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권오익

독일 시인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주소서.’ 뜨거운 가을볕에 곡식이 알맞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과일의 빛깔이 노란색 혹은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10월의 어느 날, 기자는 농부의 ‘기다림’이 궁금해 안동에서 ‘새힘 농장’을 운영하는 권오익 씨를 찾았다. 마침 과수원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가지 끝에 매달려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권오익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은행 전산실에서 17년간 근무했으며, 2014년부터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좋은 사과를 알아봐주는 이가 늘어나면서 농장 운영이 안정되었다. 새힘 농장 사과를 먹는 이들에게 ‘새 힘’이 나도록 오늘도 부지런히 하루를 보낸다.(사진 제공 권오익)
권오익
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은행 전산실에서 17년간 근무했으며, 2014년부터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좋은 사과를 알아봐주는 이가 늘어나면서 농장 운영이 안정되었다. 새힘 농장 사과를 먹는 이들에게 ‘새 힘’이 나도록 오늘도 부지런히 하루를 보낸다.(사진 제공 권오익)

안녕하세요? 제가 가장 바쁜 시기에 인터뷰 요청을 드린 것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가을이 농부에게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다보니 몸은 고단하지만 동시에 보람을 느끼고 즐거운 순간이기도 해요. 저희 아버지도 사과 농부셨어요. 어릴 적엔 가을이 되면 예쁘고 맛있는 사과를 먹으며 ‘가을이 참 좋다. 풍성하다. 농사는 참 행복한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부모님이 어떻게 농사를 지으시는지 몰랐죠.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농사를 지어보니, 제 입에 들어오는 농산물 하나하나 농부의 땀과 수고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잘 익은 사과를 따다 보면 문득 지난 1년간 애썼던 시간이 떠올라요. 또한 그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기쁘죠.

사과 농사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2014년도였어요. 그때 1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농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죠.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던 땅에 새 사과나무를 옮겨심고, 약 4년을 기다려 첫 열매를 얻었어요. 그로부터 9년이 흘렀죠.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초반에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사과를 재배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투자한 것보다 수익이 적어서 부업을 겸해야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태풍이 세 차례나 와서 수확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한 해 한 해 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웃음)

가을날 사과 농장의 풍경. 건강한 땅을 가꾸기 위해 정기적으로 좋은 유기질 퇴비를 뿌려준다. 또 제초제를 쓰지 않고 수시로 풀을 베서 농장을 관리한다. 그 결과 우수농산물 관리제도인 GAP 인증을 획득했다. 사진 조현주
가을날 사과 농장의 풍경. 건강한 땅을 가꾸기 위해 정기적으로 좋은 유기질 퇴비를 뿌려준다. 또 제초제를 쓰지 않고 수시로 풀을 베서 농장을 관리한다. 그 결과 우수농산물 관리제도인 GAP 인증을 획득했다. 사진 조현주

올해는 어떻습니까?

요즘은 기후변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어요. 올해 3월 기온이 예년보다 10도가량 높았어요. 사과꽃이 일찍 폈죠. 그러다 4월에 온 꽃샘추위로 동해를 입었고 결실률이 떨어졌어요. 여름엔 한 달간 비가 연속적으로 쏟아지면서 한차례 병충해가 왔고요. 이 때문에 올해 추석에 홍로 농사를 포기한 농가도 있더라고요. 저희도 작년과 비교해 30% 정도 손실을 보았어요. 올해 엄청난 강수량이 예상된다는 뉴스를 보고 겨울부터 일찍이 가지치기를 했어요. 열매의 수나 크기는 작아도 튼실한 사과를 얻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그 결과는 가을이 될 때까지는 장담할 수 없잖아요. 올해 수확한 사과를 먹어봤는데, 맛이 좋아요. 오랜 기다림 끝에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지요.

사과 농부가 지나는 ‘기다림의 시간’이 궁금합니다.

매해 봄, 꽃이 피는 시기부터 기다림이 시작되지요. ‘수정이 잘되면 좋겠다.’ 하는 바람으로 황사가 지나길 기다려요. 또 찬 바람이 매섭게 불면, 며칠 밤잠 설치며 고비를 또 한 번 넘기지요. 그러다 여름이 되면 ‘밤에도 너무 더우면 사과가 못 크는데….’ 하고 걱정하면서 사과를 기다리지요. 그러다 어느 날은 호우가, 때로는 태풍이 찾아왔고 우박이 내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기상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 애를 쓰지만 결국 자연을 기다리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에요.

