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청년, 최은호

최근 ‘청소년 문제’라는 키워드로 한국과 필리핀 학생들이 교류했다는 소식을 신문 기사에서 접했다. 대학생 국제개발협력단체인 유니브리더스의 한국 대학생 23명이 9일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시티에 위치한 3곳의 고등학교와 6곳의 대학교를 방문, 1500여 명의 현지 학생들을 만나 청소년 문제 해결 프로젝트 ‘필윙Phil-Wing’과 문화 교류 페스티벌 ‘K-웨이브K-Wave’를 열었단다. 필윙! ‘필리핀을 향한 날갯짓’의 줄임말로,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필리핀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유니브리더스 최은호 단원을 만나 그 구체적인 면면을 물어보았다.

이해를 돕고자 앞서 소개하자면, 유니브리더스는 2019년 태국에서 진로탐색 프로젝트 ‘클링크CLINK’, 2020년 르완다에서 교육 소외계층 꿈찾기 프로젝트 ‘리마인드RE:MIND’, 2022년 케냐에서 청소년 문제 해결 및 인성교육 프로젝트 ‘위캔 WEKEN’을 실행한 바 있다. 참가자의 호응과 만족도가 무척 높았고, 해외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다. 지난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리더스 컨퍼런스(유니브리더스의 메인 사업. 국제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그룹 프로젝팅 프로그램)’에서 제출된 국제 청소년 문제 해결 프로젝트 17개 중 필리핀 프로젝트가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프로젝트 실행 장소로 필리핀이 결정되었다.

최은호 군은 도전을 즐길 수 있고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좋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람과 세계를 대하고 싶단다. 사진 박법우 기자
최은호 군은 도전을 즐길 수 있고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좋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람과 세계를 대하고 싶단다. 사진 박법우 기자

반갑습니다. 필리핀에서 펼친 ‘필윙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필리핀 청소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법을 모색하는 저희 프로젝트의 시작은 최근 필리핀의 이슈가 무엇인지부터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지 디렉터의 도움을 받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립’, ‘은둔’ 문제가 필리핀 청소년을 위협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인 것을 확인했고요. 최대한 현지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문제를 살피고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우리는 그 옆에서 돕고 피드백하는 역할로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주제를 ‘우울증 극복 및 정신건강’, ‘불안 극복’, ‘평등 교육’이라는 3개의 의제로 세분화하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팀별로 도출했고, 발표를 통해 다른 팀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의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전체 마인드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주제와 관련된 마인드 강연을 들었고요. 동시에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고립된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응원이 담긴 문구를 포스트잇에 적어 현수막에 붙였고 SNS 등을 통해 이를 공유했어요. 혼자일 때는 ‘나만’ 그렇다는 생각에 자신의 문제가 커 보이지만, 공유하다 보면 ‘다른 사람도’ 하는 생각에 문제는 훨씬 작고 가벼워집니다.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필윙은 필리핀 청소년 문제 해결에 이러한 교류의 힘을 접목한 프로젝트입니다.

산호세 델몬떼 시티 칼리지City College of San Jose Del Monte에서 촬영한 단체사진.
산호세 델몬떼 시티 칼리지City College of San Jose Del Monte에서 촬영한 단체사진.

코로나 팬데믹이 필리핀 청소년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온 건가요?

