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전문가 손종례

울긋불긋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던 단풍잎이 떨어지고 나면,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그 시기가 되면, 손종례 씨의 마음은 분주해진다. 겨울 숲속 생명을 만날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겨울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이해’의 깊이를 더해온 지도 스무 해가 되어간다. 우리도 그처럼 겨울나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 수원에 위치한 칠보산 입구로 향했다. 그날은 마침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었다.

손종례(사)한국숲해설가협회 전문과정인 ‘겨울 숲 바라보기’에서 겨울나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로 쉽게 알아보는 겨울나무’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사)인천녹색연합숲해설 전문과정의 ‘자연 생태 놀이’ 기획 진행, 녹색교육센터 주관 ‘글꽃숲’과 ‘절기강의 ‘산들레생태연구회’에서 숲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는 《겨울나무의 시간》, 공저로는 《 놀자 놀자 해랑 놀자-놀이로 배우는 24절기의 지혜》가 있다. 사진 최행자
손종례(사)한국숲해설가협회 전문과정인 ‘겨울 숲 바라보기’에서 겨울나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로 쉽게 알아보는 겨울나무’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사)인천녹색연합숲해설 전문과정의 ‘자연 생태 놀이’ 기획 진행, 녹색교육센터 주관 ‘글꽃숲’과 ‘절기강의 ‘산들레생태연구회’에서 숲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는 《겨울나무의 시간》, 공저로는 《 놀자 놀자 해랑 놀자-놀이로 배우는 24절기의 지혜》가 있다. 사진 최행자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 장소를 ‘칠보산’으로 제안하셨어요. 이곳이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봅니다.

칠보산은 제 보물단지와 같은 곳이에요. 다양한 풀과 나무, 고라니와 다람쥐와 같은 야생동물, 철새와 텃새 그리고 이 숲을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는 곳이죠. 어, 저기 나뭇가지 위에 둥지 보이세요? (쌍안경을 쥐어주며) 직박구리라는 새의 둥지네요.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둥지를 발견하기 어려운데 잎이 모두 떨어지니 둥지가 보이네요. 요즘에는 산을 오르내리며 새를 유심히 보고 있어요. 여름에는 김밥 하나 들고 와서 종일 새를 관찰하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타기도 했어요.(웃음) 이십오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알게 된 마을 뒷산이 바로 칠보산이에요. 제가 어릴 때 뛰어놀았던 자연을 두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무작정 아이들 손을 잡고 이 산을 올랐습니다. 그게 제가 숲을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볼 계기가 되었죠.

투명하게 시린 빛이 내려앉아 반짝이는 가지와 겨울눈. 이를 보면 첫 아이를 기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가 혼자 세수를 하고 나와 로션을 손에 푹 짜서 얼굴에 바르곤 “엄마, 나 혼자서도 잘하지?”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동통한 얼굴이 얼마나 윤이 나던지. 나뭇가지에 걸린 빛을 보면 그때 빛나던 아이의 얼굴이, 베이비로션의 향기가 느껴진다. 사진 손종례
투명하게 시린 빛이 내려앉아 반짝이는 가지와 겨울눈. 이를 보면 첫 아이를 기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가 혼자 세수를 하고 나와 로션을 손에 푹 짜서 얼굴에 바르곤 “엄마, 나 혼자서도 잘하지?”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동통한 얼굴이 얼마나 윤이 나던지. 나뭇가지에 걸린 빛을 보면 그때 빛나던 아이의 얼굴이, 베이비로션의 향기가 느껴진다. 사진 손종례

자녀분들에게 자연을 알려주려다 되레 매력에 빠진 건가요?

