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체가 실제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을 가리켜 신기루라고 한다. 신기루 중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다. 바닥 면과 대기의 온도 차이가 큰 곳에서 주로 신기루가 나타나는데, 사막은 표면의 공기는 뜨겁지만 위쪽 공기는 차가워 빛이 굴절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막을 통과해야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사막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막을 숱하게 오간 인도자를 따라야 했다. 사막을 걷기 시작해 며칠 뒤에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이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오아시스다!” 그런데 인도자는 담담하다. “신기루예요. 저곳엔 오아시스가 없어요.” 다시 여정이 계속되고 더위와 갈증으로 지칠 대로 지쳤는데 또 오아시스가 보이면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오아시스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도자의 반응은 같다. “저건 신기루예요.”

몸은 힘들고 눈앞에 오아시스가 보이는데 그걸 신기루라고 하다니…. 함께 가던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당신 눈에도 저기에 오아시스가 보이지요?” “예, 보이지요.” 사람들 눈에 인도자가 의심스럽다. ‘이곳을 많이 다녔다고 해서 이 사막을 다 아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보이는 오아시스마다 신기루라고 하다니….’ 그럴 때 어떤 사람은 인도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 눈에 보이는 오아시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눈에 보이던 오아시스는 나타나지 않고 끝없이 사막만 펼쳐져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런 신기루는 인간의 삶에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재판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시간은 2천 년 전, 장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그 성전은 다 무너지고 지금은 성전의 한쪽 벽이었던 ‘통곡의 벽’만 남아 있다. 당시 유대교의 중추 격이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운 뒤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죄인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구원하러 왔다고 하는, 눈엣가시 같은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질문이었다.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면 구원자가 못 되고, 치지 말라고 하면 법을 어기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의 법대로 하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모두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입을 열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라.”

그러자 서슬 퍼렇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났다.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에는 살인이나 간음하지 말라는 법뿐 아니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법도 있다. 탐내는 것은 드러나는 죄와 달리 자신만 아는 영역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나쁜 마음을 품는 것까지 죄로 규정하지 않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지키려 했기에 예수님의 말을 듣고 문제가 생겼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단죄하려 했지만, 자신의 마음 역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떠올라 그 자리를 떠났다.

예수님이 끌려온 여인에게 물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조금 전까지 잘못한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늘 그 자리에 있겠지만, 없는데 있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었기에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기쁜 일도 겪고 슬픈 일도 겪는다. 분명히 겪은 일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일들에 대한 해석이 변한다. 그때 잘못 보아서가 아니라, 신기루를 사실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 이야기를 마저 해보겠다. 여자를 단죄하려 했던 사람들은 심판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다 떠나고 예수님만 남았다. 그런데 예수님도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 돌이키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율법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말인가? 여자에 대한 재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나중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다. 여자는 유죄였고, 그 책임을 예수님이 지고 심판의 화살을 대신 맞아 여자를 자유롭게 한 것이다.

글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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