농사를 지은 지 9년이 흘러도 기다림이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에요.(웃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로 ‘내 의지로만 되지 않는 일’을 마주하는 날이 훨씬 많아졌어요. 저는 사과 농사에 제 모든 걸 쏟았어요. 아버지의 가업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물러설 곳이 없죠. 어려움을 만나도 그대로 기다리며 기도할 수밖에는 없었어요.

신기한 점은 조용히 자연을 기다려야 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이거 참 감사하다.”라고 말할 일들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덕분에 마음도 단단해지고요. 저는 농사를 짓다가 어려움을 마주칠 때 이렇게 믿어요. “하늘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이 어려움 또한 복으로 바뀐다.” 그러면 진짜 그렇게 돼요.(웃음)

사과 수확 후, 꼭지를 칠 때 쓰는 가위가 일렬로 줄을 서있다. 꼭지를 쳐서 보관해야 사과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사과가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모든 과정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사진 조현주
사과 수확 후, 꼭지를 칠 때 쓰는 가위가 일렬로 줄을 서있다. 꼭지를 쳐서 보관해야 사과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사과가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모든 과정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사진 조현주

사과가 사계절을 지나며 맛이 들 듯, 시련도 사람을 더 멋지게 만드나 봅니다.

정말 그래요. 특히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이 오면 뜨거운 볕과 밤 서리를 온전히 맞으며 단맛이 차고, 색도 빨갛게 물들어가죠. 제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던 순간은 군 제대 직후였어요. 저는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자랐어요.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났죠. 제가 초등학생 때 환갑이셨으니까요. 아버지는 공무원 박봉 월급을 모아 과수원 농사를 일구신 분이었어요. 언제나 저에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죠. 그 말이 참 싫었어요. 어린 마음에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했지요.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 군에 다녀온 후, 제가 크게 사기를 당해 돈을 잃은 적이 있었어요. 얼마나 괴롭던지요. 처음으로 인생의 쓰디쓴 맛을 봤죠. 당시 아버지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사기 당한 사실은 차마 말씀을 못 드렸어요. 나중에라도 아버지가 알고 화를 내시면, 집에서 쫓겨나는 수밖에는 없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수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죠. 아버지가 다 알고 계셨지만, 모른 척하셨다는 걸요. 그저 제가 다시 길을 찾기를 바라셨던 거예요.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셨어요. 그저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어서, 얼굴을 볼 때마다 ‘빚내서 농사짓는 거 아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씀하신 거였죠. 돌부리에 넘어져 못난 아들이 되어서야 아버지 마음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사랑이 제 삶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어요. 요즘 부쩍 아버지가 더 그립습니다.

사진 조현주
사진 조현주

아버님이 일구셨던 사과 농장에서 오래오래 좋은 열매를 내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풀 베는 작업을 했어요. 저희 농장에선 제초제를 쓰지 않다보니, 여름부터 6회 정도 풀을 직접 베야 해요. 오늘이 마지막 작업이었어요. 10kg이 넘는 예초기를 들고 몇 시간씩 작업을 하니 힘들면서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행복했어요. 이런 수고와 기다림 끝에 맛있는 사과가 오겠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요. 그러다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아버지도 이럴 때는 웃으셨겠지?” 하고요. 저는 농부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땀 흘려 얻은 돈도 무척 값지고요. 제 몸과 마음을 가장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울타리가 이 농장이라 생각해요. 사과가 많은 역경을 지나며 좋은 열매를 맺듯이, 지금 조금 수고롭지만 이런 삶의 끝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과수원을 가꾸면서 살아야죠. 지금처럼, 자주 아버지를 떠올리면서요.

기자가 만난 농부의 기다림은 그랬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내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 앞에 매 순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하늘의 도움을 기도하는 것. 누구도 좋아할 리 없는 어려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맨몸으로 밤 서리를 맞아야 할 때, 뜨거운 해 아래 있어야만 할 때도 온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만 말자. 그 사이에 사랑이, 고마움이 진하게 깃들어 어느새 깊은 맛을 내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