그런 셈이죠. 아이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싶은데, 막상 숲에 들어오니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그래서 숲을 잘 아는 강사님을 수소문했죠. 숲 체험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님을 모집해서 팀을 꾸렸어요. 숲 체험 강사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자연에 사는 생명을 관찰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도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발을 내디뎠어요. 생협에서 진행하는 생태안내자 양성 과정을 수료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 교육을 시작했죠. 2011년에는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겨울나무를 깊게 공부했어요. 2014년부터 (사)한국숲해설가협회에서 산림교육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겨울나무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겨울나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겨울나무 전도사가 되었네요.(하하)

겨울나무를 공부하는 사람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나무의 지혜를 배운다. 이들은 공기 좋은 자연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진 손종례
겨울나무를 공부하는 사람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나무의 지혜를 배운다. 이들은 공기 좋은 자연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진 손종례

겨울나무, 겨울 숲을 바라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겨울나무의 삶을 아는 것, 겨울나무와 숲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느끼는 것, 겨울나무를 구분하는 것,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새와 곤충 등의 자연을 바라보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해가 짧아지고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면 나무는 생장을 멈추고 겨울을 준비해요. 다양한 방법으로요. 잎에 있는 양분을 모두 가지로 옮기고 잎을 떨어뜨려요. 세포 속의 물을 빼서 세포 간극으로 이동시켜 세포질의 농도를 높이고, 부동액으로 채워서 어는 점을 낮춥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겨울눈’이에요. 다음 해 봄에 자라 잎, 꽃, 가지가 될 겨울눈이 준비되었다면 나무의 완벽한 월동 준비가 끝난 것이죠.

처음 겨울나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무마다 다른 겨울눈의 모양을 관찰하고 익히기에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겨울나무를 몇 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겨울 숲의 고요한 분위기가, 넓고 깊어진 시야가, 알싸한 공기가 좋더라고요. 겨울나무와 숲의 매력에 빠졌죠. 그런 감상을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겨울 나무에 관한 책도 썼어요.(웃음)

겨울 산행 중 눈을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포슬포슬한 눈송이가 날려물오리나무 겨울눈에도 내려앉았다. 사진 손종례
겨울 산행 중 눈을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포슬포슬한 눈송이가 날려물오리나무 겨울눈에도 내려앉았다. 사진 손종례

숲은 보통 여름에는 초록으로, 가을에는 단풍이 든 색으로 빽빽이 채워진 ‘면’으로 보여요. 하지만 겨울에 잎이 떨어지면 나목들이 만든 ‘선’으로 숲이 이루어져요. 그리고 그 선과 선 사이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나요.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넓어지고, 바람길 또한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 공간 속에 멀리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생명의 흔적이 보여요. 또한, 겨울 숲만의 ‘온기’가 있어요. 이에 관해 쓴 책 내용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분이 읽어준 적이 있어요. 녹음본을 한번 틀어볼게요.

“겨울 숲은 새벽 이불 속 같은 느낌이 든다. 한 잎 두 잎 켜켜이 쌓인 나뭇잎이 태양의 열기로 데워진 땅의 온기를 가둔다. 그렇게 모아 둔 온기로 혹독하게 추운 겨울 동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보듬고 잠들게 한다. (중략) 겨울 숲은 뜻밖에도 넉넉하고 따뜻하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찾아드는 햇살이 넉넉해져 숲의 속살 깊은 곳까지 드리우기 때문에 겨울 숲의 양지는 포근하다.”《겨울나무의 시간》31쪽

앙상하고 황량하다고만 생각했던 겨울 숲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대부분 사람들은 ‘겨울나무’하면 추위와 고통 속에서 겨우 견뎌내는 것을 떠올리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내년을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다고 생각해요. 새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느껴지죠. 매해 겨울이 되면 사람들과 여러 산을 다니며 겨울나무 공부를 해요. 그때 루페(확대경)를 쥔 채로 잠시 숨을 참고 자세히 보는 것이 ‘겨울눈’과 ‘1년생 가지’예요.

겨울눈은 나무를 키우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에요. 나무는 늦봄부터 가지와 잎자루 사이에 겨울눈을 차근차근 준비해 놓죠. 가을까지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다가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모습이 드러나요. 겨울눈은 사람의 지문처럼 나무마다 고유한 모양과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겨울에 나무를 구분하는 식별 포인트가 됩니다. 겨울눈을 관찰해보세요. 어떤 것은 끝이 뾰족하고, 어떤 것은 둥글고, 어떤 것은 크기가 크죠? 미끈한 눈비늘에 쌓인 것도 있고, 털이나 부드러운 막으로 쌓인 것도 있어요. 나무의 미래가 달린 겨울눈을 모진 추위와 지나친 습기, 곤충 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안전장치이죠.