현지 디렉터의 말에 의하면, 필리핀 사람들은 아주 활기차고 밝은 민족입니다. 하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갑자기 ‘자살’이라는 주제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통계청 자료 수치를 봐도 2019년과 대비해서 청소년 자살률이 25.7%나 증가했습니다. 힘든 상황에도 웃을 수 있었던 긍정적인 아이들이 이제는 학교 문제로, 이성문제로 전보다 더 쉽게 자살을 선택하며 우울증과 불안이라는 말들을 쉽게 꺼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신체적, 사회적 고립이 청소년의 성향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고 이런 의식의 변화에 필리핀 정부도 많은 우려를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주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한 현지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팀별 발표를 하고 있다.
주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한 현지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팀별 발표를 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그 문제를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실제 학생들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웃음이 많고 활발했어요. ‘고립’이나 ‘은둔’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본인이 그런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분명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는 일부 학생들이 있었고요. 자신의 나라에서 커가는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나가기 위해 세밀히 사고하고 진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필윙 프로젝트는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가 끝나고 설문조사를 해보니, 참가자 중 80% 이상이 프로그램에 만족하여 재참여 의사를 보였고, 70%는 이 행사가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동기가 됐다고 답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필리핀 학생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행동력’을 기대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시도되는 날갯짓이 필리핀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필윙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유니브리더스는 ‘문화’라는 콘텐츠에도 집중했다. K-웨이브와 필하모니 Phill-harmony&포크댄스 운영이 그것이다. 전자는 총 10개 한국 문화 체험부스를 운영한 페스티벌이며 후자는 희망의 단어로 아카펠라를 부르며 소리를 통한 화합을, 노래 ‘바나나 차차’로 포크댄스를 추며 춤을 통한 교류의 장을 열었다. 사실 필리핀 내 한류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2004년 필리핀 교포였던 산다라 박이 외국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필리핀 연예인 공채 프로그램에서 2등으로 선발되어 선풍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2023년 지금, 한류는 그 몇 배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필리핀에서 자랑한다.

K-웨이브에서 인기를 끌었던 태권도 부스 앞에서 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태권도 포즈를 취하고 있다.
K-웨이브에서 인기를 끌었던 태권도 부스 앞에서 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태권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스티벌 ‘K-웨이브’의 인기가 많았을 듯합니다.

제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테마로 한 부스를 맡아 운영했는데요. 군복입은 배우 송중기를 흉내 내어 퀴즈를 내는 역할이었는데 반응이 너무나 좋아 깜짝 놀랐습니다.(웃음) 한류 열풍 때문에 필리핀에 가면 한국인 누구나 연예인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자체를 사랑하는 학생들이 우리가 뭘 하든 호응도 높게 반응해 줘서 고마웠고요. 또한 참가자들은 이기적인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행사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이 있어도 끝까지 집중하고 들어 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요. 문화의 힘을 통해 고립과 은둔에서 청소년들이 벗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고립된 학생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문구를 들고 필윙 프로젝트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SNS에 공유해 캠페인을 벌였다.
고립된 학생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문구를 들고 필윙 프로젝트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SNS에 공유해 캠페인을 벌였다.

반면 현지에서 실행하는 과정에서 부딪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후’, ‘시간관념’, ‘다양성 문제’가 힘들었습니다. 몇 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쳐 한국에서 충분히 준비해 갔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무덥고 습한 현지의 열대 기후는 행사의 복병과도 같았어요. 아침부터 땀과 싸워가며 야외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데 다행히 몸은 곧 적응하더라고요. 다음은 대체로 시간을 지키는 것에 철저하고 상황처리나 행동이 빠른 편인 한국 사람들과 달리 필리핀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점이었어요. 현지에 사는 한국인들은 그것을 ‘필리핀 타임’이라고 불렀어요. 다르지만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게 좋다는 조언도 덧붙이셨고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필리핀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혼종적인 다양성은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거부감이 드는 면도 있었죠. ‘내가 얼마나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았습니다. 해외경험이 꽤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이라는 세계에서 형성된 관점과 기준으로 ‘다른 것’을 쉽게 진단하려 드는 제 모습에 실망도 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는 태도를 계속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학생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관심의 초점이 자신에게 머물지 않고 주변 청소년 문제로 향해 있습니다. 또한 해외까지 아우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생 때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1년간 해외 봉사했던 영향이 큽니다. 그전에 저는 남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조용한 방황’을 하며 제 문제에 몰두해 있었어요. 나름의 고립과 은둔의 시간이었죠. 부모님의 권유로 해외봉사에 지원했고, 우간다에서 여러 사람과 섞이어 살면서 제 마음을 꺼내놓고 대화하고 교류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고 할까요. 그거 빼고는 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나 같은 아이들이 많겠다’, ‘내가 고민하고 극복했던 경험들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또 해외에서 외국인과 이야기하고 그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정말 ‘재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관련 분야를 찾았어요. 유니브리더스에 가입해서 2~3년간 한국 리더스 컨퍼런스에 참가했고, 2019년도 태국 프로젝트에 함께했으며 지금 현재도 여러 국제교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브리더스 대학생 실행단의 모습. 행사를 다 마친 후 잠시 들른 리조트 앞에서 한 컷. 앞으로 사회, 국가 그리고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유니브리더스 대학생 실행단의 모습. 행사를 다 마친 후 잠시 들른 리조트 앞에서 한 컷. 앞으로 사회, 국가 그리고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고립과 은둔을 경험한 조용한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고요?

