에 등극했다는 낭보가 울렸다. 몇 개월의 부진을 씻고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한 그의 시선은 이제 2024 파리 올림픽으로 향한다. 생애 최고의 순간, 최고의 감동을 꿈꾸며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대망의 올림픽을 향해 정조준하는 그의 심기일전을 들어보자.

강민혁(사진의 왼쪽) 1999년생. 배드민턴 남자 복식 세계랭킹 6위. 2017년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다. BWF 월드투어 파이널 2023 남자복식 결승 승리로 2023년을 4승을 거두며 마무리했다. 이제 대망의 파리 올림픽을 향해 전진 중이다. (사진 강민혁)
강민혁(사진의 왼쪽) 1999년생. 배드민턴 남자 복식 세계랭킹 6위. 2017년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다. BWF 월드투어 파이널 2023 남자복식 결승 승리로 2023년을 4승을 거두며 마무리했다. 이제 대망의 파리 올림픽을 향해 전진 중이다. (사진 강민혁)

반갑습니다. 2023년의 마지막 대회를 승리로 마무리하셨어요.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는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월드투어 파이널에서 마음을 많이 비우고 경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예선전 첫 경기 때 덴마크 선수들에게 지게 되면서 결과보다 플레이 자체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매 경기를 치렀어요. 차근차근 결승까지 올라갔고 세계 랭킹 1위 량웨이컹-왕창 조(중국)를 만났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힘과 스피드도 좋아서 짧은 시간 안에 무섭게 성장한, 떠오르는 신예였죠. 지난 1월 처음으로 맞붙은 경기에서 진 경험도 있었고, 이번 대회가 중국에서 치러진 홈경기였기 때문에 분위기 면에서 저희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결승전 당시 어떤 상황이었어요?

1, 2세트 모두 치열한 접전이었습니다. 1세트 17-17 동점상황에서 라켓 줄이 끊어진 동료 서승재 선수가 순발력 있게 곧장 라켓을 바꿔 들고 코트로 돌아왔어요. 바로 73번의 랠리(볼을 주거니 받거니 계속 치는 상태.)가 이어지는 숨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죠. 거기서 극적으로 1점을 따냈고 4 연속 득점하면서 1세트를 승리하게 됐어요. 2세트에서는 중국 조가 무섭게 몰아치면서 먼저 20점을 올리며 세트 포인트(세트의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1포인트)에 도달했어요. 저희는 끈질기게 따라붙어 20-20 동점을 만들었고요. 그때 상대 선수들이 마음이 급해지면서 실수를 연달아하더라고요. 우리는 더 냉정하고 집중력 있게 플레이를 했고 연속 6득점을 올리며 승리하게 됐습니다.(월드투어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 복식조가 우승한 것은 2014년 이용대-유연성 이후 9년 만이다.) 극적인 역전승으로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함께 고생해 주신 감독님, 코치님, 트레이너·영상 분석 선생님들 그리고 항상 아낌없이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팬들께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

5살 때부터 배드민턴 채를 잡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국가대표에 발탁이 되었나요?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어요. 5살 때부터 부모님 따라 체육관이나 배드민턴 클럽에서 동작을 익혔고,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지게 됐어요. 처음엔 걱정하셨지만 제 의지와 진심을 본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엘리트 선수를 키우는 학교로 전학 가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요. 흥미가 컸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쳐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습니다. 배드민턴은 남/여 단식, 남/여 복식, 혼합 복식 이렇게 5종목으로 나뉘는데 이중에서 저는 현재 서승재 선수(BWF 2023 올해의 남자 선수)와 함께 남자 복식 국가대표로 뛰고 있습니다.

2023년의 경기들을 리뷰해 본다면요?

