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로 떠난 황근영

가을이다. 계절이 주는 풍요로움과 따사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집이 아닌 바깥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움과 마주할 수 있는 여행을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멕시코에서 색다른 여행을 즐기고 있는 황근영 씨가 본지의 표지 모델이다. 작년에 대구청소년센터 행사에서 우연히 멕시코 친구들을 만난 그는 난생 처음 보는 멕시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지만 선뜻 말을 건넬 용기는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멕시코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그 친구들은 몇 달 후 멕시코로 돌아갔다.

이 만남은 근영 씨에게 ‘이번엔 내가 멕시코로 찾아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때마침 멕시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알았고, 새로운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올해 2월, 그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멕시코로 떠났다.

표지 모델 황근영​​​​​​​​​​​​​​​​​​​​​​​​​​​​고등학교 때부터 영어가 재밌고 좋아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스페인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스페인어의 부드럽고 따뜻한 어감이 정 많고 친절한 멕시코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더 좋다고 한다. 현재 멕시코 이곳저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표지 모델 황근영​​​​​​​​​​​​​​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가 재밌고 좋아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스페인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스페인어의 부드럽고 따뜻한 어감이 정 많고 친절한 멕시코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더 좋다고 한다. 현재 멕시코 이곳저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생활한 지 9개월이 되었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와, 벌써 그렇게 됐나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IYF 멕시코시티 지부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이곳에는 지부장님 가족과 한국 봉사단원 6명, 현지 자원봉사자들까지 약 60명 정도가 함께 살고 있어요. 멕시코에는 26개 도시에 국제청소년연합 지부가 있는데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주로 큰 행사를 해요.

4월에는 3,000명과 함께 마인드 캠프를 했어요. 저희는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행사 홍보와 공연을 담당했고요. 5월에는 ‘아카풀코’라는 해안 도시에 가서 일주일 동안 코리안 캠프를 했어요. 코리안 캠프에서는 K-pop, 한국어, 태권도 등 여러 아카데미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멕시코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인기가 아주 좋았죠.

저희는 연예인도 아닌데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웃음) 그 후로도 몬테레이, 베라크루스 같은 도시에 가서 캠프를 여러 번 했었고, 코스타리카와 미국에서의 행사도 돕기 위해 얼마 전 다녀왔어요.

멕시코에 도착한 날 공항에 마중 나온 현지인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날 공항에 마중 나온 현지인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말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셨네요. 한국과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작년에 한국에서 멕시코 친구들과 같이 있었을 땐 문화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어요. 멕시코에 직접 와보니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제 친구들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저처럼 많이 당황했을 것 같아요.

적응하기 어려웠던 문화 중 하나는 신발 신는 문화였어요. 서양 문화가 그렇듯 멕시코 사람들도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녀요. 제가 좌식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어요. 지금은 많이 적응했지만 가끔씩 현지 친구들이 저희 숙소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여전히 놀라긴 해요.(웃음)

적응하기 어려웠던 음식도 있었어요. 멕시코에는 노팔 선인장이 유명해요. 건강에 좋은 효능이 많아서 식재료로 많이 쓰인대요. 선인장도 먹을 수 있다는 건 노팔 선인장을 먹고 처음 알았어요. 요리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먹었을 땐 그리 달가운 맛은 아니었어요. 안 먹고 싶어도 이곳에서는 주는 사람이 권하는 걸 거절하지 않는 게 예의래요. 그래서 처음에는 약 먹듯이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켜버렸어요. 아직도 먹을 때 조금 망설여지긴 하지만 나름의 매력을 찾으며 적응하고 있어요.

반대로 ‘이런 문화는 좋다!’라고 생각되는 면이 있다면요?

현지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멕시코에 재미있는 생일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생일인 친구 앞에 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가 놓여 있고 친구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어요. 그때 주위에 있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르디다(베어 물어)! 모르디다! 모르디다!”를 외치면서 친구의 얼굴을 누르는 거예요. 얼굴에 크림이 잔뜩 묻은 친구를 보며 웃고 장난을 쳤어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멕시코 사람들은 ‘꼬모 에스따스?¿Cómo estás?’라는 말을 자주 해요. ‘잘 지내?’냐는 뜻이죠. 한국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때나 하는 말이잖아요. 여기 사람들은 전날 만난 사람한테도 잘 지내냐고 꼭 물어봐요. 잘 지낸다고 하면 싱긋 웃으면서 지나가지만 “그저 그래”, “아니, 기분 별로 안 좋아.”라고 답하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하며 고민이나 어려운 점이 있는지 들어주려고 해요.

저는 남에게 마음을 표현하거나 의지하는 걸 잘 못해서 어려워도 말을 잘 안했어요. 친구들이 제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밀어냈는데 그들은 다시 제 옆에 와서 괜찮은지 물어보고 걱정해줬어요. 멕시코 사람들의 정 많고 따뜻한 모습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많아요.

