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아이를 기다린 김소정 씨

열여덟 번의 가을이 지나는 동안 아이를 기다린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 김소정 씨는 바라는 대로 인생을 살아왔고 말이 잘 통하는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일궜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마음에 헛헛함이 커져갔다고 한다.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난임難妊의 벽 앞에서 아프지만 깊이 생각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간절한 그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고 마흔다섯 살에 작고 귀한 생명을 품에 안았다. ‘차미此美(이 아름다움)’라는 뜻의 딸아이 이름처럼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선명히 펼쳐졌다고 한다. 자식을 얻고 열한 번째 가을을 맞은 날 오후, 그에게 ‘기다린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사진 박법우 기자
사진 박법우 기자

반갑습니다. 섭외 전화를 드렸을 때 발음이나 목소리의 울림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아마 제가 아나운서로 활동했었기 때문일 거예요. 요즘 아나운서에 대한 사람들의 직업적 로망이 큰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시험을 봤을 때보다 언론 고시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고요. 당시 제게는 방송 쪽을 가야 한다는 열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 졸업 후 아나운서 시험을 봐서 합격했고 울산 MBC, 삼성그룹 사내방송사를 거쳐 그때 막 개국한 MBN에서 일했습니다. 경력은 그리 길지 않아요. 결혼 후 좀 더 여유롭게 일을 대하게 됐고 오디오 쪽이 적성에 맞아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주로 작업했습니다.

대학 시절과 결혼 생활도 궁금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자란 저는 공부도 곧잘 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4년 내내 우울한 시간을 보냈어요. 우리 학교에는 공부 잘하고, 성격 좋고, 잘 생긴 데다가 훌륭한 부모까지 둔, 모든 걸 갖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더라고요. 끝없는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을 잘 견뎌내지 못했어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넉넉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굉장히 밝고, 앞날에 대한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곳을 향해 한눈팔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야전점퍼 하나면 충분했고요. 나와 다른 그 모습에 반했고 제가 26살 때 결혼했어요. 남편과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고 솔직할 수 있었고, 사려심 깊은 그는 절 많이 아끼고 사랑해 줬어요. 부부 사이는 참 좋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마음에서 다른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남편을 따라 해외로 가기 전까지, 결혼 후 10년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구체적으로 그 10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다소 허영심 많고 도도했던 저에게 남들이 다 갖는 아이가 없다는 건 굉장한 아픔이었고 상처였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도 아이 낳고 키우는 재미난 이야기에 낄 수 없어 뭔가 비켜나 있는 쓸쓸함을 느꼈고요. 한국사회에서 결혼한 여자에게 인사말처럼 묻는 “아이는 있고?”, “아이가 몇이야?” 하는 질문이 두렵고 언짢아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시댁 눈치도 괜시리 봐야 했고, 나를 만나 남편이 불행해진 것 같아 이혼을 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도 했습니다. 제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힘들었을 때, 남편은 그냥 묵묵했어요. 똑같이 힘들법한데도 내색 없이 우산 역할을 자처하더라고요. 시댁으로부터의 눈치를 다 막아줬고 제 자존감이 밟히지 않도록 무던히 격려하고 기다려줬어요. 지금도 이런 남편이 늘 고맙지요. 그렇게 10년을 홀로 가슴앓이하다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남편을 따라 저도 해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둘이었다가 셋이 되어 걷는 세상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여러 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추억을 계속 공유하고 싶다. 사진제공 김소정
가족과 함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둘이었다가 셋이 되어 걷는 세상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여러 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추억을 계속 공유하고 싶다. 사진제공 김소정

그 당시엔 사람들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걸 동경했다고 들었습니다.

