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순우리말의 어여쁨과 정겨움을 발견하고 감탄할 때가 있다. 어쩌다 시집을 읽거나, 우연히 걸으면서 간판을 보다가 저 단어가 우리말 같은데 무슨 뜻일까 궁금했던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내가 충청도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들르고 싶은 카페가 있다. ‘해어름 카페’라는 특별한 이름 때문이다. ‘해어름’이 뭐지?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니 ‘해 질 녘’을 나타내는 순우리말 ‘해거름’의 충청도 방언이란다. 그 카페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있다고 하는데 아직 직접 찾아갈 기회는 없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이름이 ‘윤슬’이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 말처럼 요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잔물결처럼 잔잔하게 지속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봉사동아리였다. 이름도 예쁘고 활동도 보람이 있어서인지 학기 초면 학생들이 많이 몰렸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순우리말이 주는 매력을 제법 경험한 것 같다. 순우리말은 소리도 어여쁘지만 담고 있는 뜻도 발음과 짝이 잘 맞는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그 경이로운 묘사에 손바닥을 절로 친 적이 있지 않을까.

온새미로 언제나 변함없이

라온 즐거운

연흔 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눈 위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의 흔적

우수리 잔돈

모래톱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

나르샤 날아오르다

하늬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졸가리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배냇짓 갓난아기가 자면서 웃거나 눈, 코, 입 등을 쫑긋거리는 짓

알섬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

알짬 여럿 중 가장 중요한 내용

비마중 비를 나가 맞이하는 일

헤산바산 이리저리 헤어지는 모양

너나들이 서로 반말하는 사이

빌밋하다 얼추 비슷하다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갈음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함

난벌 나들이할 때 착용하는 옷이나 신발

든벌 집 안에서만 입는 옷이나 신발

말뚝잠 꼿꼿이 앉은 채로 자는 잠

모둠꽃밭 정원 한옆에 둥글거나 모지게 만든 꽃밭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어느 유명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SAPOON SAPOON’이라는 카페 이름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사푼사푼’인데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니 순우리말이리고 했다.

사푼사푼=몸과 마음이 가볍고 상쾌한 상태.

건강 관련 기업에서 운영하는 카페답게 이름이 잘 어울려서 또 다시 감탄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꽃 ‘코스모스’는 순우리말로 ‘살사리꽃’이다. 바람이 불면 살랑거려 살사리꽃이라고 하는 건지 생각할수록 재미가 있다.

화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민낯 같은 순우리말. 발음이 수수해서 예쁘고, 알고 보면 뜻이 너무 소박해서 심지가 깊어서 더 정이 간다. 요즘은 외래어에 밀려 잊히고 있는데, 10월에는 우리말을 맘껏 배우고 사용해보고 싶다.

글쓴이 백성미

32년간 충남 지역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교육자로 근무했다.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바꿔주는 마인드교육 전문가의 꿈을 품고 공부하면서 틈틈이 지역사회에 필요한 곳을 찾아가 강연과 상담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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