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해외봉사자 박주혜, 정해선

아프리카 대륙 남쪽에 위치한 에스와티니는 해외봉사 7개월 차 대학생인 박주혜, 정해선 씨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나라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그 나라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익숙치 않은 것들과 부딪히는 불편함을 즐거이 감수하면서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들의 근황을 소개한다.

박주혜, 정해선(우측부터) 두 사람은 에스와티니에 서 처음 만났다. 다른점이 많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전공이 물리치료학이라는 것과 이 나라를 추천해준 분이 동일인이라는 점.(박 주혜 씨의 사촌언니이자 정해선 씨의 학교 선배) 이 처럼 서로에 대해 알아가 며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주혜, 정해선(우측부터) 두 사람은 에스와티니에 서 처음 만났다. 다른점이 많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전공이 물리치료학이라는 것과 이 나라를 추천해준 분이 동일인이라는 점.(박 주혜 씨의 사촌언니이자 정해선 씨의 학교 선배) 이 처럼 서로에 대해 알아가 며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녕하세요. 에스와티니는 어떤 나라인가요?

주혜 : 에스와티니의 본래 이름은 스와질란드였어요. 독립 50주년이 되던 2018년에 국명을 스와질란드에서 에스와티니로 바꿨어요.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왕정국가로 국왕이 통치하고 있지요. 국민들은 국왕을 나라의 아버지로 섬기며 굉장히 존경해요.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집집마다, 가게마다 어딜 가나 액자에 담긴 국왕, 국모, 국무총리의 사진이 걸려 있어요.

해선 : 국왕의 지혜로운 통치 덕분인지 사람들이 순수하고 정이 많아요. 공동체의식이 강해서 이웃과 주변 사람들도 잘 도와주죠. 치안도 좋고요.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사우보나(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요. 그렇게 몇 번 인사를 주고 받은 사람들은 서로의 이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저 사람 나랑 자주 인사하는 이웃인데, 내가 가서 도와줘야겠다.’ 하고 발 벗고 나서요.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그들의 미풍양속 덕분에 제 마음이 훈훈해졌던 기억이 많아요.

같이 지내는 학생들과 한 컷 촬영. 이 나라 사람들 미소는 백만 불짜리다. 사진제공 박주혜
같이 지내는 학생들과 한 컷 촬영. 이 나라 사람들 미소는 백만 불짜리다. 사진제공 박주혜

해외봉사 국가를 에스와티니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혜 : 저는 삼남매 중 막내인데요. 저희 언니와 오빠가 먼저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저에게도 가보라고 권해주었어요. 하지만 3년제 대학에서 물리치료학을 전공하고 있는 저는 이미 2학년까지 마친 상태였고, 1년만 더 공부하면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할 수 있으니 굳이 휴학까지 하면서 해외봉사를 떠날 이유가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학과 친구들과 친해서 저는 그들과 같이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면 워크숍이라도 다녀오라고 해서 등 떠밀려 참석했어요.(웃음) 그런데 워크숍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각 나라에서 1년간 봉사하고 돌아온 선배 단원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체험담을 발표하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게 보였어요. 저만 빼고 다들 해외봉사에 진심인 것 같았죠. ‘이 사람들은 나랑 다르구나.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이 길이 나에게도 필요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워크숍 마지막 날 가장 관심이 갔던 에스와티니로 해외봉사 신청서를 냈어요.

해선 : 저는 우연히 대학교 글로벌 특강에 참석했는데 그때 강사가 IYF 에스와티니 지부장이었어요. 그 분은 강연에서 에스와티니로 간 2015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저는 그때 에스와티니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어요.(웃음) 강연에 크게 감동한 저는 ‘나도 저곳에 가서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에스와티니에 올 수 있었어요.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 ‘쌤’과 ‘닭심장 스튜’다. 옥수수 알갱이가 박힌 쌤은 씹는 맛이 좋고, 스튜와 다른 채소들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사진제공 네이버 블로그 별난 에스와티니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 ‘쌤’과 ‘닭심장 스튜’다. 옥수수 알갱이가 박힌 쌤은 씹는 맛이 좋고, 스튜와 다른 채소들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사진제공 네이버 블로그 별난 에스와티니

처음에는 한국과 다른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해선 : 맞아요.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환경이나 문화가 한국이랑 많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피부로 직접 느껴보니 너무나 달랐어요. 그 중에서도 제가 적응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던 것이 음식이었죠. 이곳의 주식은 빱과 쌤 그리고 스튜에요. 빱은 옥수수가루를 넣고 한참을 저어서 만든 음식으로 백설기 떡처럼 포슬포슬한 식감이에요. 쌤은 빱처럼 옥수수가루로 만들지만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가서 더 고소한 맛이 특징이죠. 이 나라에서 스튜는 카레나 짜장처럼 빱에 비벼 먹는 소스를 말해요. 치킨 스튜, 감자 스튜, 소시지 스튜 등 종류도 다양하죠. 지금은 정말 맛있게 먹지만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어요. 이 음식을 1년 동안 먹으면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겠다 싶었죠.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살이 더 찌고 있지만요.(웃음)

주혜 : 저는 물을 아껴 써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살면서 물이 안 나와서 당황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물이 안 나올 때가 종종 있어요. 특히 씻고 있다가 물이 갑자기 끊기면 무척 당황스러워요. 밖에 있는 친구에게 물 좀 달라고 요청하니까 다른 곳에 가서 물을 길러 와야 한대요. 힘들게 길러 온 물로 씻으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풍족하게 물을 썼던 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현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사진제공 정해선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현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사진제공 정해선

평소에 우리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잘 모르다가, 모자라고 부족한 상황이 와야 새삼 감사를 느끼는 것 같아요.