산딸기 줄기 사이에 붉은머리오목눈이 부부가 만든 둥지. 물컵처럼 생겼다. 한 해 동안 나무와 함께 살아갔던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는 겨울 숲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사진 손종례
산딸기 줄기 사이에 붉은머리오목눈이 부부가 만든 둥지. 물컵처럼 생겼다. 한 해 동안 나무와 함께 살아갔던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는 겨울 숲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사진 손종례

1년생 가지에 대한 설명도 해주세요.

1년생 가지란 전년도 겨울눈에서 싹이 나서 한 해 동안 자란 가지를 의미해요. 자란 기간이 짧아서 변형되지 않아 나무의 고유한 특징을 보존하고 있어요. 거기에서 수피樹皮와 색, 잎이 떨어진 흔적의 모양은 어떤지, 그 흔적 안에 있는 관다발 자국은 어떤지 등을 관찰합니다.

겨울나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영하의 날씨에 1년생 가지와 겨울눈冬芽을 뚫어지게 보며 눈目싸움을 해요. “이것 좀 봐. 신기하게 생겼어. 잎 떨어진 흔적은 사람의 눈, 코, 입 모양을 하고 있고, 겨울눈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마치 요정 같은 모습이야. 이 털 모양 좀 봐, 별이야 별. 어쩌면 이런 모양을 하고 있지?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쁘지?” 하며 겨울눈 하나에 즐거워하고,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을 표현합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겨울 동안 잠잠히 쉬었던 1년생 가지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져요. 대체로 꽃눈이 가장 먼저 움직이고, 뒤에 잎눈이 싹을 내죠. 겨울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를 알기에, 봄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겨울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해요.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다니던 청서는 물이 조금 고여있는 계곡 가장자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을 마신다. 사진 손종례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다니던 청서는 물이 조금 고여있는 계곡 가장자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을 마신다. 사진 손종례

드넓은 겨울 산 전체가 감탄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군요.

그렇죠. 꼭 겨울 숲, 나무만이 아니라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숲이나 공원 등 일부러 찾아가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에요. 그냥 찾아가도 좋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과 인연을 맺고 살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요. 일부러 찾아간 마을 뒷산에서 쉼을 얻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위로와 기쁨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종종 이른 아침에 칠보산을 한 바퀴 돌아요. 나무도 들여다보고, 나무와 함께 사는 텃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요. 저는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숲으로 갑니다. 산이 주는 위로를 받으러요.

눈 내리는 날 숲으로 가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쌓인 나뭇잎 위에 내린 눈이 숲의 온기를 보태는 듯하다. 사진 손종례
눈 내리는 날 숲으로 가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쌓인 나뭇잎 위에 내린 눈이 숲의 온기를 보태는 듯하다. 사진 손종례

겨울 같은 인생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한마디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인생의 겨울’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시련의 시기라고 본다면,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사랑, 응원, 격려, 감사했던 시간…

이런 것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사람마다 그 농도는 다르겠지만 분명 응원과 위로가 될 겁니다. 잘 찾아보세요. 반드시 그랬던 시간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겨울을 이렇게도 볼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크게 보이는 것이 없지만 새로운 꿈과 희망, 생명을 머금고 때를 기다리는 시기. 저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가고 있어요. 저와 같은 겨울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네요. 작지만 꿈을 향한 에너지가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언젠가 봄바람이 불어와 세상으로 터치고 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요. 여러분도 겨울 나무처럼, 좀 춥긴 해도 마음 든든한 겨울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겨울나무의 시간》 겨울 숲에 남아 있는 숲 생명들의 흔적을 쫓으며 새로운 시선으로 겨울나무와 겨울 숲을 보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8종의 나무를 다뤘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