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사랑한 화가 앙리 마티스

뜨거운 태양으로 굳게 닫았던 창문을 조금씩 열고 싶어지는 계절이 오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 창窓을 몇 번이나 바라볼까?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며 한 번, 오늘 날씨를 살피며 또 한번, 때로 아무런 이유 없이 무심코 창문 너머를 바라보기도 한다. 사색에 잠길 때도, 예쁜 노을을 감상할 때도,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창문을 자꾸 응시한다.

이번에는 창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를 소개하고자 한다. 앙리 마티스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색조, 단순한 선과 구성으로 추앙을 받는 화가이며, 시각 예술의 발전에 혁명을 일으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축을 이루는 예술가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지만, 80대까지 쉼 없이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불가능과 절망적인 현실에도 새로운 시각으로 가능성을 발견하고 창조와 혁신의 도전을 해나갔다.

앙리 마티스. 사진 위키피디아
앙리 마티스. 사진 위키피디아

마티스가 작업을 하면서 시도한 첫 번째 도전은 ‘색’에 대한 것이다. 그는 색을 독특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색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마음에서 보고 느끼는 색, 내면과 감정의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도, 살구색이 아닌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색을 칠하기도 했다. 1905년 자신의 아내 아멜리를 모델로 한 ‘모자를 쓴 여인’이 그렇게 탄생했고 당시 파리 미술계를 장악했던 수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눈에 들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두 번째 도전은 ‘문양’에 대한 것이다. 작품에 보이는 화려하고 구불구불한 무늬는 모로코 여행 중 아라베스크 문양과 식물 문양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지에서 만들어진 직물, 양탄자, 커튼, 가리개 등을 배경으로 한 그림은 문양의 효과로 인해 일러스트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인테리어 장식을 회화에 끌어와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게 했다.

세 번째 도전은 가위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 즉 ‘컷아웃Cut-out’이다. 마티스는 1941년에 십이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악화되었다. 의사들로부터 건강 회복을 위해 유화 작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몸의 통증이 심해 이젤 앞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감정을 표출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컷아웃’이었다. 조수들에게 과슈(gouache : 물에 녹는 아라비아 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중세시대부터 삽화 장식에 사용)를 종이에 칠하게 한 다음 물감이 마르면 침대에 누운 마티스가 그것을 가위로 잘라 캔버스에 붙였다. 그는 이렇게 추상적이고 소박한 양식을 좋아했고 이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작업의 완성도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었다. 컷아웃 작품들은 ‘평면 조각 회화’라는 새로운 미술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티스가 그린 그림 중에서 흥미로운 점은 유난히 창이 있는 실내 풍경이 많다는 점이다. 그는 창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콜리우르, 니스에서 바라본 지중해의 자연에 푹 빠져든 마티스는 니스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며 지중해의 분위기, 실내 모습, 창문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차양 밑의 화실’, 1903년, 캔버스에 오일, 55×46㎝,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박물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그의 초기작인 ‘차양 밑의 화실’을 보자. 방 안에는 이젤과 그림 그리는 도구가 있으며 정면에는 창문이 열려 있고 창 너머 눈부신 햇살의 밝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화실의 어두운 분위기는 화가로서 고군분투하는 마티스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화가의 길은 쉽진 않았다. 그림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모자가게를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그 당시에 그린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려니 힘들고 암울하지만 밝고 환한 창밖 세계를 주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티스의 마음이 느껴진다.

힘든 시기를 거쳐 마티스는 1905년 여름 지중해 연안의 콜리우르에서 화가 앙드레 드랭과 함께 지내는 동안 작품세계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이 시기의 그림 ‘콜리우르의 열린 창’을 보면 활짝 열린 창문 너머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그의 그림 속 창문은 주로 열려 있다.)

‘콜리우르의 열린 창’, 1905년, 캔버스에 오일, 55.3×46㎝,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창 너머의 바다는 붉은빛이며 방 안의 벽과 창문은 초록색, 붉은빛이 섞여 있다. 모로코 등지를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은 원색의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색채의 마술사답게 사물로부터 색을 해방시켜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으로 풍경을 묘사했다. 그 통로가 되는 것은 창문이다. 열린 창문은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마티스의 태도를, 화려한 색채는 그림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정을 드러낸다.