해선 : 네, 저도 좀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니까 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희 지부에는 봉사 단원 외에 많은 현지인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이 나라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IYF 단체에 에스와티니 국왕께서 3만 평의 부지를 선물로 주시면서 청소년 센터를 지으라고 하셨죠. 그래서 저희 지부에서 건축학교와 음악학교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모집했고, 그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음악과 건축을 배우고 있어요. 센터 건물을 짓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도 많고요.

에스와티니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니 대화를 많이 해요.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해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계속 이야기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횡설수설해도 그들은 제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줬거든요.

그들은 생전 처음 만난 저에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나 어려운 사정을 스스럼없이 다 말해요. ‘날 뭘 믿고 이런 이야기를 다 하는 거지?’ 의아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하네.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바꿔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내가 살아온 인생, 어려웠던 일, 속마음을 다 털어놨어요.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마음이 참 따뜻해지더라고요.

그들은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저를 무시하거나 평가하지 않았어요. 제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었죠. 그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배웠어요.

 나와 제일 친한 친구 부시시웨와 함께. 언제나 나를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부시시웨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제공 박주혜
 나와 제일 친한 친구 부시시웨와 함께. 언제나 나를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부시시웨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제공 박주혜

주혜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주혜 : 네, 있어요. 저는 상대방에게 불편하거나 어려운 게 있어도 잘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참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었죠. 친구들은 저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고, 저도 그렇게 인식되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단원들과 매일 얼굴을 보며 살다보니 불편하고 안 맞는 것들이 정말 많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참고, 참고, 참다가 나중엔 도저히 못 참겠기에 제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어요.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서로 생각이 다르니까 계속 다툼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루는 지부장님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어요. 친구들과 계속 부딪히고 싸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그런데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 아카데미 시간이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사진제공 정해선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 아카데미 시간이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사진제공 정해선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 궁금하네요.

주혜 : “괜찮아, 친구들이랑 계속 싸워.” 저는 싸우는 게 너무 힘들고 그만 싸우고 싶어서 말씀드린 건데 지부장님은 오히려 계속 싸우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싸우면서 네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면 돼. 사람은 교류할 때 평안과 행복을 느끼거든. 소통하지 못해서 고립되면 불행해져. 네가 이제까지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가야.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고 대화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길 바란다.”

‘정말 이렇게 계속 싸우는 게 맞나?’ 예전엔 싸울 일이 생기면 먼저 입을 다 물어버렸거든요. 그런데 계속 단원들과 싸우다보니 조금씩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뭐가 문제일까?’, ‘왜 자꾸 부딪힐까?’ 제 모습을 돌아보기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어요. 또 싸우는 과정에서 하나씩 배우는 것들이 있었어요. 지부장님 말씀처럼 저는 이제까지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예요. 이곳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소통하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배울 수 있었어요. 비록 그 과정이 힘들었고, 좀 오래 걸렸지만요.(웃음)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일곱 명이 에스와티니에 모였다.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하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 사진제공 IYF 에스와티니 지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일곱 명이 에스와티니에 모였다.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하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 사진제공 IYF 에스와티니 지부

두 분 모두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걸 배웠네요. 과정은 힘들어도 배운 만큼 성장했을 거예요.

해선 : 맞아요. 제가 좀 달라졌다고 스스로 느꼈을 때가 있었어요. 저희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요. 그러면 이곳의 아이들이 너도나도 참석하죠. 한번은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튀는 행동을 하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있었어요.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지부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지부장님이 교실에 와서 그 아이를 살펴보시더니 “괜찮아. 이 아이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계속 참석하면 또래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릴 거야. 여기서 계속 배우면 달라질 거야.”라고 하셨어요. 예전 같았으면 제 눈에 보이는 대로 아이를 판단했을 텐데,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현지 친구들처럼 저도 그 아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어요. 지부장님 말씀처럼, 이 아이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변해가는 거예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무척 행복했어요.

주혜 :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맞춰가는 방법을 알게 되니,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게 편해졌어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도 전보다 훨씬 넓어졌고요. 그전에 제가 얼마나 속 좁은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면 정말 창피해요.(웃음) 약 7개월 동안 제게 꼭 필요한 경험들을 한 것 같아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새삼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에스와티니에 오길 참 잘했어요.

살면서 만난 문제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고 답이 없는 건 아니다. 전선을 연결하면 전기가 흐르고, 파이프를 연결하면 물이 흐르듯, 막혀있지 않고 흐르면 언제든 통할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을 어렵게 찾지 말자.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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