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색 구름이 빠르게 동쪽으로 흘러간다. 조금 더 높이 있는 흰 구름은 누가 붙잡고 있는지 제자리에 서 있고, 그 위에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도시의 건물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니 운치가 있다. 살갗을 태울 것 같은 태양도 그리 뜨거워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을 하여 창문의 버티컬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니 바로 눈앞에 들어온 풍경이다. 아직 더위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긴 여름이 끝나간다.

큰아이가 방학 때 집에 와서 석 달 동안 동생들과 같이 보냈다. 세 녀석들이 한 세트가 되어 움직이는 걸 보면 아빠로서 너무 재밌고 기특하다. 큰아이는 대학에 가면 아홉 살 어린 막내를 챙길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정말 매일 한 시간씩 영어를 가르친다. 둘째 아이는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 늘 큰아이 주변을 돌며 싱글벙글하고, 형이 안 보이면 어딜 갔는지 언제 오는지 수시로 물어본다. 우리 부부 앞에서는 말수가 적던 둘째가 형이 오니 여간 수다스러운 게 아니다. 막내는 큰형과 작은형 사이에 어떻게든 끼어들어 어울리려고 한다. 거실이 조용해서 작은 방에 가보면 세 녀석들이 같이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여름이라도 아이들이 같이 있는 시간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석 달이나 되어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기 있게 지낼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개미》에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드는 문제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벨로캉 개미군집의 바위 밑에 있는 거처로 가지 못한다. 답이 나오기 전에 나도 성냥개비 대신 연습장에 선을 그리면서 몇 번 시도해 보다가 빨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그만 포기하고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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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에서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디언 텐트 모양으로 세 개의 성냥개비를 세우고, 나머지 세 개의 성냥개비로 바닥을 연결하면 모두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 수 있다. 혼자 정삼각형 하나를 만들려면 한 명당 세 개의 성냥개비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을 열심히 살아도 늘 한 개는 부족하기만 하다. 우리는 스스로 모자라거나, 게으르거나, 운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부족한 그 한 개는 원래 없는 것이다. 노력이나 운으로 채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집에서는 나의 부족을 아내와 아이들이 채우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부족을 채운다. 일을 할 때에는 나의 부족을 직원들이 채우고, 직원들의 부족을 내가 채운다. 모자란 사람들이 모이면 더 모자랄 것 같은데, 뜻밖에 제대로 된 정삼각형을 만들게 된다. 여섯 개의 성냥개비처럼 머리를 같이 모으고 한 사람의 오른쪽을 옆 사람의 왼쪽으로 채워주는 식으로 하면 정삼각형 세 개가 완성되는 것은 물론 바닥에 그려진 정삼각형을 덤으로 얻게 된다.

나의 일을 오랫동안 도왔던 사무장이 있었다. 이 친구는 처음 듣거나, 아무리 내용이 꼬여 있는 것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을 잘했고, 항상 잔가지들을 잘 챙겨 주었다. 대신, 이 친구는 뒷심이 약해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반대로, 나는 상담을 하면서 자잘한 것들을 쉽게 놓치는 반면 정리된 재료들을 도마 위에 놓고 지근덕대면서 큰 그림을 그리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았고, 서로 상대방의 말에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아, 그렇지!”라고 할 때가 많았다.

큰아이가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가 있는 도시로 떠났다. 성냥개비 두 개가 빠졌다. 남은 아이 둘로는 정삼각형 두 개도 만들기가 어려워, 이제는 내가 둘째와 막내 사이로 들어간다. 어른이 되면 성냥개비가 좀 많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도 두 개밖에 없는 걸 보니 내가 잘못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아이들 속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정삼각형을 다시 네 개를 만들 수 있다. 큰아이는 집에 다시 올 때까지 홀로 떨어져 지내겠지만, 그곳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또 다른 정삼각형을 만들 것이다.

사람은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왼팔이 너의 오른팔이 될 수 있고, 또 옆 사람의 왼팔이 나의 오른팔이 될 수 있다. 완벽을 꿈꾸면 조만간 성냥개비를 부러뜨리고 만다.

구름이 더 많아졌다. 아까보다 색깔이 더 짙어졌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흰 구름도 바람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비가 쏟아질 건가 보다. 이미 그걸 알고 있는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구름들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을 엿볼 수 있다. 비가 와도 여전히 하늘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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