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 하며 ③

달이 열한 번을 떴다 지고 12월에 다다랐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 1년 동안 양식을 미리 계산해 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섣달그믐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있어 하나도 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어떻게 한 해를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이치를 아는가?”라고 말했다.

옛 어른들은 부족한 양식으로 늘 생존의 문제를 걱정해야만 했지만, 5백여 권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 선생을 보면 정신적인 풍요와 깊이는 오늘날 세대와 차이가 크다. 요즘은 생존의 문제보다 삶의 질의 문제를 두고 염려하는 세상이다. 물론 저개발 국가들이나 전쟁으로 고통받으며 식량과 생존의 문제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곳도 많다. 이를 생각하면 과학 문명을 앞세운 21세기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여전히 기본적인 생존권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고 나름 충격을 받았다. 내 옷장에 갈아입을 옷이 있고, 통장에 적지만 잔고가 있고, 수도와 전기가 끊어지지 않고, 치안의 위협을 받지 않고, 적어도 매 끼니는 걱정하지 않는 부유한 마을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구의 부자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보다 더 감동을 준 것은 내가 그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살아 있다는 것이다. 편협한 비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어떤 지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풍요 속에 살지만 더 풍요로운 집단과 비교하기에 늘 자신이 빈곤해 보인다. 그래서 정신적 빈곤을 겪고 산다.

옛 어른들은 그 나라의 미래를 아이들 얼굴에서 보았다고 한다. 아이들의 얼굴이 좋으면 ‘나라가 풍요롭고 태평성대가 있겠구나.’ 하고, 아이들의 얼굴이 고생스러우면 ‘전쟁이 일어나거나 큰 흉년이 들어 나라에 변고가 있겠구나.’ 하고 예측했다고 한다.

김동완이라는 명리학자가 재미난 글을 썼다. 요즘 TV에 가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때나 1950년대 영상을 방영하는 걸 보면, 그 시절 아이들의 관상이 다 박복한 얼굴이란다. 일본에게 압박 받다가 해방이 되자마자 전쟁이 터졌으니 어찌 어렵지 않았겠고, 얼굴이 이지러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은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서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닦아준 감사한 세대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요즘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다 좋다는 것이다. 얼굴에 귀티가 흐르고 복스러워서 옛날 같으면 모두가 재상의 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이들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세계에서도 우뚝 설 것이라고 한다. 그 말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오면 좋겠다.

밤이 오면 하루의 피로를 풀어 상쾌하게 일어날 내일 아침을 기대하듯이, 여전히 우리의 시간은 새롭게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기대감이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희망’이라고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글 윤미화
경남 남해 출생.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MBA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의령에서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알아두면 유익한 1일 1지식 한 달 교양수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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