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나 세평을 두려워하며 쓰는 글은 최악이다. 글을 쓸 때는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써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서 쓰는 게 아니다. ‘내 이야기’를 솔직히 쓰면 독창적이고 차별성 있고 가치 있는 글이 된다.

일본 유명 작가 30인의 마감 분투기를 엮은 《작가의 마감》이라는 책에 장정일 작가가 추천 글을 썼다. ‘아무도 안 봐, 아무도.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잖아’라는 제목인데, 마감의 고통을 헤쳐 나가는 장 작가의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장 작가는 원고 마감에 앞서 사우나에 가서 네다섯 시간씩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막걸리 두어 병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글을 쓰기에 앞서 하는 의식儀式이다. 마침내 막걸리를 마시며 글을 쓴다.

“내 글을 보는 사람은 나와 편집자밖에 없어, 아무도 안 봐, 아무도 이 글을 보지 않는다고.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잖아.”

그는 글을 쓰면서 쉼 없이 주문을 외운다. “아무도 안 봐, 아무도 안 봐.” 장 작가가 오늘까지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주문이다.(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안은미 엮고 옮김, 《작가의 마감》, 정은문고, 2021년 2월, 290, 291쪽) 거기에는 ‘자신의 글이 남의 눈에 띄지 않아 평가 대상이 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자.’라는 뜻이 담겼다.

모든 작가는 대중과 전문 비평가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글을 시작도 못하기도 한다. 정당한 비판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세상이 건실하게만 굴러가지는 않지 않는가. 숨기고 감춘 악의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보니 난데없는 악평 때문에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비평가들과 독자들의 평가를 받는다. 작품을 쓰는 한 벗어날 수 없다. 글을 내보내려면 알뜰살뜰 씹힐 각오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는 것도 작가에게는 중요하다. 어지간한 리뷰는 못 본 척 눈 감고 지나치고, 무시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오죽하면 소설가로 살아 가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뻔뻔함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김연수 작가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내 데뷔작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가 나왔을 때도 이런저런 말을 ‘약간’ 들었는데, 그중에는 ‘작가 김연수에 대한 단명의 예감’이라는 소제목의 평론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단명의 예감이라니,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는데 팬티 추스르고 제대로 옷 입을 겨를도 안 주겠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하며 “그럼에도 나는 그 평론을 쓴 사람이 고마웠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그게 내 책에 대한 유일한 평론이었으니까.”라고 씁쓸해 했다.(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년 11월, 27쪽)

그는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그래서 신인’이었던 시절을 이겨내고 현재의 위치에 섰다. 만약 그 비평에 그가 매몰됐다면 오늘의 소설가 김연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절대적으로 옳은 평가는 있을 수 없다. 그냥 한 개인의 선호에 따라 쓴 글일 뿐이라고 여겨야 한다.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비평가, 평론가에게는 부정적인 속성이 내재해 있다는 설說도 있다. 영어 단어 critic의 사전적 의미는 ‘비평가, 평론가, 무엇의 나쁜 점을 특히 공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다. 비평가나 평론가에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말을 듣는 건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내 글이 악평을 듣더라도 비평가나 평론가들의 속성이 그러니까, 그러려니 여기는 게 속이 편하다.

치우침이 있다면 문제가 있다. 냉정한 평가는 치우치지 않는다. 그걸 ‘독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편향된, 감정적인 평가에는 독이 담기기가 쉽다. 공정하지 않고, 선택적이고 의도적인 악평이라면 문제가 된다.

비평가들이 독설을 내뱉는 까닭은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개인감정이나 이익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잊지 않고 공적 명분을 내세운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도 1979년 처음 낸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했을 때 혹평을 들었다. 어느 고명한 문예 비평가는 “이 정도의 글을 문학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평했다. 신인에게 주는 ‘격려’로서는 잔인하기 그지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당연히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지.’라며 받아들였고, 반발심도 느끼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문학’을 바라보는 방식이 애초에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 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길게 쓰면 너무 길다,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하고, 짧게 쓰면 얄팍하다, 엉성하다는 트집을 잡혔다. 그래서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면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16년 4월, 260, 261, 269쪽)

비평이나 세평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최악이다. 글은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써야 한다. 글은 세상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쓰는 게 아니다.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면 그만이다. 그렇게 쓴 ‘내 이야기’는 최고로 독창적이고 차별성 있고 가치 있는 글이 된다.

사람들은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글이라고 하면 유명 문학작품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자신이 쓴 글이 마뜩잖아 보이고, 세상에 나갔을 때 비우호적으로 평가받을까봐 지레 걱정한다.

MBC라디오 장수연 PD는 육아 에세이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에 자신의 설익은 생각, 얕은 지식, 볼품없는 인격을 글이 모조리 드러낸다고 여겨,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계속 상상했으며 논리적 흠결은 없는지 긴장하며 체크했다고 썼다. 많은 경우 욕먹을 것 같은데 그냥 접자며 글쓰기를 포기하고 만다. 장 PD는 김민석 PD에게 조언을 구했고,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글, 그게 과연 좋은 글일까? 그런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겠어?”라는 답을 들었다. 장 PD는 글을 쓰면서 욕을 먹을 것에만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은 진짜 피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상처가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비판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게 됐다. (장수연,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어크로스, 2017년 11월, 241, 242, 243, 244쪽)

젊은 세대의 롤 모델로 떠오른 백발의 유튜버 장명숙 작가도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에서 타인의 시선, 타인의 평가에 나를 내맡기지 말고,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달래주고 품어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게 하는 에너지를 만들라고 조언하지 않았던가.(장명숙,《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김영사, 2021년 10월, 22쪽)

보통 사람이 글을 쓸 때는 솔직하게 쓰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비평, 세평을 이기고 독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는 솔직함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게 가장 좋은 글쓰기다.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작가가 2020년 6월 펴낸 《나는 오늘도 나를 믿는다》는 책 내용이 매우 솔직해 높이 평가 받았다. 이효리, 김태희, 고소영, 보아, 이승연 등 톱스타들을 고객으로 둔 정 작가의 명성이 한몫했지만, 콘텐츠가 화제였다.

달동네에 살던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을 숨김없이 털어놓았고, 수업료를 못 내 교무실에 불려 다니던 중학생 시절 이야기도 감추지 않았다. 식당,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비롯, 베이비시터, 옷감 공장 등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런 다섯 남매 집 소녀 가장의 솔직한 에피소드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김호정, 김태희·이효리 메이크업 정샘물 “빚쟁이들 오던 집, 성공 샘물”, 중앙일보, 2020년 7월 1일) 정샘물 작가는 예비 작가들에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보여줬다. 독자들은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진정성을 담아 들려주기를 원한다.

보통 사람이 글을 쓸 때는 평가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솔직함, 진정성을 담아 자신의 글을 쓰면 흠 잡힐 일이 없다. 박수 받는다.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 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 《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 《누구나 책 쓰기》가 있고, 《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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