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어릴 때 저는 대자연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일곱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피난을 갔다 와서 보니 학교가 불타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할 수 없어 칠판을 들고 다니면서 나무 밑이나 다리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공부도 자연 속에서 했습니다.

학교 수업은 오전에 다 마쳤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동생과 함께 자연 교실로 갔습니다. 주로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물고기 잡는 어부였다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물고기를 많이 잡아 복음 전도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물고기 잡는 것이 퍽 재미있었습니다. 흐르는 물에서 제가 폭이 좁은 곳에 뜰망을 대고 기다리고 있으면 동생이 물고기를 제 쪽으로 몰아왔습니다. 물고기들이 뜰망에 탁탁 부딪히는 것이 손에 느껴져 뜰망을 들어올리면 그 안에서 물고기들이 파닥파닥 뛰었습니다. 비가 와서 시냇물이 넓게 흐르다가 비가 그쳐 물이 줄어들면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거기에 가서 물을 다 퍼낸 뒤 바닥에 파닥거리고 있는 물고기들을 손으로 주워 담기도 했습니다.

배추벌레야, 너는 조금 있으면 나비가 될 거야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잡고, 메뚜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잠자리가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물에서 살던 물벌레가 물가에 자라는 풀을 타고 위로 올라와서 허물을 벗으면 그 안에서 잠자리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날개가 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접혀서 몸에 붙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날개에 혈관이 있는데 그 사이로 피가 아주 빠르게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날개가 서서히 펴지기 시작하고, 잠자리가 날개를 파르르 떨다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날다가 풀 위에 앉고, 두 번째 날아오르면서는 하늘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물벌레가 잠자리로 변하고, 굼벵이가 매미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 놀랍고 신비합니다. 징그러운 배추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도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배추벌레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비가 될 것 같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배추벌레와 제가 이야기를 한다고 해봅시다.

“배추벌레야, 너는 조금 있으면 나비가 될 거야.”

배추벌레는 제가 하는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를 위로하려고 하시는 말이지요? 저는 배추벌레일 뿐이에요. 저기 하늘을 나는 나비에게는 날개가 있잖아요. 제 몸 어디에 날개가 있어요? 아니면 제 몸에 날개를 달 수 있나요? 징그러운 이 몸에 날개를 단다 해도 어울리기나 하겠어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예요. 그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저는 나비가 아니라 배추벌레예요.”

아마 배추벌레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배추벌레가 예쁜 나비가 되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자연 속에서 성장해오면서 그런 아름다운 변화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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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도소의 사형수 남인환

제가 더 성장하면서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도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진짜 변합니다. 제가 대구교도소에 가서 만난 남인환이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교도소로 돌아와 마음이 담담했다고 합니다.

‘내가 사형 선고를 받았구나. 얼마 후면 사형을 당하겠구나.’

가족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보고 울었습니다.

“이놈아, 이게 무슨 일이냐?”

동생들도 면회를 왔습니다. 그런데 사형수가 된 자신을 가족들이 뭔가 꺼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는 누가 면회를 와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자주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죽여라!! 왜 안 죽이냐?”

어느 날, 우리가 만든 전도지 하나가 그가 수감되어 있던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냥 찢어버리려다 독방에서 너무 심심하니까 그가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심심할 때마다 다시 읽었습니다. 종이가 해어질 정도로 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하루는 전도지에 적힌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교도관에게 성경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지를 만든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우리가 교도소로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에 그의 삶이 변했습니다.

얼마 뒤에 저는 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조그마한 엽서 한 장이 제가 복무하고 있던 부대로 날아왔습니다. 엽서에는 아주 짤막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 남인환, 주님 품으로 가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렀고 저는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을 살릴 법이 없다는 것이…

제가 대구에서 목회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목회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북악 스카이웨이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차를 운전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침 길 옆에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어서 차를 몰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나이 많은 목사님이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목사님,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마당에 차를 잠깐 세워 놓았다가 도로 상황이 좋아지면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세요.”

목사님이 상황을 이해하고 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목사님 집에 들어가서 점심까지 얻어먹었습니다. 목사님이 자신은 이북에서 왔다고 하며 김치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예전에 대구교도소 교목으로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교목으로 재직한 기간을 확인한 뒤, 제가 물었습니다.

“혹시 남인환 씨라고 아십니까?”

“남인환, 내가 잘 알지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그분이 사형을 당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저는 남인환 씨가 죽기 전에 같이 신앙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절차대로 진행되어 남인환 씨의 얼굴에 검은 보자기를 덮었지요. 검사가 나와 사형 집행문을 읽고, 그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확인한 후 사형을 집행한다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남인환 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라고 물었지요. 남인환 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요. 검사가 하라고 하자, 얼굴을 덮은 보자기를 벗겨 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검사가 그렇게 해주라고 했어요.”

사형장에는 집행관이 있고, 종교 의식을 행하는 신부나 승려나 목사가 있고, 사망을 진단하는 의사가 있고, 검사가 있습니다. 남인환 씨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 겁니다. 내 명에 못 죽고 사형을 당하니까요.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여러분이 불쌍합니다. 지금 나는 죽지만 여러분은 안 죽습니까? 언젠가는 여러분도 죽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내 죄를 용서하지 못해 이렇게 사형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법으로는 내 죄를 다 용서받았습니다. 잠시 후면 나는 예수님의 품에 영원히 안길 겁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법으로는 죄인이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 받아 하늘나라에 가면 좋겠습니다.”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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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에, 사형을 집행하던 검사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을 살릴 법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남인환. 그는 전에 악독한 사람이었고 살인자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짧은 날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이 마음 중심에서부터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벌레가 잠자리가 되고,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화는 아름답습니다. 그런 변화는 자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일어납니다. 더럽고 흉악한 사람이 밝고 깨끗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개발자이다. 성경에서 마음의 세계를 연구해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메커니즘을 마인드교육으로 집대성하였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신기한 마음여행》,《마인드교육:원론과 사례연구》등 자기계발 및 마인드교육 서적 16권과 신앙서적 66권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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