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찾아 떠난 화가, 클로드 모네

무덥긴 하지만 8월은 여행하기 좋은 달이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어디든 가볍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하는 과정은 조금 귀찮지만, 막상 기차 위에 오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 여행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에 발걸음이 신이 난다. 여행지에서 갈팡질팡해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 헤매도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길 참 잘했다.’는 만족감이 드는 게 여행이다.

나에게 ‘여행’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생 라자르 역’이다. 증기를 내뿜고 있는 기차의 모습은 마치 여행을 떠나기 직전, 혹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여행객의 설레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모네도 그러했을까?

‘생 라자르 역, 기차의 도착’, 1877년, 캔버스에 오일, 83×101cm, 하버드 포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생 라자르 역, 기차의 도착’, 1877년, 캔버스에 오일, 83×101cm, 하버드 포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기차’는 근대 산업화를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였다. 모네는 당시 첨단 문물의 상징이었던 기차, 혹은 기차역을 작품의 무대로 삼았고 이러한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모네에게 활기찬 생동감으로 다가온 기차역은 그가 그림 여행을 위해 자주 들르던 파리의 ‘생 라자르 역’이다. 이곳은 당시 프랑스 거의 모든 지역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역사驛舍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한 손에는 튜브 물감을, 한 손에는 이젤을 들고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마주치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모네도 이젤, 화판, 물감을 손에 들고 생 라자르 역의 기차에 몸을 싣고 노르망디 지방을 비롯해 프랑스 북쪽 지역을 여행했다. 그러면서 교외의 아름다운 자연뿐 아니라 여행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기차역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역 안을 감도는 빛과 증기가 만들어내는 효과에 감탄한 모네는 생 라자르 역을 대상으로 12점의 연작을 남겼다.

모네의 그림 여행에 동료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도 동행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기차를 타고 센강으로 가서 보트를 타고 수영을 즐겼으며 그림도 그렸다. 센강변의 핫플레이스인 라 그르누예르 근처 유원지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본 모네는 붓 터치를 분절시켜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회화의 첫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 1869년, 캔버스에 오일, 73×92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 위키아트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 1869년, 캔버스에 오일, 73×92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 위키아트

또한 모네는 가끔씩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 아들 장과 함께 파리 근교 들판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이때 탄생한 그림이 ‘파라솔을 든 여인’이다.

모네는 자주 ‘빛’을 찾아 기차를 타고 여행에 나섰다.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빛에 비친 그 순간을 포착하여 그 자리에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모네의 작품은 크기가 작으며 종전의 풍경화들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이전의 풍경화들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원근법과 구도를 갖추고 있으며 사실적으로 묘사된 나무와 산, 인물들이 들어간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풍경화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렸다기보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대로 그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모네의 풍경화는 다르다. 형태의 윤곽선도 없으며 원근법이나 사실적인 묘사도 없다. 그럼에도 밝고 평온하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을 준다.

‘파라솔을 든 여인’, 1875년, 캔버스에 오일, 100×81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파라솔을 든 여인’, 1875년, 캔버스에 오일, 100×81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모네의 또 다른 작품 ‘인상, 해돋이’ 는 유년 시절에 르아브르 항구에서 본 해돋이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에게 ‘인상주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준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안개가 낀 동트기 직전의 항구를 작품에 담았는데, 왼쪽에 서 있는 것이 나무인지 굴뚝의 연기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오른쪽으로는 건설장비처럼 보이는 형태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경계조차 모호하다. 완벽하게 구상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변해가는 인상을 빠른 붓질로 완성한 것이다.

‘인상, 해돋이’, 1872년, 캔버스에 오일, 48×63cm, 파리 마르모탕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인상, 해돋이’, 1872년, 캔버스에 오일, 48×63cm, 파리 마르모탕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모네가 이렇게 그림을 그린 이유는 사물의 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빛과 공기의 상호작용으로 다채롭게 변하는 사물의 인상을 재빠르게 캔버스에 구현할 때 진정한 풍경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시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보고 ‘미완성의 작품이다.’, ‘인상만 남겨줄 뿐이다.’라는 비난을 하며 그를 조롱했다.

