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부터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해오고 있다. 적용 후 10년 동안 교육현장에 쌓인 피드백과 노하우가 많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고심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를 과연 새로운 인성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객관적 입장에서 들여다 보자.

위기는 곧 기회이다

학창 시절, 지루한 역사 시간에 귀가 쫑긋 집중되었던 부분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라는 내용이었다. 직지심체요절, 거북선 등에 대해 수업을 할 때면 자부심으로 가득 차 암기마저 술술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기록물을 접했을 때는 정반대였다. 그것은 바로 ‘인성교육진흥법’이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절박했으면 법으로까지 인성교육을 의무화했던 걸까? 오랫동안 현장에 몸담아 온 교사로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인성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면, 이 분야에서 해결책을 가장 먼저 제시할 나라도 우리일 수 있다는 반증이 된다. 우리의 다양한 시도들로 피드백과 노하우가 쌓인다면, 모든 나라가 고심하는 청소년 문제를 우리의 K-에듀로 해결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먼저 인성교육진흥법의 시행 후 교육현장에 적용된 많은 제도 및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다시 살펴보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진흥법을 2014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교육부는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현재 2차가 진행 중이다. 사진 경상북도교육청

인성교육진흥법 시행의 성과

2014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에서의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말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라는 8가지 핵심 가치 및 덕목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교육부는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며, 현재 2차가 진행 중이다.

제1차 종합계획의 추진 성과를 보면, 과제 달성도가 전반적으로 양호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만족도도 보통 이상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숫자로 나타내는 설문조사 외에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각 집단별 심층면담에서는 정책의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은 ‘인성교육’을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성’이라는 단어를 좋지 않은 유행어와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인성교육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교과가 도덕인데, 최근 들어 학생들은 학교생활 설문조사에서 국어, 수학보다 도덕이 더 싫다고 응답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필요가 없다’, ‘재미가 없다’ 등을 꼽았다. 교육부에서도 주입식 지도보다 체험형 교육 활동을 하라고 권고하지만, 이 또한 학생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새로운 경험이나 행사로 여길 뿐, 생활 속에서 의미 있게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나 학부모 입장에서도 인성교육은 여전히 뚜렷한 상이 잡히지 않은 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진행하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인성교육의 딜레마

이러한 결과에 대한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제2차 인성교육 종합계획이 세워졌다. 분석결과 중에 ‘인성’과 ‘인성교육’의 개념 정립이 정확하지 않고 진행하는 주체별로 각자의 생각에 맞게 해석하고 진행하기 때문이라는 부분이 필자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그렇다. 지금까지 인성교육을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방법적인 연수를 자주 들었다. 놀이와 접목하고, 이야기와 접목하고, 스포츠, 예술과 접목하는 등 수많은 시도에 관한 시달문은 많았지만, 어떤 비전과 관점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연수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학생들은 ‘인성’을 한 개인이 가진 성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거나 싫어하는 친구를 향해 ‘인성이 꽝이야’ 또는 ‘인성 쓰레기’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성을 성품으로 이해하게 되면 인성교육이 좋게 여겨질 리가 없다. 자신의 성품은 자신이 가장 사랑한다. 그런데 ‘라포’(rapport, 사람 간의 상호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품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면 방어벽을 치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성교육’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발표된 인성교육의 공식적인 핵심은 학생이 행동 지표로 받아들여야 할 ‘사회적 약속’과 ‘실천지침’을 따르도록 이끄는 데 있었다. 그런데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단계이론에 의하면, ‘밖’에서 주어지는 단일 규범과 규율을 좇는 것은 하위 단계이고, 상위 단계로 갈수록 많은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내면의 높은 사고력을 발휘하는 수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성교육처럼 8가지 덕목을 정해 놓고 단순히 그것을 지키도록 이끄는 것은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학생의 내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 발달을 차단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맹목적인 주입교육이라고 비판하는 교육학자들도 다수이다.

