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필자는 교직에 몸담아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사로서의 열정과 능력의 한계를 강하게 느꼈다. ‘아! 교육이라는 것이 절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데 ‘나로서는 안된다.’는 그 한계의 깨달음이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필자가 경험한 교단일기를 재구성해서, 최근 이슈가 된 학생 인권과 교권 대립에 대한 문제를 ‘교육가족’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약 10여 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서 ‘교육가족’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부되는 안내장이나 현수막 등에 ‘○○ 교육가족 여러분!’ ‘○○ 교육가족 일동’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고, 그 문구가 많은 사람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확실히 ‘학교 구성원’이라는 표현보다 부드러운 게 사실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단어가 주는 어감 차이뿐 아니라, 좀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학교 구성원’이라고 하면 학교에 있는 학생과 교사만 떠올리지만, ‘교육가족’의 범위에는 학생, 교사에 이어 학부모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육가족’이라는 표현에는 학교 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학부모를 교육의 파트너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소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꽤 오래 전 사진이다.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과 같이 미소 콘테스트에 참가해서 1등을 하고 찍은 사진. 이 제자들이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사진제공 안현지
꽤 오래 전 사진이다.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과 같이 미소 콘테스트에 참가해서 1등을 하고 찍은 사진. 이 제자들이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사진제공 안현지

교사의 행복은 학생의 행복에 달려 있다

교육대학의 모든 교육과정은 교사가 앞으로 만날 ‘학생’에게 맞춰져 있다. 어떤 이론을 배워도 결국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을까?’라는 대전제 안에 모두 들어간다. 한 시간 수업 시연을 위해 교육대학 학생들은 한 달이 넘도록 고민하고, 연구하고, 시뮬레이션 후에는 다시 토론하고 피드백을 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이 또한 아직 만나지도 않은 ‘학생’이라는 존재를 위해서다. 이 작업을 하다 보면 학생에 대한 동경심까지 생기게 된다. 실제로 필자도 4학년 때, 밤새워 조별 수업 발표를 준비하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세상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인지 알까? 우리가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알까?’ 약간의 강도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육대 졸업생들은 자신이 맡게 될 학생들을 향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졸업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오니,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시간이 갈수록 애틋한 감정은 원망스런 감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이끌어 주려고 하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대학에서 시연 수업을 할 때는 혼자 시간과 정성을 들여 준비를 잘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 이면에는 학생들이 당연히 나의 노력을 고맙게 여기고 나의 가르침을 받아줄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듣지 않고, 따라 주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내 노력과 열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열정이 크면 클수록 더 반작용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편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받는 사람이 거부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안 것이다. 그것이 새내기 교사로 발령을 받은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느낀 첫 번째 한계였다.

그 후, 나는 학생들을 향한 나의 기준이나 목표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좀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심했다. 학생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또 그 이벤트에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학생들보다 내가 더 행복했다. 더불어서 선생님의 배려에 감동 받은 학생들은 나의 지도에 잘 따라와 주었고, 가끔 엄한 훈육을 해도 반발하지 않고 내 의도를 이해해 주었다. ‘내가 행복하려면 나와 함께 있는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구나.’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것이구나.’ 두 가지 깨달음으로 그 후 5~6년 동안 교직 생활이 행복했다. ‘교육은 연애다.’라는 명제를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선 학부모 도움이 필요

그렇게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교직 생활에 두 번째 한계가 찾아왔다. 학생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흥미 있는 활동뿐 아니라, 역할분담이나 과제수행 같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활동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세대가 달라질수록 학생들은 부담스러운 일을 싫어하고 현저히 거부했다. 친구 관계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문제행동의 빈도도 높아졌다. 이것을 지도하려면 필연적으로 훈육을 할 수밖에 없는 단계가 오는데, 이때 학생과 교사와의 신뢰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다. 나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또 다른 존재, 학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학생을 위해서 훈육을 한다 해도, 학부모가 그 진심을 모른다면 많은 오해와 문제가 생기게 된다. 훈육의 신뢰도 부분은 놔두더라도, 학생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학부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 앞에서만 규칙을 지키고 위선과 기회를 엿보는 교육의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 행복한 교직 생활을 위해서 나는 학부모의 도움이 필요했다.

두 번째 한계를 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은 훈육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이었다. 나의 진심을 학부모에게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진행 과정이 비교적 쉽지 않았다. 이미 생긴 오해를 푸는 것보다, 처음부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학기 초에 실시되는 학부모 상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 과정, 특히 마음의 성장 과정, 자제력과 훈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10년 전부터 개별적으로 꾸준히 배워 온 ‘교사 마인드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학기 초에 상담을 하면서 교사의 진심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교사와 한마음이 되었고, 나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생각에 더 힘이 났다.

‘찾아가는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시했던 가족 북콘서트. 사진제공 안현지
‘찾아가는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시했던 가족 북콘서트. 사진제공 안현지

‘학급 설명회’ 개최로 시작된 학부모교육

그런데 학부모 상담은 1:1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가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급 설명회’였다. 학급 교육과정 설명회를 개최해서 학부모교육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꺼번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학부모들이 한자리에서 모여 공감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최대한 모든 학부모가 모일 수 있도록 개별로 연락하고, 직장을 가진 학부모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을 활용했다. 간단한 다과와 레크리에이션, 발표자료 등 이것 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성과는 아주 좋았다.

