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한다. 뉴스 속에는 국가 간, 지역 간, 구성원 간의 분쟁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친구들 사이에도, 가족 간에도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런 갈등을 ‘언제나’ 평화롭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지난 8월,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개최된 테드TEDxBorrowdale(세계적인 강연 플랫폼 TED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만들어졌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짐바브웨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계와 함께 나누면서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대에서 청소년 멘토로 활동하는 양경찬 씨가 그 방법을 소개했다. 그의 강연을 간추려 소개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여러분은 ‘듣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듣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에 100% 동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경청하는 법을 배운 후, 놀라운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제가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어떤 분을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경청의 대가’라고 부릅니다. 지금 그분은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큰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재력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은 서로 다른 국적, 문화, 종교,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갈등 없이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어요.

제가 그분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으십니까?” 그러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청하는 것이야.”라고 하시더군요.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 건가요?” 그 대답은 ‘상대방이 나의 왕인 것처럼 경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왕? 왕의 말을 듣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러면서 그분에게 ‘경청’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청’의 기술을 삶에도 적용해보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적용 사례를 말씀드려볼게요. 저는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짐바브웨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발목이 크게 부러졌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 학생은 1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울면서 아들을 달래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아들은 자기 방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요청을 받고, 제가 그 학생을 찾아갔습니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 힘이 없는 눈빛…. 아무 말 없이 바닥만 응시하고 있는 학생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좋아하는 취미가 뭐야?” “게임이요.” “그래? 나도 게임 좋아하는데 언제 한번 같이 할까?” “…” 그게 우리의 첫 대화였습니다. 그후에도 학생을 자주 찾아갔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물론, 학생은 제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만 겨우 할 뿐이었어요.

그렇게 열한 번째 만나던 날이었어요. 처음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밖에서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제게 물었어요.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예요?” 너무 기뻐서 얼른 대답했어요. “그렇구나.”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그리고 열여섯 번째 만나던 날, 이 학생이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그날, 학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 말 한마디에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그 학생과 저는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열여덟 번째 만나던 날에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어요. 제가 매일 4시에 일어난다고 말하니 다음 날부터 그 학생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해요. 저와 함께 가끔 외출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운동도 했어요.

그렇게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이 학생이 자기 방에서 나와 사람들을 사귀고, 직업 학교를 가고, 취직을 했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지요? 제가 한국을 떠나 짐바브웨로 오던 날, 그 학생이 많이 울었고 저도 몹시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는 마음으로 단단히 연결이 되어 있지요. 누구나 ‘경청’의 자세를 배워 살다 보면, 삶 속에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하나둘 쌓여갑니다.

‘경청’에 이르는 다섯 가지 규칙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자 할 때 뛰어난 말솜씨, 훌륭한 지식이나 교훈 혹은 물질적인 선물 등을 떠올리기 쉽죠. 그에 비해 제가 말하는 ‘경청’의 전략은 간단하지만 어렵고,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청의 세부적인 방법을 다섯 가지로 나눠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규칙, ‘상대방의 말을 방해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의 왕을 만났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가 말을 멈출 때까지 계속 들어야겠죠? 몇 시간이든, 몇 번이든 듣는 겁니다. 그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고, 고개도 끄덕이는 등 ‘잘 듣고 있다’는 제스처도 함께요.

두 번째 규칙, 상대방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이에요. 통계적으로 사람이 다음 말을 하기까지 평균 7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누구든 몇 분간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의 대화 주기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다면, 그 주기를 기다렸다가 허락을 받고 말을 시작해보세요.

세 번째 규칙, 말을 할 때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늘 가르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하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네 번째 규칙, 상대방의 대변인이 되어보세요.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잘 듣고 요약해서 전해보는 거죠. 그러면,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규칙, 이해하지 못할 때 ‘내 마음의 폭이 좀 좁구나.’라고 인정하세요. 이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100번 들어도,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사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 내 마음의 폭이 좀 좁구나’ 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00번을 듣는 과정에서 여러분 마음에 새로운 세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가도, 잠시 제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마음이 훨씬 개운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앞서 소개해드린 다섯 가지 규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경험 상, 실전 적용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제가 배운 ‘경청하기’에 온 정신을 집중해봤어요.

하루를 보내며 만나는 아주머니, 할아버지, 친구,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을 왕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가장 낮은 위치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은 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어땠을까요? 굉장히 지루할 것 같지요? 하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집중도는 더 높아졌고, 흥미진진했어요. 어느새 제 식습관이 달라지고, 생활방식이 변화하는 등 신기한 일이 일어났거든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수록 제 삶은 훨씬 다채로워졌습니다.

저는 지금 짐바브웨에서 그 놀라운 경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한 일 또한 ‘듣는 것’이었어요. 함께 지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동료들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함께해주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어요. 또한,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가진 현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군가의 마음속에 빛나는 원석들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최근에는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어려워하는 한 학생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 학생의 마음속에도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 소망 그리고 꿈도 있었죠. 요즘에는 그런 원석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듣고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죠?’라고 할 수도 있어요. 나보다 다른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 같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경청하면, 여러분 또한 상대방의 마음속에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됩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여러분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떠올려보세요. 혹 직장동료나 가족 구성원 중 한동안 마음을 닫고 대화를 하지 못했던 사람이 있나요? 상대방을 위하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사이가 멀어진 분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경청의 다섯 가지 규칙을 떠올려보세요. 물론, 100번까지 듣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얻어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시도해보세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연 양경찬

대학생 때 짐바브웨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졸업 후 지역 노인 및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으며, 지난해 다시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돌아가 현지 청소년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국제청소년연합의 지역 책임자이자, 청소년 멘토이며, 인성교육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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