코리안 캠프에서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코리안 캠프에서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사람이든, 문화든, 어색하고 불편한 것도 받아들이면 수용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이곳에서 저와 다른 것들을 만났을 때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웠어요. 기자님 말씀처럼 제 마음에 폭이 넓어져서 그런지 요즘은 제 성격이나 행동이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껴요.

저는 원래 내향적이면서도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어요. 제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승부욕도 강하고 잘해야 한다는 집념도 강했어요. 평소에는 괜찮은데 행사 준비를 하거나 맡은 일을 할 땐 그런 성격이 잘 드러났어요. 그런데 멕시코 친구들은 대부분 저와 반대로 활기차고 낙관적인 성격이예요.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도 크게 상심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했어요. 처음에는 제 속이 좁아서 여유가 없다보니 저와 다른 친구들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크게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아요. ‘이 사람은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 것 같아요. 받아들이니, 저에게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워요.

멕시코시티의관광명소인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앞에서 단원들과 함께.
멕시코시티의관광명소인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앞에서 단원들과 함께.

그런 마음의 공간은 어떻게 생겼어요?

좋은 멘토를 만난 덕분일까요? (웃음)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지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려운 면만 보이기 때문이에요. 분명 좋은 면도 있는데 그건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그 일이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이 말씀이 제가 어려울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났어요. 그리고 몇 번 따라해 봤지요.

4월에 열렸던 마인드 캠프에서 댄스 공연을 선보이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밤잠 줄여가며 팀원들끼리 열심히 연습했기에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행사 2주 전에 갑자기 제 무릎이 아프더니 며칠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거예요. 행사는 점점 다가오는데 무릎은 계속 아프고, 연습을 제대로 못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나 대신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이제 와서 대형을 바꿀 수 도 없는데 나 때문에 공연을 망치면 어떡하지?’, ‘무릎은 또 왜 이렇게 안 낫는 거야! 혹시 무릎에 큰 문제가 생겼나? 이렇게 계속 아프면 남은 시간 동안 다른 활동들은 어떻게 하지?’ 그때 지부장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차분히 다른 쪽으로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든 공연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해서 방법을 찾아야 해. 나는 왜 자꾸 못하는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내 무릎에 정말 큰 문제가 생겼다면 지금 난 걷지도 못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좀 아프긴 해도 걸을 수 있잖아. 미리 걱정하지 말자.’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연습을 했어요. 공연 당일 날 무릎이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무사히 공연을 마쳤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일은 물론 사람이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무릎 통증을 극복하고, 팀원들과 함께 열심히 준비한 무대에 올라가 마음껏 공연할 수 있었다.
무릎 통증을 극복하고, 팀원들과 함께 열심히 준비한 무대에 올라가 마음껏 공연할 수 있었다.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실제로 경험한 거네요.

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제가 몬테레이에 갔을 때 현지 지부장님이 50명의 학생들을 모아서 댄스 클래스를 열자고 하셨어요. 제가 스페인어도 잘 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댄스 실력도 안 되거든요. 그런데 왜 나에게 하라시는지 처음엔 이해도 안 가고 하기 싫다는 마음만 들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봤어요. ‘학생들에게 댄스를 가르치려면 내가 스페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지.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에 소홀했는데 이 기회에 스페인어 실력을 키울 수 있구나.’, ‘멕시코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건 처음인데 학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겠다.’ 그렇게 댄스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안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어요. 이런 일들을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어느새 제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멕시코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덕분에 현지 친구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멕시코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덕분에 현지 친구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봉사 기간이 앞으로 3개월 남았는데, 그 기간에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연말에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스크루지’로 전국 공연 투어를 다닐 예정이에요. 작년에는 총 6개 도시에서 8회 공연을 해서 약 9,000명의 관객들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올해도 함께 열심히 준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멕시코에 있는 나머지 시간 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저는 영어가 재밌고 좋아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는데 이곳에서 스페인어를 배워보니 영어랑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저는 스페인어의 어감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아요. 스페인어로 말할 때 느껴지는 리듬이 영어와는 또 달라서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를 맛보게 되거든요. 스페인어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꾸준히 공부할 생각입니다.

몬테레이 코리안 캠프에서 50명의 학생들에게 댄스를 가르쳐 주었다. 나와 학생들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몬테레이 코리안 캠프에서 50명의 학생들에게 댄스를 가르쳐 주었다. 나와 학생들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멕시코로 간 근영 씨가 작년에 한국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는지 물었다. “네, 만났어요! 친구들이 모두 다른 지역에 각기 살고 있어서 같은 자리에서 함께 만나지는 못하고요. 제가 한 명씩 따로 만났어요. 한국에서 그 친구들이 저한테 지어준 스페인어 이름이 ‘로베르토’인데요. 친구들이 저를 보자 ‘로베르토!’ 하며 손을 흔드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오랜만에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무척 정겨웠거든요.”

우리는 수많은 만남 속에 살고 있다. 사람, 일, 문화, 환경 등 우리가 만나는 것들이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면, 마음의 공간은 넓어진다. 황근영 씨가 멕시코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소중한 경험들이 앞으로 그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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