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루벤스, 칼 라르손, 비고 요한센

메리 크리스마스! 이맘때쯤 전 세계의 도시와 마을들은 화려하게 단장한다. 빨강, 초록의 알록달록한 조명과 거대한 트리장식들, 거리에 가득 울려 퍼지는 캐럴과 구세군의 종소리…. 한껏 멋있게 꾸며진 곳은 ‘셔터 본능’을 자극하는 핫플레이스가 되고, 연말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 크리스마스는 축제가 분명하다.

크리스마스가 축제, 연휴, 이벤트의 성격이 강해질수록 아쉬운 건 크리스마스에 담긴 진정성이 사람들 마음에서 희미해지는 것이다. 원래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예배mass’라는 뜻이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며 본래 의미이다. 미술계에서도 많은 화가들이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가치를 화폭에 담아왔는데 대표적으로 렘브란트와 루벤스는 그리스도 탄생을 경배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성을 그림에 담았다.

렘브란트, ‘경배하는 목자들’, 1646년, 오일에 캔버 스, 65.5×55㎝, 런던 국립 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렘브란트, ‘경배하는 목자들’, 1646년, 오일에 캔버 스, 65.5×55㎝, 런던 국립 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빛의 화가’로 불리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Rembrandt van Rijn(1606~1669)은 1646년에 ‘경배하는 목자들’을 그렸다. 작품 배경이 되는 성경 누가복음 2장을 보면, 당시는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로 횡포와 압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고통을 겪는다. 자신들을 어둠과 고난에서 구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는 상황.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하러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 도착한 날 마리아의 진통이 시작된다.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방을 내주지 않고,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는다. 이때 들판에서 밤새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 곁에 천사가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전하고, 한걸음에 달려간 목자들은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께 경배한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깊은 밤이 내린 어두운 마구간 안에 평화롭고 은은한 빛이 보인다. 한 줄기 빛이 보자기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비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빛으로 충만한 예수에게 향해 있다. 아기를 향해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기도를 드리는 목자의 모습이 한없이 경건하다. 바로 옆에서 역시 무릎을 꿇고 앉은 목자는 손을 올려 놀라움의 탄성을 자아낸다. 더 오른쪽에 서 있는 나이 든 목자는 등불을 들고 아기 예수를 조용히 목도한다. 마치 그리스도가 발현하는 빛 앞에서 자신의 등불이 너무 초라하고 미약해 부끄러움을 느낀 듯하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한복음 9:5)고 했다. ‘빛’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아기 예수에게서 나오는 빛은 밤새 양떼를 지키느라 노곤했을 목자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모든 이의 얼굴을 은은히 비춘다. 바깥은 여전히 짙은 암흑이어도 이들을 비추는 빛은 따뜻하고 아름답기만하다. 그 강한 대조가 작품에 깊이와 감동을 더한다. 이 땅의 절망과 고난이 크다 해도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건, 어둠을 이기고 있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건 신의 그림자가 깃들었을 때이다.”라고 말했던 렘브란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깊은 영성을 지닌 예술가였다. 자화상, 인물화, 풍경화, 역사화도 많이 그렸지만 가장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성경의 내용을 그린 성화(기독교 성경의 내용을 그린 종교화). 그는 성경 전권을 무려 1천여 점에 가까운 성화로 남겨 미술 역사상 독보적인 화가가 되었다.

빛과 어둠의 대조를 사용한 렘브란트의 독특한 화법은 성화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데 세상이 내뿜는 절망과 어두움, 그것을 빛과 사랑으로 이겨내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비되면서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다. 그것은 그의 생애와도 겹쳐 있다. 렘브란트 삶에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많았다. 재정의 파탄, 아내와 자식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 줄기 빛, 그리스도 때문이었으며 이 빛은 그의 영혼을 밝혔고 작품에서도 짙은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형상화된다. 삶과 예술의 일치는 작품의 감동을 더 승화시킨다.

다시 2천 년 전 유대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으로 가보자. 목자들에 이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온 이들이 있었다. 밤하늘의 유난히 크고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발견하고, 그 별을 따라 마구간에 찾아온 동방박사들이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의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는 성경 마태복음 2장의 바로 그 이야기를 담았다.

