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늘한 바람결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산빛에서 가을을 느낀다. 10월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등반 관련 전문 지식이 없고, 등산의 경험이 적은 평범한 사람도 이때가 되면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간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삶을 더 풍족하게 하고, 생각과 정서의 뜰까지 넓혀갈 수 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

9월~11월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로 모여드는 시기다. 우기인 6월~8월에는 산 아래쪽에서 비, 위쪽에서 눈이 매일 내리기 때문에 안개가 끼고 길이 위험해 현지인들도 산에 거의 오르지 않는다. 겨울은 추운 날씨에 눈사태의 위험까지 있어서, 건기이면서도 날씨가 화창한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가 트레킹의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산을 오르면 고도에 따라서 사계절을 맛볼 수 있다. 1,000m 이하는 여름, 1,000~2,000m는 봄·초가을, 3,000m는 완전한 가을, 4,000m를 넘어가면 초겨울, 5,000m 이상은 혹독한 겨울이다.

사람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느끼는 오해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혹은 산을 잘 타는 전문가만 가능하지 않냐는 것이다.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지역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의 경우(4,200m까지 등정) 9일 코스가 330만 원 정도, 에베레스트 경우(5,200m까지 등정)는 16일 코스가 450만 원 선이다. 이 안에 항공권,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해외여행치고는 저렴한 여행지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히말라야 산세는 완만한 편이다. 고도가 높고 먼 길인 것은 맞지만 산세가 순하며 등산 길도 우리나라 둘레길이나 시골의 오솔길 정도다. 하루에 4~6시간 정도 걸을 기본 체력만 있다면 일반인도 충분히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서두에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트레킹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주로 퇴직한 분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굉장히 많이 온다. 한 달 동안 트레킹을 한다든지, 배낭 메고 타지를 여행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나길 추천한다.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히말라야 3,500m에서. 트레커들이 한 줄로 서서 우리나라 시골 오솔길 정도의 길을 걷고 있다. 가을 정취가 느껴진다.

절대 서두르지 마라, 내려갔다 오는 것도 필요하다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조급해 말 것’. 이론적으로 우리 몸은 2,450m에 가면 고산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낮은 지대에서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면 기압의 영향으로 산소가 희박해진다.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떨어지면 동맥을 흐르는 피에 녹아든 산소의 양이 줄고, 몸에 저산소증이 발생하는데 흔히 고산증으로 일컫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는 내 몸의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월급이 줄면 생활 속 지출 비용을 삭감해야 하듯이,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몸속 장기나 근육에 산소를 10개씩 주었다면 이제는 7개로 줄어드는 식이다. 모든 에너지가 줄면 운동할 수 있는 양이 줄어서 소화력과 같은 몸의 기능이 전체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고도가 올라가면 피의 농도가 끈적끈적해져 혈액 순환이 잘 안된다. 우리 몸은 산소를 더 많이 운반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적혈구를 늘려서 피가 끈적끈적해진다고 한다. 혈액 순환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고 모자 쓰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증상이 찾아오는 것은, 내 몸이 그것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고, 더 이상 고도를 높이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도 무리하게 고도를 올리면 구토할 수 있고 심하면 폐수종이나 뇌수종이 오는 수가 있다.

고산증은 산을 잘 탄다고 해서, 산 경험이 많다고 해서 비켜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에 자만해서 급히 고도를 높이는 사람, 목표를 향해 무조건 앞만 바라보고 성급히 나가는 사람에게 고산증은 더 빨리, 심하게 찾아올 것이다. 빨리 움직이면 그만큼 순간적으로 필요한 산소량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3,000m 대에서 한 번, 4,000m 대에서 또 한 번, 하루 동안 충분히 쉬어가야 한다. 우리 몸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 그럼에도 증상이 심하다면 무조건 500~1,000m 정도 내려가기를 권한다. 내려갔다가 다음 날 올라오면 대부분 증상은 사라진다. 그 사이에 몸이 적응이 된 것이다. 그렇게 또 다음 높이를 맞이하면 된다. 내 몸이 자연에 잘 순응해야 긴 여정을 소화할 수 있으므로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이때 고도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가면 약간의 두통 외에는 고산증에 대해 큰 걱정은 안해도 된다.

