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 동북부 해안에 조개를 잡아먹는 ‘푸른 꽃게’가 출현해 이탈리아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한다. 원인은 수온 상승으로, 원래 북미 대서양 연안에 서식하고 있던 푸른 꽃게가 몇 년 전부터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으로 유입된 것이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꽃게’가 천대를 받는 것 같지만, 수십억 원의 예산을 써가면서까지 보이는 족족 잡아 없애는 이유는 이탈리아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골칫거리 푸른 꽃게로 위협받는 이탈리아 수산업

한 마리의 무게가 1㎏까지 나가는 푸른 꽃게는 먹성이 매우 좋다. 날카로운 집게가 조개껍데기를 뜯어내는 데 능숙해 양식 조개뿐 아니라 주 식재료인 홍합, 굴, 도미 등도 마구 먹어 치운다. 이렇게 생태계 파괴를 부추기고 있는 푸른 꽃게를 잡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포상금 42억 원을 배정했는데, 끈질긴 생명체는 잡을수록 개체가 더 늘어난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조개 생산국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푸른 꽃게의 등장으로 조개 양식업이 폐업 위기에 몰려 있으며 이탈리아 토종 꽃게의 생존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조개가 들어간 봉골레 파스타를 먹기 어려운 날이 올 수도 있다.

이탈리아 동북부 베네토 주에서는 요즘 푸른 꽃게와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가 기자회견 중에 푸른 꽃게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출처 ANSA 영상 캡처
푸른 꽃게가 이탈리아엔 위협적인 존재지만, 관점을 바꾸면 게 수요가 많은 나라로 수출할 기회가 된다.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푸른 꽃게가 이탈리아엔 위협적인 존재지만, 관점을 바꾸면 게 수요가 많은 나라로 수출할 기회가 된다.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푸른 꽃게는 수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살기 어렵기 때문에 이상적인 수온이 유지되는 곳을 찾아 유럽 연안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해양생물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바다 수온에 민감한 해조류나 어류들은 1도만 차이가 나도 생존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 동해에 흔하던 명태들이 어느 날 러시아 쪽으로 우르르 올라가고, 잘 잡히던 고등어와 오징어가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다른 서식지를 찾아 떠나가기도 한다. 반대로 전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어종이 바다에 모습을 나타낸다.

2014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는 푸른 꽃게가 물고기를 먹어 치울 뿐만 아니라 어민들이 쳐 놓은 원통형 덫까지 손상시켜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2017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지로 해외 판로가 개척되면서 오히려 수출 효자 상품이 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튀니지에서 수입한 꽃게는 무려 163톤에 이르렀다. 푸른 꽃게는 가오리와 상어 외에는 천적이 없기 때문에 꽃게를 즐겨 먹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천적이다.

네덜란드를 가난에서 구해준 청어

역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중세 유럽에서 가난하고 열악했던 나라 ‘네덜란드’를 한순간에 부강하게 만든 ‘청어’가 있다. 1452년, 해류가 변하면서 발트해에서 잡히던 청어가 네덜란드 앞바다인 북해로 몰려와 너도나도 청어잡이에 뛰어들었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 100만 명 중에 30만 명이 청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했고, 매년 여름이면 약 1만 톤의 청어를 잡아 전 국민의 밥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맛이 좋은 청어는 빨리 상했기 때문에 잡은 청어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어부들은 급히 회항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배를 먼 곳까지 끌고 갔다 오는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네덜란드의 한 어부가 아주 깔끔하고 명쾌하게 해결했다. 이름이 ‘빌럼 벤켈소어’라는 어부였는데, 그는 작은 칼을 개발해 선상 위에서 청어의 배를 갈라 ‘함수’로 절이는 ‘선상 염장법’을 고안해냈다. 당시엔 소금이 금값이어서 소금으로 절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일조량이 적고 갯벌이 거의 없는 유럽의 지형에서는 천일염을 대량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시방편으로 바닷물을 끓여 85%의 수분을 날린 고염도의 소금물 ‘함수’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값비싼 소금에 비하면 너무 저렴해서 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다.

 4~5월에 발트해에서 잡힌 청어를 염장해서 만든다. 사진은 스웨덴의 발효 통조림 수르 스트뢰밍이다.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중세 때 소금은 매우 비쌌기에 바닷물을 끓인 함수로 청어를 절였다.    사진 프리픽

선상 염장법은 점점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이제는 먼 바다에 가서도 오랜 시간 신선하게 생선을 보관하게 되어 조업을 좀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네덜란드는 청어 산업에서 어떤 경쟁국들보다 훨씬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어부가 만든 작은 칼 한 자루와 짜디짠 함수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훗날 신성로마제국 황제 샤를 5세는 빌럼 벤켈소어 어부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만들기도 했다.

청어 손질에 분업화를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함수에 절인 청어를 육지에 와서 다시 한 번 소금에 절이면 1년 넘게 보관할 수 있어서, 절인 청어는 유럽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당시엔 전쟁이 흔했고 이때 청어는 군인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해주는 귀한 식품이었다. 또한 말린 청어는 보관 기간이 훨씬 길어서 군인들의 필수 식량이었다.

한편 장사수완이 뛰어난 유대인들은 종교적 박해로 스페인에서 쫓겨나 네덜란드에 정착한 뒤, 청어 산업에 손을 댔고 최초로 분업화를 도입했다. 물고기를 잡는 사람, 내장을 발라내는 사람, 소금에 절여 통에 넣는 사람 등으로 작업 과정을 나눈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숙련된 인부들은 1시간에 약 2천 마리의 청어 내장을 발라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늘었고, 분업화로 인한 효율성이 더 높아졌다. 점차 분업화의 범주가 제품의 수출 과정에까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기업화가 가능해졌다. 오늘날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어업위원회’를 만들어 유대인들은 체계적으로 감독하고 품질도 관리해갔다.

중세 최강국이던 스페인은 유대인을 몰아내면서 국운이 쇠락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는 유대인을 받아들여 중상주의重商主義를 펼치면서 유럽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1609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핸리 허드슨이 지금의 뉴욕인 맨해튼 섬을 발견해 그곳에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아메리카 항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되었고, 나아가 전 세계에 식민지를 확장해 신대륙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다. 또한 1621년에 서인도회사를 설립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였다가 가장 부유한 나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이번에는 가난한 섬나라 영국이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른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유럽의 왕좌 자리에서 슬슬 뒤로 물러앉게 된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쳐올 때가 있다. 좋고 나쁜 상황은 확률적으로 반복되기에 언제든지, 누구든지,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그 순간, 잠시 당황스럽더라도 차분하게 생각하며 지혜를 얻는다면 나 자신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따뜻한 봄과 무더운 여름이 있으면 혹한의 겨울도 있는 법이다.

글쓴이 윤미화

경남 남해 출생.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MBA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의령에서 30년 째 살면서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알아두면 유익한 1일 1지식 한달 교양수업》이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