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고치고 다듬는 퇴고推敲는 작가마다 하는 법이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숙성’한다는 점이다. 초고를 쓴 뒤 한참 내버려둔다. 기간은 작가마다 다르다. 누구는 몇 주 동안, 누구는 몇 달 동안, 누구는 초고를 쓴 기간만큼 잊고 지내다가 다시 꺼낸다. 원고를 거의 잊어버릴 정도, 낯설게 느낄 정도가 될 때까지 내버려둔다. 그런 상태가 되면 오자를 고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 정도만 손본다.

일정 기간 동안 원고와 거리를 두는 까닭은 ‘낯설게 하기’의 과정이다. 베스트셀러 《7년의 밤》,《완전한 행복》을 쓴 정유정 작가는 일주일 쉬고, 초고를 역순으로 읽으면서 퇴고한다. 장 단위로 끊어 뒤에서부터 읽고 정리한다. 예를 들면 에필로그 → 3부 3장 → 3부 2장 → 3부 1장 → 2부 3장… 역순으로 퇴고한다. 원고를 낯설게 느끼기 위해서다. 그는 거꾸로 읽으면서 고치면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비문과 오문 찾기도 한결 쉽다고 말한다. (정유정 지승호,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은행나무, 2018년 6월, 252쪽)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을 쓴 작가 김민섭은 “글 쓴 걸 서랍 안에 두고… 사흘쯤 뒤에 다시 꺼내 보면 ‘내가 이런 글 쓰고 밥 먹었구나.’ 싶어요.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부족한 부분이 확 보이는 거죠. 그래야 그 부분을 고치고 채울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뉴시스, [이색 문화人-⑯] ‘대리기사’된 작가 김민섭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 2016년 12월 18일)

퇴고하는 법은 작가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소리 내서 읽기’와 ‘프린트해서 확인하기’이다.

동물행동학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 인문학자인 한양대 정민 교수, 물리학자인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소리 내서 읽으며 퇴고하는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소리 내서 읽을 때 리듬감이 있어야 제대로 된 글이다. 부드럽게 넘어가야 한다. 그런 글은 읽고 듣기에 편하다. 눈으로만 읽으면 스쳐 지나가 놓치기 쉬운 오탈자를 소리 내서 읽을 때 한결 쉽게 잡아낼 수 있다. 최재천 교수는 “소리 내서 읽으면서 제가 들을 때 약간 불편하면 가차 없이 집어던지고 다시 씁니다. 읽으면서 숨이 차면 그건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읽으면서 아무 어려움 없이 그렇게 흘러갈 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고칩니다.”라고 말했다. (최재천, 독서는 ‘일’이어야만 한다(최재천 교수 레전드 강연), 유튜브(체인지그라운드), 2020년 9월 12일)

아직도 육필肉筆을 고집하는 작가들이 있기는 하다. 조정래 작가는 사인펜, 김훈 작가는 연필로 쓴다. 대부분 작가는 컴퓨터로 글을 쓰므로, 모니터에 익숙해져 있다. 초고 쓰기, 교정, 교열과 퇴고까지도 모니터를 보면서 하는 작가들이 많다.

글은 눈에 익숙해지면 잘못을 찾기가 힘들다.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같은 글을 계속 보면 오류가 있어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환경과 조건을 바꾸면 잘 보인다. 모니터가 아닌 종이에 프린트해서 보면 보이지 않던 오류가 확연히 드러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작가들은 작업 시간대, 장소를 바꿔 퇴고하기도 한다.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선 글이 달리 보이기 때문에 퇴고의 효율이 높아진다.

퇴고할 때는 글이 맞춤법에 맞는지 따지고, 전체 구조도 손봐야 한다. 맞춤법에 맞게 교정하고, 사실에 맞게 교열하고, 더 매끄럽게 윤문潤文하는 게 퇴고의 주요 목적이다. 또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맥락과 흐름,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헤아려야 한다.