학창 시절 컴퓨터 게임에 미친 듯이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게임보다 더 재밌는 것을 찾지 못해서 게임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 사이에 싸움이 잦아 집안 분위기가 늘 불안했고 제 말수는 더욱 없어졌고요.

그런데 대학에 갈 때쯤 되니까 같이 게임하며 놀던 친구들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하더라고요. 성적이 안 된 저는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에 들어갔고 그때 우울감을 제대로 느꼈어요. 친구들에게 게임은 오락, 취미였지만 저에게는 도피처였거든요. 미래에 관심도 없었고 별 생각 없이 그냥 게임에만 몰두해 있는 동안 공허함만 남았어요. 대학에 입학했지만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안갯 속을 걷는 기분이었죠. 불면증에 시달렸고 낙오된 기분, 크나큰 상실감으로 대학 1년을 뼈아프게 보냈어요.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는데 해외봉사가 저에게 ‘변화’를 선물했습니다.

필리핀 현지 학생들과 한 컷. 예전의 최은호 군은 조용하고 말주변이 없어 발표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단다. 해외봉사를 다녀오고 유니브리더스의 여러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필리핀 현지 학생들과 한 컷. 예전의 최은호 군은 조용하고 말주변이 없어 발표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단다. 해외봉사를 다녀오고 유니브리더스의 여러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확실히 제 관심은 글로벌, 국제기구 쪽이어서 계속 그 분야를 탐색 중이에요. 모든 경험을 다 할 수 없으니 책을 통해서도 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있어요. 정말 고마운 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누는 한 친구가 있는데요. ‘20대는 씨를 어디에 뿌릴지 그 땅을 찾는 일을 할 때이다.’라고 생각하는 친구죠. 함께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보면서 생각을 키우고 관심을 구체화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요즘의 전 국제기구, 외국어, 통번역과 관련된 책을 보면서 제 미래를 그려보고 있어요. 계속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더욱 발전하고 싶고요. 또 돕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작은 파고波高를 낼 수 있는, 변화와 성장의 그림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기자가 만난 최은호 군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의 취지와 의미에 만족하면서 최선을 녹여내고, 그것의 여운을 즐길 줄 알았다. ‘작은 날갯짓’이라며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동시에 ‘태풍’을 기다리는 당찬 꿈을 보였다. 제2의, 제3의 최은호 군이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그리고 여러 곳에서 생겨난다면, 이 세상의 행복지수는 좀 더 올라갈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간에는 ‘뼈아픈 경험들&좋은 사람들’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있었다고 한다. 고립과 은둔의 무력한 시간이 성장의 한 뼈대를 이루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최은호 삶의 색깔을 바꾸었다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둠에 자신을 가두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그들을 구원하고 치유할 힘은 ‘연결’이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사람, 관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뭔가 노력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그냥 사람들 속에 자신을 던져 보세요.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뜻하지 않던 배움과 깨달음이 여러분을 일으키고 있을 거예요.”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