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저하를 느낀 시점부터 고전주의 화풍 버리고 동시대의 일상 그려 나가
당시 유행한 예술 장르인 ‘발레’를 화폭에 담아
무대 위 화려한 공연 장면보다 무대 뒤 고된 연습과 묵묵한 기다림에 주목해

우리는 매일 기다림 속에 하루를 산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반가운 누군가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늘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어려운 일이 기다림이 아닐까. 상대가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앞차가 0.5초라도 늦게 출발하면 경적을 울린다. 주문한 지 30분이 채 안되었는데 배달음식이 언제 오는지 전화로 독촉하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자동문인 줄 알면서도 ‘닫힘’ 버튼을 재빨리 누른다. 일에 있어서도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목표를 향한 빠른 성취와 결과를 내세우는 우리에게,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 de Gas, 1834~1917)는 그림에 ‘기다림’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기다림’, 1882년, 종이에 파스텔, 48.3x61cm, 로스엔젤레스 폴 게티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기다림’, 1882년, 종이에 파스텔, 48.3x61cm, 로스엔젤레스 폴 게티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위 그림에서 보듯이, 화폭에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발레복을 입은 젊은 여성과 그 옆에 검정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나란히 있다. 젊은 여성은 공연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 와중에 왼쪽 발목에 통증이 있는지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은 어머니로 보인다. 정면 아래 우산 끝을 주시하며 다소 긴장한 듯한 이 여성은 딸의 통증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듯 조용히 옆을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은 입은 옷만큼이나 대조적이다. 무대 위 발레리나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무대 뒤 고된 연습의 흔적과 묵묵한 기다림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포착해 냈다.

‘드가의 자화상’, 1855년, 캔버스 에 유채, 81x64.5cm, 파리 오르 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드가의 자화상’, 1855년, 캔버스 에 유채, 81x64.5cm, 파리 오르 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에드가 드가는 1834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금융업으로 재산을 모았으며 아버지 역시 유능한 은행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13세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드가를 데리고 미술품 수집가들을 만나러 다니거나 루브르박물관을 자주 방문해 아들이 이른 나이부터 미술과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장남인 그가 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초년에 예술가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에도 기다려 주었다.

1855년, 드가는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 1867)의 제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초기에 고전주의 미술에 매료되어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공부를 많이 했고, 특히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앵그르의 조언을 받아들여 데생 연습을 꾸준히 했다. 1860년대까지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 작품을 700점 이상 복제했다고 한다.

드가는 36세에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격연습 중 오른쪽 눈의 시력 저하를 느낀다. 왼쪽 눈도 점차 시력을 잃어가 말년에는 앞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손상되기 시작한 1870년대 이후부터 고전주의 화풍을 과감하게 버리고 동 시대의 일상을 그려나간다. 그는 정기적으로 파리의 오페라하우스에 방문해 무용수 그림을 그렸다. 신체의 선을 강조하는 예술인 ‘발레’는 평소에 데생이나 선을 중요하게 여겼던 드가에게 더없이 매혹적인 소재였다.

‘무대 위의 무희’, 1878년, 종이에 파스텔, 60x44cm, 파리 오르세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무대 위의 무희’, 1878년, 종이에 파스텔, 60x44cm, 파리 오르세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위 그림은 발레리나의 유연하고 고혹적인 미를 담은 작품이다. 발레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다. 새하얀 발레 의상은 조명을 받은 듯 환하게 빛난다. 마치 천사가 화폭에 스며든 것처럼 무용수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시선을 뗄 수 없게 한다. 구도 역시 과감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는 당시 귀족들이 주로 앉던 위층 특별석에서 바라본 무대를 표현한 것으로, 공연의 한 장면을 관람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토록 우아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무대를 꾸미기 위해 발레리나는 수없이 많은 연습을 반복하고 또 소화해 내 야 했으리라.

‘발레수업’, 1871~1874년, 캔버스에 유채, 85x75cm, 파리 오르세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발레수업’, 1871~1874년, 캔버스에 유채, 85x75cm, 파리 오르세미술관소장. 사진 위키아트

위 작품은 무용수들이 발레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을 순간 포착한 것이다. 가운데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다채로운 포즈가 인상적이다.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있는 발레리나, 옷매무새를 다듬는 발레리나, 지친 기색을 보이는 발레리나, 등을 긁거나 수업이 지겨운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곳을 응시하는 발레리나 등 여러 표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마치 수업받을 때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수업 시간 학생들의 모습은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무언가를 습득하며 배우는 길은 만만치 않는 법. 길고 고된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발레리나의 몸짓에 담은 작품이다.