학기 초 학부모교육 한 번으로 나머지 1년을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기에 나는 이 활동을 7년 전부터 계속 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비대면으로 줌 화면을 통해 모였는데, 의외로 생각지 못한 효과가 있었다. 학부모들은 이동하지 않고 가정에서 좀 더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었고, 화면을 통해 가정에 있던 아이들도 함께 듣고 반응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인성교육의 장이 된 것이다.

높은 호응을 얻은 가족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지역 신문에 이달의 인물로 선정돼 인터뷰를 했다. 사진제공 안현지
높은 호응을 얻은 가족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지역 신문에 이달의 인물로 선정돼 인터뷰를 했다. 사진제공 안현지

부모가 자식을 잘 교육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이지만 역으로 학생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와 연결된 학부모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교직 생활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 그 소중한 깨달음은 내가 교사인 동시에 엄마가 되고 학부모도 되면서 더 가능해졌다.

자녀를 향한 샘물 같은 사랑의 감정은 반드시 부모가 되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학습과 모방으로는 절대 흉내를 낼 수 없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사랑을 자녀에게 쏟아 주어야 만족이 되기 때문에 자녀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고 싶은 강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그렇게 하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이성적인 인식이 올라와서 두 마음이 충돌하는 것이다. 욕구와 자제의 균형을 이성적으로 알맞게 할 수 있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크게 갖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하다가도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자녀의 간청에 끌려간다. 그래서 부모 스스로 자녀 교육을 잘 꾸려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장해서 독립하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려면, 가정 안에서의 행복만으로는 안된다. 어렸을 때부터 무리 속에서 어울리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을 형성시켜 주어야 하고, 단체의 규범을 지킬 수 있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활동은 결코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정에서 자녀의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소위 ‘헬리콥터 맘’이라도 학교의 교사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시나 요구가 아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학부모와 교사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진제공 안현지
학부모와 교사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진제공 안현지

세 자녀를 키우면서 학부모로 지켰던 철칙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학부모가 되니까 때때로 정말 엉뚱한 생각이 올라오곤 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왜 저렇게 하지?’ 내가 아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선생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하면, 선생님께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 그때 그 학부모도 이런 마음이 들어서 나한테 전화를 하신 거구나.’ 하며 공감이 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내가 대치되는 순간들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 충돌이 올 때마다 엄마로서의 내 모습보다 교사로서의 내 모습이 먼저 보였다. 아마도 내가 엄마보다 교사가 먼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원망할 때 절대로 아이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물론 그런 감정에 공감을 해주기는 했지만, 선생님의 의도를 다시 잘 설명해주거나 그 일에 대해 무심한 척하는 것이 나의 대응법이었다. 상대 선생님을 좋아하거나 보호해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이가 원치 않는 상황을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면서 간접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절대로 아이 앞에서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학부모로서 세 자녀를 키우면서 끝까지 지켰던 내 나름의 철칙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첫 번째 학급 설명회. ‘지는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설명회를 시작했다. 사진제공 안현지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첫 번째 학급 설명회. ‘지는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설명회를 시작했다. 사진제공 안현지

교육가족, 행복한 교육 세 바퀴

육아 및 교직에서 내 경험을 되돌아보았을 때, 교사와 학부모는 서로의 도움이 절실한 관계이다. 교사는 학부모 도움 없이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거나 행복한 교직 생활을 할 수 없고, 학부모 또한 교사의 도움 없이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사와 학부모는 같은 편일 수밖에 없는데, 둘 간의 신뢰가 깨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교사들은 상처받고 위협받을까봐 몸을 사리며 교육을 해온 것 같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교육을 다하지 못하고 대충 넘어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일어날 일들을 감당하려면 그 과정이 길고 어려울 거야.’라고 추측만 하고 교사로서의 본분을 완수하지 못한 점에 반성하기도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다투고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자녀들이 심각한 혼란에 빠지듯이,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의 제자, 나의 자녀에게 돌아간다. 진심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제자를 위한다면, 각자의 옳은 생각도 잠깐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솔로몬 왕은 그 심리를 잘 이용해서 진짜 엄마를 가려냈다.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엄마 앞에서 아이를 갈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눠주라고 했을 때, 진짜 엄마는 금방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면서 내 아이가 아니니 저쪽 편에게 아이를 주라고 했다. 누구의 소유가 되든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교육계에 드러난 많은 문제들 앞에서 서로의 탓이라고 지적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잘못된 제도가 있다면 고치고,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제도와 방법을 고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유의해야 할 것은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가 자주 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고 물을 멀리 할 수 없다. 우리 삶에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회복하고 다시 성장하는 과정 또한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학부모교육, 교사교육, 학생 마인드교육으로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서로를 붙들어줄 기회가 곳곳에 퍼져 나가기를 소망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는 마치 세발자전거의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한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교육가족’인 것이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올해 2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3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춘천교도소 초청으로 2015년부터 재소자들에게 매달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상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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