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프리픽
사진 프리픽

메릴랜드에서 워싱턴D.C.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에서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대신, 편안해 보이는 높이에 노란색 파스텔 풍 건물들이 강과 호수 그리고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이 배경인지, 자연이 배경인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도시 근교에 짧게 머물 예정이라서 이 아름다운 도시를 구경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6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습격하였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던 미국 내 여론이 고개를 숙였고, 영국 수상 처칠이 그토록 바랐던 미국의 참전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 내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을 잠재적인 스파이로 보아 수용소에 가두기까지 했다. ‘조선’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은 국제 사회에서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조선인들까지 오해를 받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 바람이 엉뚱한 데서 불었다. 약 30년 전 일본에서 옮겨다 심은 벚나무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건너온 벚나무를 다 베어버려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들까지 이에 동조하였다. 워싱턴D.C.에 심은 벚나무가 모조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벚나무를 지킨 사람은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닌, 이승만이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하고 있었다.(나중에 그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조선에 우호적인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미국 내무부를 찾아가서 벚나무의 원산지가 조선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삼국시대 때 백제의 우수한 문물이 전래되면서 왜倭의 수도인 나라奈良에 벚나무를 옮겨 심었고 그래서 일본 전체에 퍼지게 된 점을 설명했다. 그러므로 일본벚나무는 ‘조선벚나무’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근거 자료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무부가 거절을 하자, 이승만은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는 일본 백과사전에서 일본벚나무의 원산지가 울릉도라는 자료를 찾아내었다. 미국 내무부는 조선이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난색을 표하며 ‘조선’ 대신 ‘동양’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였고, 그래서 결국 일본벚나무들은 동양벚나무가 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름을 조선벚나무로 바꾸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벚나무를 살리고자 한 염원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 주 전에 읽은 복거일 씨의 《물로 씌어진 이름》이라는 책에서 접하게 되었다.

편견, 즉 ‘일본벚나무는 없애버려야 한다.’는 잘못된 관점이 자칫하면 멀쩡한 벚나무를 벨 뻔했고, 비록 조선벚나무라는 주장이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동양벚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서라도 벚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 내 머리에서는 ‘벚나무’에는 ‘사람’이, ‘일본벚나무’에는 ‘편견’이, ‘조선벚나무’에는 ‘진실’이, 그리고 ‘동양벚나무’에는 ‘생명’이 대입된 새로운 문장의 덩어리가 오랫동안 맴돌았다.

사람 사이에 많은 편견이 있다. 그 편견에 맞설 때 우리는 ‘진실’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상대한다고 여겨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상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생명을 구하거나 사람을 얻지는 못한다. 남과 남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고, 떼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부모와 자식 사이, 그리고 부부 사이에도 편견이 있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편견이 아니라는 생각은 편견을 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고, 반면 나의 의견이나 관점이 편견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편견은 바다의 썰물같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간다. 아쉽지만 동양벚나무라고 명명해서라도 벚나무를 살릴 수 있었다. 벚나무가 바뀌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벚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된다.

우리 부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반갑게 맞아 주시고 우리가 지낼 방까지 마련해 주신 지인이 마침 토요일이라 직장에 가지 않는다면서 한나절이라도 시내를 둘러보고 가라고 권해주셨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안내를 해주시는데, 도로변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여기 있는 나무가 벚나무인데, 봄 축제 때 정말 대단합니다.”라며 말해주셨다. 마침내 몇 주 전에 책에서 읽었던 동양벚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계절이 가을 초입이라서 벚꽃을 볼 수 없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변하는 역사와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름이 좀 애매하게는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봄에는 더없이 화사한 꽃을 피우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동양벚나무라는 이름이 좋다.

글 박문택 변호사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