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젯밤에 기차로 서울역에서 구례역으로 내려왔고, 구례에서는 버스 첫차를 타고 노고단 입구에 도착했다. 요령 없이 짐을 싸서 배낭은 곧 실밥이 투두두둑 하면서 터질 것 같이 빵빵하고, 기차 선반에 올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무릅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차 시험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혼자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했다.

1인용 텐트를 샀는데, 알고 보니 혼자 펼 수도 없었고, 이것 때문에 배낭이 더 무거웠다. 노고단을 오르기 시작할 때, 정작은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버리고 싶었지만, 산장 예약이 이미 끝나서 잠을 자려면 텐트가 있어야 했다. 거기에다가 8월 초에 비옷을 입고 있으니, 내 몸은 비옷 속에서 점점 익어갔다. 등반을 시작하면서는 100미터도 못가서 배낭을 땅에 패대기치기를 반복했다. 산이 좋아서 가고 싶은 마음 반, 짐이 무거워서 다 때려치우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첫 번째 목적지인 벽소령 대피소까지만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길 따라 개울이 흐르고 있고, 반대쪽에는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뭇잎에 튕겨서 맞는 빗방울은 공중에서 터지면서 확 퍼져나 갔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유쾌하게 이야기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이 어깨의 짐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옮겨지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시작이기는 하지만 오길 참 잘한 것 같다고 하며, 변덕스럽게도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한다. 동대문 시장에서 가장 싼 것들로 장만한 장비들을 물끄러미 보니 웃음이 나왔고, 그게 이상하게 나에게 힘이 되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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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의 목적은 ‘생각접기’다.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고, 짐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한 끝에 가지게 된 목적이다. 가급적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 생각, 집 생각, 돈 생각, 장래 생각을 모두 접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서 걱정만 늘어나고, 나를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을 하니 달라지기 시작한다. 내딛어야 할 땅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멀리 있는 산을 같이 바라본다. 힘들면 굳이 쉼터가 나오지 않아도 배낭을 맨 채, 바위에 기대어 서서 쉬고(그렇지 않으면 다시 출발하기 어렵다), 시장하면 아무데나 대충 앉아서 참치 캔을 따서 밥을 비벼 먹고, 시원한 계곡이 나오면 살짝 발을 담갔다가 따뜻한 돌 위에 발을 놓고 말렸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천둥 번개까지 치면 비를 맞더라도 우산을 접는다. 밥이 설익어도 산이라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운이 좋아 맛있게 되면 기분 좋게 먹는다. 이정표와 나뭇가지마다 달려 있는 리본이 길을 잘 안내하지만, 봉우리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으면 지도를 펴고 나침반을 꺼낸다. 한 발짝도 가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것이 편해졌다. 더 이상 짐의 무게에 신경을 쓰지 않고(그래도 무겁기는 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다리가 아파도, 산을 타는 즐거움과 기쁨이 이런 것들을 잊게 한다. 벽소령에서 텐트를 치고 첫날을 보냈고, 장터목에서는 숙소가 있어 개운하게 잘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새벽에 천왕봉에 올랐다가 아침을 먹고 중산리로 내려왔다.

종주를 마쳤다는 것보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어떻게 벗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의미가 있었다. 배낭의 짐은 무거웠지만, 생각이 주는 짐에서는 벗어났다. 자연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늘 따뜻하고 시원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땡볕에 타는 듯한 더위와 비바람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에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생각’에는 잘못하면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말이 안 되고, 논리적이지 않지만 본인은 스스로 그렇게 믿고 확신까지 한다. ‘생각’은 이상한 신념이 되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서, 나중에는 아무리 해도 깨지지 않는다. 외부의 신선한 공기나 시원한 물이 흘러 들어갈 수 없고, 어쩌다가 틈새로 들어가도 생명이 자랄 수 없다. 안으로부터의 생각을 접어야 할 때가 있다. 나를 향한 연민과 변명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고통스럽다면, 그건 나에게 생긴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관한 ‘안으로부터의 생각’을 막지 못해서이다.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 생각하지 말고, 멀리 있는 산을 보자.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 말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를 새롭게 해 줄 소리가 밖에 가득차 있다. 밖으로 나와서 햇빛을 보고 바람을 맞고 비를 느껴보자. 알고보면 그렇게 힘들어해야 할 이유가 없다.

글 박문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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