배드민턴은 시즌, 비시즌 이런 개념이 없어요. 계속 시즌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대회가 많은 편이에요. 이번 해에 26여 개의 대회에 출전한 것 같아요. 특히 2023년 5월부터 2024년 5월까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하는 기간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하고 있어요. 개인이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상위 10개 대회 점수를 합산해서 랭킹이 정해지고 출전권이 주어지는 시스템이거든요. 지난 5월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8월 호주오픈과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마지막 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돼 기쁘고 좋지만 이게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웃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죠.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최종 목표, 올림픽을 향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호주오픈 우승 직후. 코치, 서승재 선수와 함께 메달과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형성된 믿음의 관계는 길고 힘든 여정 속에서 큰 힘과 위안이 된다. (사진제공 강민혁)
지난 8월 호주오픈 우승 직후. 코치, 서승재 선수와 함께 메달과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형성된 믿음의 관계는 길고 힘든 여정 속에서 큰 힘과 위안이 된다. (사진제공 강민혁)

대회가 없는 날에는 진천선수촌(대한민국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훈련을 위해 설립된 합숙 기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데요. 선수촌 생활은 어때요?

새벽 5시 40분에 기상해서 6시부터 7시까지 아침운동을 해요. 이때는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넓은 운동장에 한데 모여 에어로빅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이후 종목별로 러닝을 하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등 기초운동을 해요. 배드민턴 훈련은 오전, 오후 3시간씩 이뤄지고요. 저녁에는 개인 시간이에요. 나머지 운동을 하거나 빨래, 청소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해요. 저는 훈련을 마치고 사우나에서 반신욕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걸 큰 낙으로 삼고 있어요.(웃음)

간혹 한 곳에만 갇혀 있어 답답하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훈련과 경기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해도, 한창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늘 치열하고 타이트한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를 앞두고는 더 긴장된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가야 할 분명한 길이 있어서 뚜렷한 목표 앞에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많아요. 지금은 내가 뿌리를 내려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많이 고되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분명 좋은 결실이 맺히리라고 믿습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큰 시기예요. 몸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세요?

짧으면 40분, 길면 1시간 20분 정도 경기를 뛰는 편인데 공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상당해요. 셔틀콕의 순간 최대 속도가 350㎞에 이른다는 걸 혹시 아세요? 구기 스포츠에서 가장 빠른 속도랍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도 많아지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고 특히 부상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해서 기초체력을 높이고 부상을 방지하려고 해요. 근육이 너무 많으면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배드민턴에 맞게 웨이트를 하는 편이고요. 해외 일정도 많다 보니 먹는 게 일정치 않아서 꼭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있어요.

심적으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 철저히 구별하려고 합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정말 이기고 싶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자극과 독려가 되는 건 맞지만, 결과와 승패처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해 버리면 굉장한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따라와요. 저도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보니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령 체력을 키우고 기술을 연마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내 소관이 아닌 일은 분명히 구분해서 하나님께 맡기려고 해요. 최근엔 잠자기 전 성경을 읽고 있는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마가복음 10장의 말씀이 굉장한 힘이 됐습니다. 결과는 내려놓고,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의 노력을 하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복식 선수로서 동료와의 호흡이 중요할 것 같아요.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동료와 호흡이 잘 맞을 때 그 이상의 기량을 같이 낼 수 있는 것이 복식입니다. 단식보다 훨씬 빠르고 공격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동료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는 종목이죠. 2년 전부터 함께 뛰고 있는 서승재 선수는 경험과 실력을 갖춘 정말 뛰어난 선수예요. 카리스마와 배려심도 있고요. 제가 플레이를 잘할 수 있도록 리드해 주고, 후배가 먼저 말을 꺼낼 수 있는 편안함도 만들어줘서 속마음이나 필요한 사항을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있어요. 또 형은 왼손잡이이고, 저는 오른손잡이라 복식에 유리한 편이에요. 형은 뒤에서 스매싱이나 공격적인 플레이를 맡고, 저는 앞에서 네트 플레이를 하거나 세밀한 컨트롤 역할을 하려고 해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잘하는 부분은 믿어주고, 존중하고 신뢰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소년처럼 앳된 얼굴과 조용한 성품을 지닌 강민혁 선수는 코트 위에만 서면 눈빛이 강하게 돌변하는 반전 모습을 보인다. (사진 박종도 기자)
소년처럼 앳된 얼굴과 조용한 성품을 지닌 강민혁 선수는 코트 위에만 서면 눈빛이 강하게 돌변하는 반전 모습을 보인다. (사진 박종도 기자)

감독과 코치에게는 무엇을 중점으로 배우고 있나요?