교정교열 전문가들은 원고 하나에만 매달려 수정하지 않는다. A원고를 수정하다가 B원고를 고치고, C원고를 보거나 다시 A원고로 돌아간다. 같은 글만 계속 보면 눈이 그 글에 익숙해져 잘못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탈자는 글 쓰는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필자지상사筆者之常事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퇴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우진, 《글쓰기 도구상자》, 동아시아, 2017년 7월, 351쪽)

오탈자는 워드프로세서의 기능 향상으로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아래아한글만 하더라도 맞춤법 기능이 좋아져 글쓰기에 큰 도움을 준다. 특정 단어의 띄어쓰기는 자동으로 되는가 하면, 미묘한 표현을 가려 빨간 줄로 오류를 알려주기도 한다. 포털과 어문연구기관들이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의 기능도 고도화돼 이를 잘 활용하면 어지간한 문제는 걸러낼 수 있다.

저자는 글의 맥락과 흐름, 논리적 타당성을 더 엄밀히 살피는 게 낫다.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글의 완성도는 초고를 얼마나 손봤느냐에 달렸다. 사전에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퇴고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퇴고는 보통 세 번 정도 한다. 물론 정해진 숫자는 아니다. 정재승 교수는 80만 부가 판매된 《과학 콘서트》를 쓸 때 “스무 번쯤 읽고 퇴고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준봉, [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9)] 80만 부 팔린 『과학 콘서트』 저자 정재승, 월간중앙 202009호, 2020년 8월 17일)

퇴고할 때 문장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제대로 제시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논리적 흐름이 매끄러운지 살펴야 하고, 맞춤법이나 팩트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주술 관계를 따져 비문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색한 표현, 식상한 표현을 고치고, 중복 부분, 군더더기를 지워야 한다. 놓치고 빠뜨린 것을 채워 넣 고 미진한 부분은 설명을 보태야 한다. 의문이 남는 문장이 있어서는 안된다. 인용은 적절한 형식으로 처리됐는지 체크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의견을 듣기도 해야 한다.

미국 작가 벌린 클링켄보그는 《짧게 잘 쓰는 법》에서 가장 손쉬운 퇴고는 ‘삭제’라면서 참고할 몇 가지 퇴고법을 제안했다. 다음은 그가 권유하는 퇴고법이다.

되도록 간결하게_단어를 더하지 말고 덜어내세요.

되도록 직접적으로_얼버무리거나 에두르는 표현은 삼가세요.

되도록 단순하게_복잡한 구조와 어려운 단어는 피하세요.

되도록 명료하게_매 순간 모호함을 경계하세요.

되도록 리듬감 있게_글 전체가 리듬을 갖게 하세요.

되도록 문자 그대로_불분명한 수사를 고쳐 쓰세요.

되도록 암시를 활용하여_문장이 침묵으로 말하게 하세요.

되도록 변화를 통해_항상 명심하세요.

되도록 과묵하게_많이 늘어놓지 마세요.

되도록 세상을 향해_여러분의 세상을 발견하세요.

되도록 개입함으로써_조용하지만 굳건한 권위를 토대로 쓰세요.
(벌린 클링켄보그 지음, 박민 옮김, 《짧게 잘 쓰는 법》, 교유서가, 2020년 8월, 148, 191, 192쪽)

퇴고했다고 해서 ‘완성품’은 아니다. 글쓰기는 ‘마감’에 따라 그칠 뿐, ‘완성’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작가들이 발표한 작품도 다시 퇴고해 개정작을 내는 까닭이다.

《사람의 아들》은 1979년에 중편소설로 처음 세상에 발표됐다. 저자 이문열은 이 중편을 1987년 장편으로 개작해 내놓았고, 2020년 5월에는 다시 개정판을 출간했다. 다섯 번째 개정판이다. 이문열은 “장황하고 공허한 문장을 손봤고 액자소설임을 고려해 서체를 달리했으며 미주尾註를 각주로 배치해 이해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의 아들》 다섯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이번 생의 마지막 개정판’이라고 했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김유태, [매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이문열 “반세기 허덕인 질문 ‘神 … 장황·공허는 들어내고 싶었다.” 매일경제, 2020년 5월 19일)

* ‘글쓰기’ 12회 연재를 마칩니다.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학생, 직장인, 주부들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책 쓰기에 관해 강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건우 필자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 기사를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보내주신 독자분들께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편집자 주

글쓴이 이건우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 《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 《누구나 책쓰기》가 있고,《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글쓰기와 책 쓰기에 관한 강연 문의 이메일 eeleeboo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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