이에 대해 모네는 “대중이 내 그림을 왈가왈부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인생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것이다.”라고 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기 위해 또 다른 여행에 나섰다. 새로운 빛을 찾아다니며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하며 늘 자신의 작품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무렵, 어느 날 같은 곳을 하루 종일 바라보던 모네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그곳의 풍경은 하나가 아니더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변하고 그것은 빛의 변화로 이어진다. 빛이 변하면 풍경 속 사물의 색이 변한다. 변화하는 시간만큼 다양한 풍경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네는 이전엔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최초의 연작 25점, ‘건초더미’를 제작한다. 1888년부터 1890년 사이, 그는 추수가 끝난 뒤 곡물을 타작하기 전까지 몇 개월간 쌓아둔 더미를 소재로 여러 차례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건초더미, 하루의 끝, 가을’, 1890~1891년, 캔버스 에 오일, 60×100cm, 시카고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건초더미, 하루의 끝, 가을’, 1890~1891년, 캔버스 에 오일, 60×100cm, 시카고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건초더미, 여름의 끝’, 1891년, 캔버스에 오일,60×100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건초더미, 여름의 끝’, 1891년, 캔버스에 오일,60×100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건초더미, 눈’, 1891년, 캔버스에 오일, 60×100cm, 버몬트 쉘번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건초더미, 눈’, 1891년, 캔버스에 오일, 60×100cm, 버몬트 쉘번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같은 장소의 다른 시기, 다른 시간, 다른 날씨를 그려 빛의 효과에 따라 대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작을 통해 구현하였다. 태양의 빛과 대기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림의 오묘한 색감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 다채로운 빛과 대기가 물들인 풍경이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모네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이 되었다. 2019년 5월 14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중 한 점이 1억 1,070만 달러(한화로 약 1318억 원)에 낙찰됐다. 예상가보다 두 배를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평론가들은 모네를 인상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모네는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계속 낙선했고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후 뜻이 맞는 화가들과 전시를 열었으나, 그 작품을 본 평론가들은 ‘붓 터치가 다 보이는 것을 완성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인상밖에 없다!’라고 비난을 했고 ‘이들은 인상주의자들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지금은 대단히 추앙 받는 인상주의가 처음에는 온갖 푸대접과 비난을 받으며 시작했다. 이 당시에 모네가 현대 미술사조의 한 획을 그을 거장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모네의 ‘건초더미’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바실리 칸딘스키에게 영향을 주고, 추상미술의 신호탄이 되리라는 예측 역시 아무도 하지 못했다. 칸딘스키는 ‘건초더미’ 연작에 깊은 감명을 받아 화가로 직업을 바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불의의 변수를 생각하기보단 기쁘고 좋은 것만 생각하며 일정을 짤 때가 많다. 하지만 여행 도중에 갑자기 비가 온다거나, 기차를 놓쳐 다음 기차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 혹은 같이 간 친구와 생긴 갈등과 다툼 등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로 처음 세웠던 계획들이 틀어질 때가 오히려 더 많다.

여행은 계획대로 잘 흘러갔을 때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었을 때 더 많이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된다. 이런 경험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으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고 해서 이번 여행은 망쳤다고 생각하지 말자. 엉망처럼 보여도 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인생도 여행과 같다. 내 인생이 계획대로 잘 풀리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홍익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원까지 마친 뒤 평생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다른 학교의 동양화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뒤엔 결혼과 함께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창작보다는 미술교육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럼 내 인생은 그르친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아직 여행 중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이 없었던 일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한다. 모네가 건초더미를 보며 연작을 그려야겠다고 계획을 했었는가? 그 작품이 대박이 날 것이라 예측을 했었을까? 아니다. 그저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도전이었다. 모네가 빛을 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많은 비난도 받았고 사랑하는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가 죽는 일도 있었다. 계획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 인생도 꿈을 위한 여행의 과정 속에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잘 가다가도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며,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다 거치고 난 뒤 집에 돌아왔을 땐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지금 보면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고, 원치 않는 다른 길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인생의 여행 끝에는 성취감을 얻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나만의 인생 여행을 계속해보자.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길가온 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서 미술교육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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