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오늘날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첨예한 대립과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강경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미사일로 기습 공격을 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 수 없는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요, 온 인류에게 평화와 이웃 사랑의 요람이어야 할 팔레스타인 지역이 지금은 왜 증오와 전쟁, 파괴와 살상의 땅이 되었을까? 국제 정세를 흔들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면,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성경과 유대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2회에 걸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의 긴 역사를 조망해본다.

사진 프리픽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이후, 80여 년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매우 오래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역사 속에 자리한 ‘반反유대주의’ 편견은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졌고 ‘유대인은 사악한 수전노’라는 집단적 오해와 고정관념을 양산해냈다. 그리고 이것이 객관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져서, 모든 유대인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처럼 사악하고 탐욕스런 인간으로 잘못 인지되었다. 이와 같은 집단적 편견 DNA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증폭되고 확산되다가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사회적 토양과 만나면서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로 변하여 유대인들을 참혹하게 짓밟았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가 자리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현재 심각한 대립과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 sky news

그러나 유대인들은 긴 세월을 전 세계로 흩어져 살면서도 민족적 정체성과 관습을 지켰다. 이들은 종교 개종을 강요 받고, 사회에서 소외 당하고 차별을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로부터 대학살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고유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유대교라는 종교,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계승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라는 강력한 항체를 만들어 외세에 대응했고 마침내 1,878년 만에 조상이 살던 고토古土로 돌아와 국가를 세웠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돌아와 국가를 세운 곳이 빈 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이 땅에는 이미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민족이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들어서면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두 지역으로 밀려나 살아가야 했다.

국제법상으로 두 지역은 현재 어떤 국가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중에 팔레스타인 온건파 자치정부가 들어서 있는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도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세워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지중해 연안의 가자지구는 하마스라는 강경파가 통치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부인하는 이들은 유대인들을 모조리 쓸어내고 그 자리에 이슬람 국가가 들어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황금돔 사원은 공교롭게도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로 추앙하고 있는 곳이다. 사진 sky news

유대인과 이슬람의 조상은 같은 아버지 ‘아브라함’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이자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인 우르Ur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이 바로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이며, 현재 이스라엘 나라가 있는 곳이다. 성경은 이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든 땅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가 믿음의 조상으로 받들고 있는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애굽(이집트) 여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구약성경 창세기 25장에는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등 여섯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 후 계집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난다. 이슬람교에 의하면 하갈과 이스마엘이 메카 근처로 갔고 훗날 아브라함은 이들을 방문해 함께 카바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성경은 이와 다르게, 이스마엘이 시내산 위쪽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 교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바로 이스마엘이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가 이스마엘에게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오늘날 아랍 민족의 조상은 이스마엘이다. 아라비아의 준말인 ‘아랍’은 ‘초원의 유목민’을 뜻하는데, 이들은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 살았던 민족이며 지금은 중동의 무슬림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성경에 의하면 아랍인은 하갈과 그두라가 낳은 후손들이 다. 성경학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두라의 후손들이고, 요르단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라고 말한다.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 중에서 둘째 ‘계달’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의 조상이 된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도 ‘이삭’의 후손만 유대인 또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부른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유대인의 조상인 것이다. 지금은 원수처럼 지내지만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같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이복형제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

기원전 2천 년경 가나안 땅으로 옮겨온 아브라함의 족보는 아들 이삭, 손자 야곱으로 이어진다. 야곱 때 큰 흉년이 들자 야곱은 그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서의 비참한 삶을 산다. 그 후 ‘모세’가 나타나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왔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을 정복해간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먼저 가나안에 들어와 있던 여러 족속들을 쫓아낸 뒤 사울,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이 왕국은 다윗 왕과 그 아들 솔로몬 왕의 통치 시대인 기원전 1천 년경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을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으며, 아들인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기반을 구축해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성경의 예언대로 기원전 924년 솔로몬 왕 사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으로 나뉜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왕을 시작으로 19명의 왕이 다스리다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아시리아)에게 정복 당해 건국 210년 만에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반면에 남유다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를 하다가 기원전 586년 바벨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쳐들어와 성전을 파괴하면서 건국된 지 345년 만에 멸망한다.