베트남, 태국, 브라질, 칠레 각 나라를 3년씩, 12년이라는 긴 시간이었어요. 한국에서와 같은 시달림이 덜했고 새로운 환경에 마음 붙일 데가 생겨서 아이 생각을 덜할 수 있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서 언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어, 태국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4개 언어를 열심히 익혔어요. 성조가 특이하고 발음이 어려웠던 베트남어, 6개 시제와 단어의 성별이 분명한 포르투갈어는 배우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해 현지인들과 의사소통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도 하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이색적인 음식도 먹고 좋은 곳을 다니며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 툭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되어 곪아 있는 걸 봤어요. 말로는 “아이 없어도 상관없다.”, “나 이대로 살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봤지만 제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생명에 대한 깊은 갈망과 절망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주변 분들이 간파했는지, 제가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몸에 좋은 음식도 챙겨주고 기도도 계속해 줬어요. 그분들의 지대한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져 때로는 무시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고립되지 않고 아이에 대한 기다림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분들 덕분이에요.

그 후 아이가 언제 찾아왔는지 궁금합니다. 그때의 심정은 또 어떠셨을까요?

동남아에서 6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발령이 나서 들어와 있었는데 그때 기적처럼 임신이 됐어요. 결혼하고 18년 만에, 제 나이 44살 때였습니다. 너무나 감사했고 행복했고 떨렸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어요. 18년 터울은 봤어도 18년 만에 초산인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면서요.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유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나와 염려도 했지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 줬어요. 가슴앓이한 엄마를 위로라도 하듯, 순하고 예쁘게 잘 자란 딸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 됐습니다. 내색 않던 남편도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둘째도 낳았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요.(웃음)

서울에 있는 한 국제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내 나라를 사랑하고 알리고픈 마음이 커져갔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보람되다. 사진제공 김소정
서울에 있는 한 국제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내 나라를 사랑하고 알리고픈 마음이 커져갔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보람되다. 사진제공 김소정

소중한 생명을 얻으셔서 정말 기쁘네요. 아이가 생기고 나서 전과 후가 어떻게 달랐나요?

막연히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다른 것을 자식 삼아 마음에 두고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보니 하늘과 땅 차이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감정의 충만함, 가족을 결속시키는 끈끈한 유대감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워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예요. 눈부신 생명의 가치, 그것을 품고 키울 수 있는 엄마가 된다는 것. 이렇게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있을 수 있구나, 그게 나에게도 허락되었다는 사실에 매번 감탄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있다가 멀리 남미로 나갔어요. 이 멋진 경험을 비로소 아이와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아이가 있는 한국 생활은 이전과 많이 달라요. 누구와도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 사람과 더욱 가까워졌고요. 또 어려운 일이 와도 아이를 갖는 불가능한 일도 이뤄졌는데 아무 문제없다는 소망, 늦더라도 시작해 보려는 끈기가 생긴 걸 봐요. 한편으로, 일찍 아이가 생겨도 좋았겠지만 그러면 자식에 대한 욕심은 더 많았을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지금처럼 느긋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세월의 연마를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된 나이에 아이를 키워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결과가 있어서 기다림이 가치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기다림 자체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물론 아이가 생겨 긴 기다림이 더욱 감사하고 의미가 커졌던 건 맞아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기다림 자체에 응축된 힘이 있었어요. 김치, 치즈, 빵 이런 음식들은 숙성과 발효를 거쳐 우리가 좋아하는 맛을 지니죠. 기다림은 방치가 아니라 맛의 깊이가 더해가는 시간입니다. 맛이 차고 무르익어가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막연하고 초조할 수 있겠지만 그 가치를 높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처럼 기다림은 우리 인생의 맛과 깊이를 더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겸허와 감사를 깨닫고, 인내라는 견고한 심지를 얻을 수 있어요. 조금 비켜나 있는 곳에서, 그늘에서 숨 고르기 하는 사람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기능도 생기고요. 또 저의 경우, 정말 많이 공부한 시기예요. 인생 공부, 언어 공부, 독서…. 그때 배웠던 언어를 토대로 지금은 한국어강사라는 인생 제3막을 시작했고요. 후회되는 건 하나예요. 왜 기다림을 즐겁게 하지 못했을까. 과정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삶인 것 같아요.