하루에서 다른 하루로 이어지는 우리 인생에도 가끔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삶의 파고波高 를 견디지 못해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이 딱 끊어질 것 같을 때, 숨 고르기를 하자. 도태되어 보인 다고 해서 조급해할 것이 아니다. 툭툭 털고 다시 천천히 가면 된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완주할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히말라야 2,600m 부근. 봄이나 초가을의 날씨이다. 파란색 하늘과 초록색 숲의 선명한 대비가 아름답다.

다음을 위해 이 순간을 희생하지 말라

어차피 하루에 갈 거리는 정해져 있다. 빨리 도착했다고 해서 내일 갈 거리를 더 가지 않는다. 스치는 풍경을 감상하며 차분히 발을 내딛어 보자. 목표만 바라보며 성급히 가면 도중의 순간들을 놓치기 쉽다. 늘 다음 장소, 다음 순간을 위해 산다면,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트레킹에서는 성급히 속도를 높일 수 없기에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의 주변을 살핀다. 때로는 왔던 길도 뒤돌아본다. 매 순간 깨어 있어서 집중하다 보니, 도중의 풍경을 세세히 기억한다. 분주한 일상에 지치고 삭막해진 우리를 포근히 감싸는 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히말라야는 우리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설산’의 풍경만이 아니다. 사계절의 풍광을 보여준다. 특히 3,000m 후반~4,000m 초반에 가면 만년설과 함께 가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어 환상적이다. 4,000~5,000m에 가면 별 구경하기에 좋다. 대기가 맑고 깨끗해서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별과는 차원이 다르다. 네팔의 고산족은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게 많다. 비슷하면서도 이색적이어서 굉장히 흥미롭다. 산간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서 호의적인데 ‘나마스테(안녕하세요)’ 한 마디에 현지의 차茶를 맛보는 행운도 만날 수 있다. 힌두교, 티베트 불교의 신비로운 사원도 볼 수 있다. 고도에 따른 풍경을 깊숙이 느끼며, 곳곳에 삶의 터를 잡고 사는 네팔인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산행을 할 때 지금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가다 보면 무언가 놓치는 게 있다. 천천히, 때로는 걸음을 멈출 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히말라야 4,000m 부근. 점점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척박하고 가파른 산에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히말라야 4,000m 부근. 점점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척박하고 가파른 산에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함께하는 즐거움이 긴 거리를 단축한다

고산 등반은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동료가 있어야 한다. 트레킹의 경 우도 단독 트레킹은 금지이다. 혼자에게는 상당히 외롭고 힘든 길이다. 금전적으로도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늘어나고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것에 차이가 난다. 팀을 이뤄서 가는 것을 꼭 추천한다.

보통 한 팀은 적게는 5~6명, 어떨 때는 10명이 넘어간다. 그 안에 가이드, 짐 담당, 요리 담당 등 현지인들이 배당되어 트레킹을 돕는다. 필자는 현지인과 이야기 나누며 길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실수와 잘못을 해도 관대하게 받는다. 소통은 꼭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손짓, 발짓해 가며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다.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경우 ‘줄을 서서 간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히말라야는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곳이다. 여러 외국인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도 상당한 재미가 있다.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고, 사진도 찍어주다 보면 어느새 긴 거리도 짧아져 있다. 인생은 같이 가는 것이다.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 할지라도, 여럿 속에 섞이어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으며 고통을 나누다 보면 어려운 길도 수월하게 갈 수 있다. 동료가 없는 인생길은 얼마나 외롭고 삭막한가.

말없는 산이지만 산으로부터 배우는 바가 크다. 산은 우리 마음의 뜰을 넓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좀 더 지혜롭게 해준다. 동네 둘레길부터 트레킹을 시작해도 좋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천천히 오르내리며, 고생스럽더라도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이 가을에 산이 베푸는 넉넉한 가르침과 경이로움과 만나길 바란다.

글쓴이 김미곤

대한민국의 산악인.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의《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고 고산 등반을 꿈꾸게 됐다. 1998년 마나슬루 등반길에 오르며 히말라야 초행길에 나섰고 2000년 초오유 등정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세계에서는 40번째,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 기록이다. 국내 체육 훈장의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수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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