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작가는 자신이 펴낸《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서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면 공연한 걸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교정‧교열 전문가인 김 작가는 김훈의 소설에서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같은 접속부사가 얼마나 쓰였는지, 혹은 보조사 ‘은, 는’과 주격 조사 ‘이, 가’ 중 ‘이, 가’가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세어본다. 그에 따르면 접속부사 ‘그러나’가《남한산성》에는 딱 한 번, 《흑산》에는 열다섯 번 나온다.

김정선 작가는 접속부사는 말이라기보다는 말과 말을 이어 붙이거나 말의 방향을 트는 데 쓰는 도구에 불과하며, 말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상대 쪽으로 밀어붙이려는 ‘꼼수’를 부릴 때 필요한 삿된 도구라고 정의했다.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2016년 7월, 188쪽) ‘삿되다(邪되다)’는 사전적으로 ‘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는 뜻이다. 접속부사는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의미다.

글은 삿된 표현이 없어야 좋다고 평가받는다. 글 쓴 사람이 스스로 짚어내기는 참으로 힘들다. 하지 말아야 할 표현, 어법과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많지만, 보통 사람은 일일이 가려 쓰기 어렵다. 큰 틀을 이해하면 삿된 표현을 조금은 피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 못난 글도 피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모에게 내렸다는 연설문 지침이 문제 있는 글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지침을 강원국 작가가《대통령의 글쓰기》에 소개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메디치, 2014년 3월, 19, 20, 21쪽)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32가지를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그중 피해야 할 표현이 12가지다.

• ‘~ 같다’는 자신 없는 표현은 삼가게.

• ‘부족한 제가’는 과도한 겸양으로 예의가 아니네.

•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 ‘~ 등’이란 표현은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 일반론은 싫네. 내 얘기를 하고 싶네.

• 접속사는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게.

•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 하네.

•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네.

이외에도 전문가가 하는 공통된 충고가 있다.

• 군더더기 없이 쓰라.

• 수식어는 수식하는 말 가까이 둬라.

• 복수 표현을 남발하지 마라.

• 주어의 반복을 피하라.

• 우리말은 주어가 없어도 뜻이 통한다.

• 문장을 짧게 써야 의미 전달에 혼란이 없다.

덧붙이자면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잘 쓴 글이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한자어를 섞어 쓰길 좋아한다.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순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운 우리말이라도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소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도 보기 흉하다. 외국어 단어 몇 개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대변해 주진 않는다. 번역투 문장, 특히 피동형과 완료시제는 피하는 게 좋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본어나 영어 번역투에 젖어 있다. 습관적으로 번역투를 사용해 우리말을 혼탁하게 한다. 한국말에선 ‘많은 사람들이’처럼 습관적으로 복수형을 쓰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이’가 맞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아야 좋은 글이다. 읽어서 리듬이 있고 편하게 느껴져야 잘 쓴 글이다.

고수들은 나름의 가치와 논리로 좋은 글을 정의하고 지킨다. 한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는 “한 글자만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간결한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

“내 석사학위 논문 심사 때였다. 권필의 한시 중 ‘空山木落雨繡繡(공산목락우수수)’라는 대목을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라고 옮겼다. 지도교수가 이걸 보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 불필요한 단어가 많다고…. 곁가지를 다 쳐낸 끝에 결국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로 절반을 줄였다. 거기서 진짜 충격을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는 한 달 동안 문장 줄이기만 했다. 1,400매였는데 200매를 줄였다.” (전병근 ‘인터뷰, 나의 글이 가는 길’, 조선비즈, 2014년 11월 22일)

정민 교수는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은 금언을 꼭 지키려 한다. ‘글에는 여운이 있어야 한다.’ ‘절대 다 말하면 안 된다.’ ‘드러낼 듯 감춰라.’…, 모두 ‘글빼기’ 경험에서 건져 올렸다. 정 교수는 그런 식으로 글을 매만져《미쳐야 미친다》,《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을 펴냈다.

글은 뜻을 전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 면에서 짧고 간결한 문장이 유용하다. 문장을 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만 담는 것이다(1sentence, 1idea). 그게 모여 만들어진 단락도 한 가지 생각(1paragraph, 1idea)을 담게 된다. 그 단락이 모인 한 편의 글에도 하나의 생각(1article, 1idea)이 담긴다. 나아가 일관성 있는 한 편(꼭지)의 글들이 모여 하나의 생각이 담긴 책(1book, 1idea)이 된다.

글을 쓸 때는 한 가지 생각을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있는 글을 읽으면 혼란스럽다. 여러 가지 생각이 엉키면 글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하나의 생각을 담은 짧은 문장에서는 결코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비문非文이 생기지 않는다. 비문은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글이다. 문장이 길고 뜻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주어와 서술어만 떼어서 읽어보라.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비문이다. 짧은 문장은 글 읽는 속도를 높여준다.

책이나 글을 쓴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은연 중 좀 더 우아한 표현을 구사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자나 영어 단어를 섞어 지식을 뽐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 문장, 단락의 뜻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면 써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럴 필요 없다. 자칫 실수하면 망신당한다.

멋진 글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쉽게 이해되는 글을 쓰려고 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 좋은 글이다. 쉽게 쓴 글이 멋진 글이다. 어렵고 현학적인 글이 저자의 위상을 높여주지 않는다. 한글로 썼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글도 없지 않다. 글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알리려 쓴다.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쉽고 친절하게 써야 한다. 쉽게 쓴다고 필자의 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가 김훈은 시인 이문재와 대담에서 ‘정보’와 ‘사실’을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또 ‘합리적’으로 ‘배열’한 글이 뛰어난 글이라고 정의했다. (김훈, 『글쓰기의 최소원칙』, 룩스문디, 2008년 12월, 50쪽) ‘정보’와 ‘사실’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보’와 ‘사실’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신선한 재료에서 맛이 나온다. 좋은 재료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조리하기만 하면 맛은 보장된다.

글쓰기를 다룬 많은 책이 저자의 논리가 옳다고 주장한다. 문외한으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분명 맞는 말도 있고, 무시해도 되는 부분도 있을 터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장강명 작가가 하는 말이 가장 정확한 듯하다. 장 작가는《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글쓰기 지침을 모두 헌법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맞춤법에 주눅 들고 자기검열에 빠지기보다는 무언가가 용솟음칠 때는 일단 되는 대로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장 작가는 말한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한겨레출판, 2021년 1월, 67, 68쪽)

가슴과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일단 쏟아내고 정리하라는 이야기다. 무언가 떠오를 때는 모든 걸 잊고 일단 써야 한다. 스치는 생각부터 잡아야 한다. 그렇게 빨리 쓰고 여러 번 손질하는 게 현명하다.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 《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 《누구나 책 쓰기》가 있고, 《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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