화폭의 가운데에 창을 그리며 마티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바라보려고 했을까? 창을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을 시도한 것일까?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내가 이곳을 넘어 저 세상으로 향해 갈 수 있을까? 이 창문을 넘어야만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앙리 마티스

‘콜리우르의 프랑스식 창문’, 1914년, 캔버스에 오일, 116.5×89㎝,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소장. 사진 위키아트

이러한 설렘도 잠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절망적인 사건이 생긴다. 위의 작품 ‘콜리우르의 프랑스식 창문’을 보면 창문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빛도 없어 보인다. 파리에 있던 마티스의 집은 독일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도 독일군에 잡혀가 소식이 끊겼다. 미래를 볼 수 없는 두렵고 절망스런 마음이 검정색으로 가득 칠한 창문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전쟁은 그에게서 도전정신과 열정적인 색채를 빼앗아 가지 못했다. 프랑스 파리를 떠나 니스로 거처를 옮겨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가면서 ‘콜리우르의 프랑스식 창문’과는 다른 밝고 따뜻한 색채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작품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을 보자. 여인의 등 뒤의 열린 창문 너머, 밝고 따뜻한 햇살로 가득 찬 니스의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니스의 평온하고 밝고 투명한 빛을 사랑한 마티스는 자신의 본연의 색, 경쾌하고 풍부한 느낌을 재현하였다. ‘나는 내 그림들이 봄날의 기쁨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지치고 낙담한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평화와 고요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티스의 소박한 바람이 그의 그림에 묻어 있다.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 1922년, 캔버스에 오일, 73×92㎝, 몬트리올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그것도 잠시,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티스는 71세에 암 선고를 받았다. 병과 싸우면서도 말년의 나이에 온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니스 근교의 작은 마을 방스Vence에 있는 로사리오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 ‘생명의 나무’이다. 자신을 간병했던 자크 마리 수녀의 부탁을 받아 그는 1948년부터 4년에 걸쳐 성당의 디자인에 참여했고 동쪽 창문에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창과 창 사이의 틀이 나무 줄기처럼 보이며 양쪽 창에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을 사용해 빛의 교향곡을 만들어 내고 있다. ‘컷아웃’을 기반으로 나뭇잎처럼 구불구불한 형태는 백년초라고 불리는 부채선인장을 모티브로 한 문양이다. 선인장은 다른 식물들보다 생명력이 강한데, 특히 부채선인장은 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죽음 직전에 마티스는 생명력이 강한 부채선인장으로 스테인드 글래스를 가득 채웠으며 ‘천국으로 가는 문’이라고 말했다. “내 인생의 최고 업적이다. 이제 나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 그는 얼마 있지 않아 1954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명의 나무’, 1948-1951년,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 로사리오성당 소장. 사진 위키아트

마티스는 열린 창문을 바라보며 절망적인 현실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화가의 길을 반대했음에도,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큰 병에 걸렸음에도,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조차 작품활동을 계속해 갔다. 누구라도 쉽게 좌절할 현실에서 그는 창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희망을 놓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이 그려진 마티스의 그림은 어떤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창문 너머의 대상으로까지 내 시야를 사로잡아 더 넓은 시선으로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마티스는 창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며 어떤 인식과 사고를 가두지 않고 계속 확장시키는 연습을 했으리라. 이 소망과 도전의 정신이 마티스의 그림을 더욱 밝고 아름답게 만든다.

마티스의 생애와 작품세계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습성을 가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적이고 복잡한 생각을 마음에 받아들이다 보면 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그저 집에서 아이만 키워야 하는 가정주부가 되어 있었다. 안될 것 같은 생각에 머무를 것이 아니었다. 마티스가 ‘창’을 통해 끝없이 도전하면서 새롭고 넓은 시야를 확보해 갔듯이, 나에게도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했다.

마티스의 삶이 우리에게 외친다. 안 되는 상황만 바라보며 현실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마음의 창을 열고, 도전해 보라고, 희망을 가져보라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도전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앙리 마티스가 가르쳐준다.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길가온 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서 미술교육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