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하지 않고 사는 오늘날 풍경

‘아침에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어 카카오톡 메시지와 뉴스를 확인한다.’ 요즘의 익숙한 일상 풍경이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웹툰,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에 몰두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장면 역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걷는 모습이 ‘좀비’ 같다고 해서 영미권에서는 ‘스몸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사람들은 보행이나 운행할 때만 아니라,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침대 위에서도 이런저런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잠이 든다.

아침부터 밤까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족 간이나 친구 간의 대화가 줄어들어, 점점 소통이 어려워져 가고 있다. 이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연구에 의하면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은 사고 위험을 76%정도 높인다고 한다. 거북목 증후군, 목디스크도 유발한다.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이 몸과 마음을 해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전화결제 산업협회 블로그

최근에는 챗GPT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몇 번의 검색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굳이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찾기 위해서 도서관을 방문할 필요가 없고 오랜 시간 공들여 자료를 조사할 이유도 희박해졌다.

또한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글보다는 영상, 그것도 짧은 영상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으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바이트댄스의 틱톡, 인스타그램의 릴스, 유튜브의 쇼츠와 같은 숏폼(short-form: 보통 1분 이내의 짧은 영상 콘텐츠)의 유행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이 해석해주는 짤막한 영상을 통해 정보를 접하다보니 직접 글을 읽어보고 해석하며 비판하는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으며 집중력도 쇠퇴하고 있다. 스마트폰, 영상,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더 많은 요즘 세대들의 문해력(글을 이해, 해석, 창작할 수 있는 힘)이 떨어져서 실질 문맹률(글자는 알지만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글을 알지만 뜻을 모르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틱톡의 인기로 숏폼이 유행하게 됐고 릴스, 쇼츠 등으로 플랫폼이 확산되었다. 짧으면서도 강렬하며 콘텐츠 제작 진입장벽이 낮은 장점이 있으나, 집중력과 문해력 저하라는 큰 단점도 있다. 사진제공 왼쪽부터 인스타그램 릴스 캡처, 바이트댄스 틱톡 캡처,유튜브 쇼츠 캡처
틱톡의 인기로 숏폼이 유행하게 됐고 릴스, 쇼츠 등으로 플랫폼이 확산되었다. 짧으면서도 강렬하며 콘텐츠 제작 진입장벽이 낮은 장점이 있으나, 집중력과 문해력 저하라는 큰 단점도 있다. 사진제공 왼쪽부터 인스타그램 릴스 캡처, 바이트댄스 틱톡 캡처,유튜브 쇼츠 캡처

생각을 대신해주는 기계의 등장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깊이 사고하고 추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어떤 일을 깊고 넓게 멀리 성찰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진지하고 깊은 사고에서 얻어지는 보석 같은 마음의 세계나 심오한 지식보다는 얕은 생각과 지식,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에 마음이 머물게 마련이다. 또 아름답고 깊이 있는 세계보다 속도와 효율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거대한 인터넷 기업들은 사람의 마음이 첨단 기기에 머물도록 현란한 기술력으로 인간을 현혹시킨다. 인간의 사고와 선택을 교묘하게 조정하여 디지털 기기에 종속시킨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기계(인공지능 AI)가 등장하여 앞으로는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이 우리 뇌의 구조를 바꾸고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와 있지만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과 디지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을 사는 동안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있지만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할 중대하고 심각한 일도 많다. 인생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사고하고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깊이 사고하는 능력이 쇠퇴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춥고 배고팠던 지난날

필자가 어렸을 때의 대한민국은 정말 가난했다. 춥고 배고픈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해외의 여러 나라, 특히 미국으로부터 많은 무상 경제 원조를 받아 간신히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 세대도 그랬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들의 곤궁했던 삶은 더더욱 눈물겨웠으리라.

초가집에 비가 새서 방 안에 바가지와 양동이를 갖다 놓고 잠을 자기도 했고, 비닐우산을 쓰고 가다가 바람이 한번 휙 불어오면 우산이 뒤집어지고 부러져서 비를 흠뻑 맞고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초등학교에 가곤 했다.