선지자 예언에 나온 바벨론의 유수와 예루살렘 귀환령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지배 하에 들어간 남유다 왕국은 백성들이 끌려가 70년을 포로로 살아야 했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바벨론 유수幽囚’라고 부른다. 당시 선지자 예레미야는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들이 70년 뒤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편지로 예언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그 말씀대로, 바사(페르시아, 오늘날의 이란) 제국의 고레스 왕은 기원전 539년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2년 뒤엔 모든 유다 포로들에게 예루살렘 본토로 돌아가라는 조서를 내린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은 바벨론 유수 시대를 배경으로 작곡한 것이다. 귀환령에 따라 바벨론에 잡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했으나, 그 후에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로마 제국에 예속되어 다시 이스라엘 국가는 큰 시련의 길에 들어선다.

남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사건을 그린 작품. 에두아르트 벤데만의 1865년 작품. 뒤셀도르프 예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사건을 그린 작품. 에두아르트 벤데만의 1865년 작품. 뒤셀도르프 예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나안 땅이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게 된 이유

이스라엘을 정복한 로마는 총독을 파견해 과중한 세금을 거둬들이고,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신 숭배를 강요했다. 여기에 대항해 70년과 132년에 유대인들은 강대한 로마제국을 향해 두 차례의 큰 반란을 일으켰다.

서기 70년에 1차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는 1백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죽이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는 방법을 써서 무자비하게 응징했다. 그리고 남은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노예로 팔았다. 당시 그리스의 역사학자 스트라본은, ‘유대인이 모든 나라로 스며들어 지상에 유대인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 멈추지 않은 유대인들은 서기 132년에 또 다시 2차 반란을 일으켜 3년간 저항했다. 그러나 강력한 로마군에 패해, 팔레스타인 땅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은 학살되거나 추방 당했다.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페허가 된 예루살렘을 로마 풍의 도시로 바꾸고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1년에 단 하루, 성전 파괴를 애도하는 아브월 9일에만 예루살렘 성 출입이 가능했고 그 외의 날에는 접근조차 금지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에 계속 반역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자, 이스라엘을 역사적으로 가장 괴롭혀온 이민족 팔레스타인의 이름을 따서 가나안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개명한다. 당시는 전 세계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정한 이름이 곧 공식명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가나안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1948년 이스라엘이 재건될 때까지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려왔다.

로마에 반역하는 유대인들에게 고통을 주려고 가나안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꿔버린 하드리아누스 황제. ❷ 남
로마에 반역하는 유대인들에게 고통을 주려고 가나안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꿔버린 하드리아누스 황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로 매우 중요한 예루살렘

간혹 구약성경에 290회나 등장하는 블레셋(영어 표기로 팔레스타인)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사람들로 아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 사람은 지금의 팔레스타인과는 혈통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어쨌든 로마와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한 이스라엘은 대다수의 백성들이 살해 당했고, 살아 남은 백성들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기나긴 유랑 생활에 들어선다. 이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부르는데, ‘디아스포라’는 우리가 이산가족이라고 말할 때의 ‘이산離散’과 같은 뜻이다.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이 가깝게는 유럽으로, 멀리는 중국에까지 진출해 살았다. 송나라의 수도에는 지금도 유대인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들에게는 어느 지역보다 더 심한 핍박이 계속되었다. 특히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예수의 살해범’으로 낙인이 찍혔고,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곳에서는 종종 끔찍한 학살까지 자행되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190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회당과 토라를 중심으로 그들의 고유 신앙을 지키고, 교육과 공동체 사회를 통해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한편 로마 제국의 기독교 승인으로 전 세계에 기독교가 퍼지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가 되었다. 훗날엔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570~632)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알려진 그곳에 황금 돔으로 유명한 ‘바위의 돔 사원’을 세웠는데 공교롭게도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와 동일하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성스러운 땅’으로, 지금까지 민족간 종교간 첨예한 갈등의 꼭지점에 서 있다.

다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1900년간의 유랑 생활을 어떻게 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시온주의’와 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 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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