감독님은 기초가 되는 체력을 굉장히 중요시하세요. 체력이 있어야 기술을 구사할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정신력도 발휘될 수 있다고 보시기 때문에 체력 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세요. 또 코치님은 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세요.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면을 고민해 주시고 엄마처럼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제가 중심을 잃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배드민턴 선수로서 가장 힘든 시간은 언제였나요?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우승한 이후가 아닐까 싶어요. 워낙 큰 국제대회여서 쟁쟁한 선수가 많았고 대진표도 좋지 않아 기대할 수 없었는데 금메달을 따게 돼 정말 좋았죠. 하지만 이후의 경기들에서 부진이 지속되자 극과 극의 상황에 심한 슬럼프가 왔습니다. 특히 올림픽을 앞두고는 패배가 더 크고 민감하게 다가오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져요.

그 시간들을 통해 저를 들여다보게 됐어요. 상황과 감정이라는 것은 늘 변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길을 잃고 있는 제 자신이 어리석어 보이더라고요. 이제는 초점을 내가 이 순간 얼마나 최선으로 임했고, 성실히 임했는지 거기에 두려고 해요. 경기에 지면서도 배우려 하고, 어떻게 하면 필요한 것을 찾고 발전할 수 있을까 그것에만 집중하려고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초심이었어요.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우쭐대고 들떴던 것 같아요. 이번 월드투어 파이널에서 우승은 했지만 그게 내 것인 줄 알고 취해 있으면 그건 오만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해요.

하계 올림픽(2024. 7. 26~8. 11)을 준비 중인 프랑스 파리의 풍경.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커먼즈
하계 올림픽(2024. 7. 26~8. 11)을 준비 중인 프랑스 파리의 풍경.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커먼즈

스포츠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요?

손흥민 선수예요. 해외 빅 리그에서 뛰고 있고 거기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죠. 그럼에도 훈련이나 행실 모든 면에서 철저해요. 항상 성실한 태도와 낮은 자세로 한결같이 축구를 대하는 손흥민 선수의 마음가짐은 같은 운동선수로서 정말 본보기가 돼요.

요즘 일반인 사이에서 배드민턴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해요. 한국 배드민턴의 황금세대 선수들 덕분이라는 기사를 봤어요. 이 스포츠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배드민턴의 규칙은 배우기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어요.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고요. 또 다른 스포츠에 비해 부상 위험이 낮고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즐길 수 있는 강점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가족, 친구들하고 손쉽게 운동을 즐길 수 있어 친목과 교류에 좋아요. 또 신체적인 모든 운동신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신 운동에 아주 효과적인 스포츠입니다.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배드민턴을 포함한 모든 일에는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잘할 때가 있으면 못할 때가 있어요. 힘들 때가 있으면 잘 될 때가 있고요. 영원히 잘할 수도, 영원히 못할 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패하고 좌절된 상황이 올지라도 계속할 수 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파리 올림픽에도 이 마음가짐으로 도전할 것입니다.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시속 350Km.
그가 숱하게 받아치는 배드민턴 셔틀콕의 순간 최대 속도이다. 강력하게 날아오는 공의 속도에 맞서기 위해 수십만 번의 리시브와 수백만 번의 스매싱을 반복해 온 강민혁 선수. 오늘도 아프지만, 힘들지만, 자신을 극한의 세계 중심으로 내몬다. 겁먹고 주저 앉기보다 한 발짝 내딛는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그가 쏟은 땀과 투혼 속에는 승과 패, 매달 색깔로 정의될 수 없는 긴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최선과 열정으로 쌓아올린 그의 드라마는 올해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재현되어, 또 한 번 국민들 마음에 감동과 전율을 안겨줄 것이다. 눈부신 성적이 아닌 도전 그 자체의 눈부심으로.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도전, 또 도전, 다시 한번 도전할 거예요. 이러한 걸음들이 제 삶의 방향성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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