모나미 볼펜 자루를 잘라 그 끝에 몽당연필을 끼워 쓸 수 있는 데까지 아껴 쓰던 기억, 추운 겨울날 난로 위에 물을 끓여 찬밥을 말아먹던 어린 날의 시간들이 지금은 모두 그립고 아련한 추억거리이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주변으로 높은 빌딩, 아파트들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국 경제발전을 대표하는 상징 단어로 ‘한강의 기적’이 쓰인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주변으로 높은 빌딩, 아파트들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국 경제발전을 대표하는 상징 단어로 ‘한강의 기적’이 쓰인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투철한 의지로 이룬 경제 발전

우리는 다른 나라에 국권을 빼앗겨 본, 아픈 한이 있는 민족이기에 애국심이 투철했다. 뼈저린 굶주림도 겪어보았기에 빈곤을 극복하려는 남다른 의지도 있었다. 불과 육십여 년 전 우리 세대의 비참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한국은 전 세계가 경이로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땅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해주지 않으려고 국민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일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운동’이 나왔다. 영화 ‘국제시장’이 잘 보여주듯,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독일에 간호사로, 광부로 가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했고, 뜨거운 사막의 땅 중동에 진출해서도 구슬땀 흘리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우리 민족은 가는 곳마다 근면함으로 인정을 받았다.

‘배워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열 또한 뜨거워서 1959년까지 정부 예산 중 교육비가 국방비 다음으로 많이 책정되었다. 덕분에 국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들 중에서 1960년대 산업 현장을 이끌어 나갈 중추적 인재들이 양성되었다. 교육은 국민들이 민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도 키워주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불어 닥친 석유 파동,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딛고 일어섰다. 2006년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돌파했고 2018년에는 3만 달러를 넘어서게 됐다.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경제 성장이 만든 또 다른 그늘

한국 경제가 약 65년 만에 400배 이상 성장했지만, 행복과 만족도도 그에 비례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살률, 교통사고율, 이혼율은 높아지고 저출산, 빈부의 양극화 등 많은 사회문제가 야기되면서 삶의 만족도는 이전보다 훨씬 떨어졌다.

무엇보다 춥고 배고픈 삶에 시달리면서 부모 세대들은 한결같이 ‘나는 굶어도 자식들은 먹여야겠다. 나는 못 배워도 자식들은 가르쳐야겠다.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를 흩뜨리지 않았다. 자기 자식을 잘 먹이려 하고, 자기 자식의 기를 안 죽이려고 애쓰다 보니,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녀 세대들은 부모들의 피와 땀방울 위에서 가난과 고생을 모르고 성장했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혜택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많은 청소년들은 작은 기온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온실의 화초처럼 마음이 약해졌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향이 두드러졌다. 자녀가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환경 속에 있도록 해주다 보니, 깊이 사고를 하거나 욕구를 자제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봉사하는 마음은 점점 약화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죽어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안 하려는 성향이 급증하 면서 청소년들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새마음운동’이 필요할 때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요즘 자식을 키우는 젊은 부부들에게는 적용이 잘 되지 않는다. 가정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마땅히 가르치고 고쳐 주어야 할 일인데도 그저 자식을 싸고도는 학부모들 때문에 책망이나 훈계를 해주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토록 사람들이 자제하지 못한 채 충동성만 커지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또한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10배 더 잘 살게 되면 우리는 행복할까?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마음은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 성장이 행복의 증가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고속 경제 성장과 민주화, 산업화를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세계는 더 메마르고 황폐해졌다. 춥고 배고픈 삶을 살 때는 등 따뜻하고 배만 부르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물질의 풍요와 육체적 평안을 위해 사는 삶은 마치 부도가 확실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세상에 사는 동안 물질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이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면 행복할 줄 알지만, 그런 삶은 욕구의 노예가 되는 삶이다. 욕구를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참된 행복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부모가 갖는 당연한 마음이지만 정말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의 요구대로 뭐든지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역경을 선물해야 한다. 사람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를 잘 극복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넓어지며 둥글어지고 성장한다.

대한민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하고 행복해진게 아님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제 ‘새마을운동’이 아닌 ‘새마음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마음의 세계부터 배워가야 한다. 내 마음속의 욕구를 절제하고 올바른 마인드를 갖추고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주변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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