결국, 인성교육을 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인 상황이다. 해마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가장 1순위로 꼽히는 것이 항상 인성교육이고, 그 인성교육이 법으로 제정되어 현장에 실시된 지 8년 차인데도 학교폭력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성교육이 법으로 제정되어 교육현장에 실시된 지 8년 차인데도 학교폭력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인성교육을 덕목교육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사진 교육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

이제는 인성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인성을 성품으로 보거나, 인성교육을 덕목교육으로 보는 시각부터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한다. 개인의 성품을 바꾸거나, 사회적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교육이 아닌, 자신과 타인, 환경을 다 함께 어우르고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인드mind를 만들 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한다. 도덕을 가르쳐서 개인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품을 조절할 수 있는 더 큰 마인드를 형성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어로 마인드셋mindset, ‘마음을 어떻게 세팅할 것이냐’의 문제다. 마치 공항에서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가 항공기 내 조종사와 상호 소통을 통해 안전하게 항공기의 이륙과 착륙을 통제하듯이, 마인드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새롭게 만들어진 마인드는 많은 내면의 성품과 외부 가치들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통제 할 것이다.

하늘에 항로가 있고, 바다에 해로가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인드 교육은 그 마음의 길을 보여주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마인드교육, 교사는 교사 마인드교육, 부모는 부모 마인드교육, 경찰 마인드교육, 공직자 마인드교육 등 사회 곳곳마다 각각의 상황에 처해진 마음의 길을 보여주는 교육으로 인성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수학 공부를 할 때, 그렇게 안 풀리고 어렵던 수학문제가 공식을 알게 되면 쉽게 풀렸던 것처럼, 마인드교육을 받으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풀릴 뿐 아니라, 문제가 올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오랫동안 인성교육으로 풀 수 없었던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마인드교육으로 바꾸면, 막다른 동굴이 뚫린 터널이 되어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늘에 항로가 있고, 바다에 해로가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인드교육은 그 마음의 길을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교육이다. 사진 프리픽

현재의 인성교육 안에서 우리가 할 일

한편, 아직 마인드교육으로 새롭게 전환되지 못한 상황에서 인성교육의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길은 없을지 생각해 본다. 필자의 견해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잔소리 교육’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집안에서 부모들이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했던 잔소리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부모의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자녀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시키고 관계를 나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연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잔소리의 방법과 감정을 문제시하고 있다. 교육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에겐 잔소리 교육이 인성교육을 위해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 주변의 사소한 일, 예를 들어 제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자고 일어난 후 침구 정리하기, 벗은 신발을 바로 정리하기, 손에 비누칠을 할 때 귀찮더라도 수돗물을 잠그기 등이 습관으로 길들여질 때까지 일러주고, 부모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초석이다. 이 단계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작게 여겨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좋은 책이나 여행과 같은 체험으로 인성을 키우려 한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요즘은 학교에서 청소를 제대로 할 줄 아는 학생을 보는 것이 매우 어렵다. 자신의 물건을 소홀히 다뤄 나도는 분실물도 부지기수이다. 예전에 부모님, 선생님께 들었던 잔소리가 오늘의 우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둘째, 인성교육의 시발점은 학교가 아닌 가정이어야 한다. 학교에서 하기 싫거나 못하겠기에 떠넘기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랜 경험과 연구에 비춰볼 때, 학교에서만 실시하는 인성교육은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성교육은 반짝 체험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진행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정된 제2차 인성교육 종합계획에서는 인성교육 시간을 따로 잡지 않고 교육과정 속에 녹여서 하루 종일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과 지역사회와 연계한 인성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성교육의 책임을 각 가정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총제적인 지휘를 학교에서 담당하되 방과 후 가정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손에 비누칠을 할 때 수돗물을 잠그는 습관을 길러주고, 부모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초석이다. 사진 네이버 포스트 우리아이뉴스

K-에듀의 가치를 높이는 길은 마인드교육에

한국의 교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교육 잠재력 및 그 실제적 성과에 대해 깊은 관심과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교육의 우수모델로 우리나라를 자주 언급했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우리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혹평도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는 OECD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고, 많은 투자에도 학교폭력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나타난 우리 교육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학교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새로운 마인드교육이 정착된다면 실력은 물론 인성도 최고인 학생들로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인드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건강한 마음과 뛰어난 지혜로 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K-에듀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캡처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캡처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올해 2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3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춘천교도소 초청으로 2015년부터 재소자들에게 매달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상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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