루벤스, ‘동방박사의 경배’, 1626~1629년, 오일에 캔버스,  283×219㎝,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루벤스, ‘동방박사의 경배’, 1626~1629년, 오일에 캔버스,  283×219㎝,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위의 그림 가운데에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가 보인다. 좌측은 마리아와 요셉이, 우측은 세 명의 동방박사와 그 뒤로 그들을 시중드는 무리들이 보인다. 박사들은 예물을 들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있다. 보배함을 열어 예물로 드린 것은 ‘황금’, ‘유향’, ‘몰약’인데 이것은 각각 ‘왕’, ‘제사장’,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왕이자 제사장이며,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음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씻고 3일 만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예언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를 비로소 보게 된 그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가진 그 어떤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으리라. 최고의 것으로 경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렘브란트와 비교해 보면, 루벤스의 화풍은 웅장하고 역동적이며 화려하기까지 하다. 장중함, 풍요로움, 활력을 특징으로 한 바로크 양식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바로크 화풍은 유명세가 대단해 귀족들이나 유명 가문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였으며 궁정화가로도 큰 활약을 한다. 그와 비슷한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렘브란트는 사조를 따르기보다는 고유의 화풍으로 어둠과 대비되는 빛에 대해 탐구하고 성찰했다. 이런 점에서 자주 비교되기도 하는 두 사람이지만 공통적으로 성경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목했다.

분위기를 바꾸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의미를 포착한 작가들을 소개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함께 모여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먼저 북유럽의 행복전도사,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칼 라르손Carl Larsson(1853~1919)의 작품 ‘크리스마스이브’를 보자.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이브’, 1904~1905년, 수채화, 보니에스카 초상화컬렉션 소장.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이브’, 1904~1905년, 수채화, 보니에스카 초상화컬렉션 소장.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위의 그림 한가운데 길쭉한 식탁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흐르는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데 음식을 구경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북적북적한 파티를 연 모습이다. 소리가 들리는 영상이라면 집안 가득 캐럴이 울려 퍼지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과 지인들의 인사와 수다로 시끌벅적하고,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생생히 들릴 것 같다. 이브의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아침. 왼쪽의 작품 ‘크리스마스 아침’은 각자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몰두해 있는 아이들의 설레고 신난 그 순간을 포착했다.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 아침’, 1894년, 수채화, 개인소장. 사진 위키아트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 아침’, 1894년, 수채화, 개인소장. 사진 위키아트

칼 라르손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기록한 화가였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굉장히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면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같은 화가였던 카린 베르구를 만나 결혼해 스웨덴 팔룬에 있는 집 ‘릴라 히트나스’에서 8명의 자녀를 낳고 살아가면서 전원생활, 집, 가족을 소박하고 평화롭게 그림에 담았다. 불우했던 그가 가정을 일구면서 평안과 행복을 얻은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칼 라르손의 가족과 그림은 ‘북유럽 가정’의 이미지를 구축해 ‘이케아 디자인 스타일’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는 그 평안과 행복이 더욱 커지는 날이다. 어느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반가운 가족과 지인을 맞이해 즐거움과 감사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칼 라르손은 단순한 선과 맑고 투명한 색채로, 가족과 지인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으로 크리스마스를 바라보았다.

비고 요한센, ‘고요한 밤’, 1891년, 오일에 캔버스, 127.2×158.5㎝, 코펜하겐 히르슈스프룽컬렉션 소장. 사진 위키아트
비고 요한센, ‘고요한 밤’, 1891년, 오일에 캔버스, 127.2×158.5㎝, 코펜하겐 히르슈스프룽컬렉션 소장. 사진 위키아트

덴마크 화가, 비고 요한센Viggo Johansen(1851~1935)에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하는 아름답고 화목한 날이다. 위쪽의 작품 ‘고요한 밤’을 보자. 어두운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의 조명이 내뿜는 빛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 주위를 어머니로 보이는 한 여성과 어린 자녀들이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바로 찬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이들의 표정이 사실적이고 재미가 있다. 노래보다는 눈부시게 빛나는 트리에 크게 눈을 뜨고 감탄하는 아이,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몸을 비틀대는 아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 환하게 웃는 아이…. 엄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미소 짓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서로의 체온을 가득 느낀 채, 행복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태어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며 평안하고 감사해할 수 있는 것. 아내와 여섯 자녀를 둔 행복한 가정의 비고 요한센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사랑이 감사하고 온화하게 빛을 발하는 그런 날이다.

요즘의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많이 달라진 듯하다. 유흥과 상술의 색채가 짙어지면서 가장 성스러운 날의 의미가 희석되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크리스마스니까’ 마냥 즐기기보다, ‘크리스마스니까’ 그 진정성을 생각해 보는 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2023년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지극히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임한 그리스도, 깊은 감사와 사랑, 존경을 담아 메시아를 경배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오 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가족, 이웃의 사랑과 헌신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소망한다. 그럼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길가온 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서 미술교육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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