드가는 ‘발레의 화가’라는 별명답게 무용수와 발레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세기의 발레는 당시 문화예술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많은 화가들이 발레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 상황에서 드가의 다른 점이라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 발레리나보다 휴식을 취하거나 대기하거나 연습 중인 발레리나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는 것이다. ‘무대 위의 무희’와 같이 공연 장면을 그린 것은 그가 남긴 200여 점의 발레 작품 중 50여 점에 그친다. 처음에 무대 위 발레 공연을 그린 드가는 점차 리허설이나 수업 시간의 무용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분장실과 연습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무대 뒤 현장에 집중했다.

‘무대의 발레 리허설’, 1874년, 종이에 파스텔, 54.3x73cm,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사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홈페이지
‘무대의 발레 리허설’, 1874년, 종이에 파스텔, 54.3x73cm,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사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홈페이지

위의 리허설 장면을 그린 작품을 보자. 무대 공연과 대기 중인 무용수 모두가 보인다. 역동적인 구성, 독특한 색감이 조화를 이루어 멋지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다. 실전같이 발레의 정확한 몸놀림과 포즈를 무대 위에서 표현해 내야 하고, 몇몇은 다소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강도 높은 연습으로 뻐근해진 목을 스트레칭하기도 하고 끈이 풀리지는 않았는지 슈즈를 살피기도 한다. 제각기의 기다림의 시간을 보여준다. 수업을 거쳐 실제 무대에 오르기 전, 쉴 새 없이 리허설하며 공연을 점검하는 발레리나들의 분주함이 그림에 담겨 있다.

당시 발레는 재능 있는 중산층 여식들도 배웠지만 주로 가난한 하층민 딸들이 생계를 위해 뛰어든 분야이기도 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엄마의 손을 잡고 발레단에 들어간 소녀들은 극기 훈련과도 같은 매섭고도 고된 연습을 받아야 했다. 자신과 가족의 배고픔과 불우한 처지를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에 고단하고 힘든 과정을 버티며 인내해야 했다. 드가는 눈앞의 화려한 결과물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이면의 과정 속 기다림에 더 눈길을 돌렸다. 마주치는 어려움과 아픔을 그대로 직시함으로써 담담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이 같은 시대의 아픔이 묻어나지만, 달리 보면 시대를 아우르는 현실적인 기다림의 얼굴을 담고 있다.

‘두 발레 무희의 휴식’, 1879년, 종이에 파스텔, 버몬트 쉘부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두 발레 무희의 휴식’, 1879년, 종이에 파스텔, 버몬트 쉘부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또 다른 작품 ‘두 발레 무희의 휴식’을 살펴보자. 계속되는 연습으로 힘들었는지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지친 무용수의 푹 숙여진 고개와 축 늘어진 팔다리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발가락으로 온 몸을 지탱하는 동작이 많다보니 다리나 발목의 통증은 무용수라면 누구나 겪는 아픔이다. 고통과 피곤이 몰려오지만 다음 동작을 위해 애써 힘을 모으고 있다.

왜 이 작품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그 기다림의 순간이 우리 삶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리라. 주목받기 힘든 묵묵한 기다림의 시간, 남몰래 눈물과 고통을 삼켜가며 인내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 본 우리들은 이 그림을 보는 자체만으로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나는 ‘두 발레 무희의 휴식’을 보면 발레리나 ‘강수진’이 생각난다. 눈부신 조명 아래 화려한 옷을 입은 발레리나의 표정과 달리, 그의 발은 생김새가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인 강수진의 발을 보고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한다. 보이는 아름다움 이면에는 고된 훈련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그리고 이 그림 속 발레리나처럼 말이다. 발레 지망생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어렵고 힘든 과정의 기다림 없이는 삶의 아름다움이 찾아오지 않는다. 마치 나비가 번데기 시절이 없으면 나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기다림’은 마치 화분에 씨를 심고 기다리는 것과 같다. 싹은 금방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그마한 싹이 나고 점점 커진다. 가끔씩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물을 너무 많이 주기도 한다. 싹이 시들시들해져 죽을 것만 같다가도 다시 물과 영양제를 주고 정성껏 가꾼다. 어느새 다시 살아난 줄기에서 결국 꽃이 피어난다. 장미와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에 그간의 노고와 어려움은 마음에서 사라진다. 삶의 과정이 힘들고 때로는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일 때가 있다. 눈앞에 성과가 쉬이 보이지 않고, 수없이 흔들릴지라도 그 어려움과 마주하는 ‘기다림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의 꽃은 그냥 피지 않는다.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길가온 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서 미술교육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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