해외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외국과 한국의 문화에서 ‘기다림’의 차이가 있나요?

대체적으로 동양문화권의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나라에서는 경쟁, 정해진 시간 안에 남들보다 빨리 성취하는 것을 중요시해요. 뒤처지는 것을 경계하고 기다리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브라질의 경우, 사람 간의 차이를 존중하는 편이에요. 속도가 다른 저마다의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북돋아주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것은 행복을 감각하는 삶의 태도와도 이어져요. 브라질에 살 때, 우리 아파트 유리창 청소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행복해보여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아요. 정해진 틀 안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서 똑같은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건 없습니다. 차이와 다양성 속에서 행복의 모양이 다를 수 있어요. 그러면 즐겁게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딸 차미와 함께. 자라나는 모든 순간 아이의 생명력은 눈부셨고 그것을 지켜보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사진제공 김소정
딸 차미와 함께. 자라나는 모든 순간 아이의 생명력은 눈부셨고 그것을 지켜보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사진제공 김소정

아이에 대한 교육관도 궁금합니다.

딸 차미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부모의 역할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센서를 키워주는 것이라고 보고요. 아이가 부모를 믿고 기다리는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시켜왔어요. 약속한 것은 꼭 지켜서 신뢰를 쌓고, 그 믿음 속에서 긴 시간도 즐겁게 인내할 수 있도록요. 고맙게도 딸아이는 뭘 사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쓴 적이 거의 없어요. 작은 것 하나도 감사히 여기고요.

이제는 원하는 목표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목표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여행하며 걷고 있어요. 칠레에 있을 때는 산에 많이 올랐어요. 힘든 길을 가족이 같이 올라가면서 그 길에서 만나는 나무와 새, 냇물과 바람을 아이가 느끼길 바랐고 힘들 때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부모의 든든한 마음을 기억했으면 했어요. 목표만 향해 분주하게 서두르는 아이가 아니라, 과정 속에 펼쳐지는 풍경과 동행자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아이가 되기를, 그게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재의 제게는 ‘육아’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틈틈이 공부하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걸 더 발전시켜서 내가 배운 것, 경험한 것들이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유용하게 쓰였으면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 외국인지원센터에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굉장한데도 다문화를 향한 폐쇄적인 시각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다문화에 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전자기기, 온라인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빠른 속도를 즐기다 보니 기다림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삶에서 기다려야 할 순간은 옵니다. 그렇다면 과정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자꾸 남과 비교해 조급한 마음을 갖기보다, 혹은 쉽게 포기하기보다 과정을 즐겁게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행복하게 준비하며 즐겁게 과정을 밟다 보면 반드시 멋진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지면에서 다 밝히지는 못했지만, 김소정 씨 삶에는 길고 짧은 여러 기다림이 있었다. 대학진학을 위한 1년의 재수, 아나운서로 인정받으려 무던히 했던 연습과 노력, 어려운 외국어를 깨우치고 한국어를 가르치며 고대하던 성장의 시간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것은 아이를 기다리는 기다림이었다고 한다.

차미가 태어난 후, 그를 가장 뭉클하게 한 것은 ‘엄마’라는 딸의 목소리였다. 엄마라는 예사로운 말이 발효의 시기와 만나 비범하고 감동적인 말로 빛나고 있었다. 아이를 갖게 된 사연을 통해 사소하고 평범한 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봤다는 그는 이제 기다리는 것은 빈칸, 결핍이 아닌 꽉 찬 무엇인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금 더딜 수는 있지만 너무 늦어 포기할 일은 없다는 희망까지 덧붙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다. ‘이 아름다움’을 뜻하는 딸아이의 이름처럼, ‘차미’는 그렇게 새롭고 놀라운 삶을 그에게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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