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경민, 노성도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이 여행길에 오른다. 미디어에서도 유독 여행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왜 여행에 열광할까? 그건 통하지 않는 언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마저도 하나의 경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중 마주하는 다름은 ‘불편’이 아닌 ‘새로움’으로 해석된다.
8월호 표지의 주인공은 스리랑카에서 다름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있는 대학생 김경민, 노성도 씨다. 올해 초, 가슴에 봉사단 마크를 달고 스리랑카로 떠났다는 이들이 현지 전통복인 ‘사롱’을 입은 사진과 함께 체험기를 보내왔다. 사진 너머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스리랑카 햇볕 아래, 녹음처럼 짙어가는 그들의 색다른 여행기를 감상해보자.

김경민, 노성도사진 왼쪽에 있는 김경민 씨는 한국에서 멀티미디어 공학을, 그 반대편에 있는 노성도 씨는 기계메카트로닉스 공학을 공부 중이다. 자라온 배경도, 자원 봉사를 온 이유도 다르지만 그들은 지금 삶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촬영지는 평소 현지인들과 함께 운동을 즐기는 기쁨의 장소다. 사진제공 굿뉴스코 스리랑카 지부
김경민, 노성도사진 왼쪽에 있는 김경민 씨는 한국에서 멀티미디어 공학을, 그 반대편에 있는 노성도 씨는 기계메카트로닉스 공학을 공부 중이다. 자라온 배경도, 자원 봉사를 온 이유도 다르지만 그들은 지금 삶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촬영지는 평소 현지인들과 함께 운동을 즐기는 기쁨의 장소다. 사진제공 굿뉴스코 스리랑카 지부

반갑습니다! 먼저, 두 사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성도: 저희는 지난 3월부터 스리랑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단원이에요. 저희를 포함해 총 7명의 한국인 단원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2020년도에 대학을 입학했어요.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학년이었죠. 1학년을 마치고 곧장 입대했고, 제대 후 바로 이곳 스리랑카로 왔습니다.

경민: 저는 다섯 명의 남자 단원 중 나이가 가장 어려요. 모든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행사 사진이나 영상 등의 자료를 정리하는 ‘꼼꼼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친형의 소개로 해외 봉사에 도전했어요.

사진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이 ‘사롱’이라고요.

경민: 네, 스리랑카 남자 전통복을 ‘사롱’이라고 하고 여자 전통복은 ‘사리’라고 해요. 사롱은 평상복으로 입는 분들도 많아요. 저희도 행사 때 종종 사롱을 입어요. 그러면 현지 분들과 빨리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성도: 9월에 있을 행사도 준비하고, 홍보도 할 겸 ‘갈레’라는 도시에 간 적이 있었어요. 저희는 그 시간을 ‘홍보 여행’이라고 부르죠.(웃음) 그때, 현지 친구들이 저희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5일간 그 집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친구가 자신이 직접 만든 사롱을 선물해 주었어요. 이 옷을 볼 때마다 그곳에서 지냈던 추억들, 따뜻한 기억들이 생각나요.

‘갈레’의 집으로 단원들을 초청했던 세 자매 중 둘째의 생일날. 세 자매는 한복을, 단원들은 스리랑카 전통복을 입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노성도. 사진제공 굿뉴스코 스리랑카 지부
‘갈레’의 집으로 단원들을 초청했던 세 자매 중 둘째의 생일날. 세 자매는 한복을, 단원들은 스리랑카 전통복을 입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노성도. 사진제공 굿뉴스코 스리랑카 지부

귀한 경험을 했네요. 가까이에서 엿본 스리랑카 문화는 어땠나요?

성도: 저희를 초대했던 친구들이 세 자매였어요. 집에 가니,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식구가 모두 다섯 명이었죠. 한국처럼 부모와 자녀 2명 혹은 3명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요. 학구열이 높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세 자매 중 둘째가 생일을 맞았는데요. 스리랑카에선 생일자가 주변 사람에게 케이크를 직접 먹여주더라고요. 함께 축하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죠. 그것처럼, 스리랑카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주는 걸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집에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죠.

경민: 갈레에서 지내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빠드기니?’였어요. 현지어로 ‘배고프니?’라는 뜻이에요. 어머니께서 하루 종일 코코넛, 각종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주시며 저희를 챙겨주셨어요. 식사 시간에는 저희 그릇이 빈 듯하면 순식간에 그릇을 채워주셨는데, 그렇게 세 그릇을 먹은 단원도 있었죠. 나중에는 ‘빠드기니?’하면 단원들이 깜짝 놀라곤 했답니다.(하하) 정말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세요.

수도 콜롬보에서 갈레까지는 기차로 3시간 걸린다.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제공 노성도
수도 콜롬보에서 갈레까지는 기차로 3시간 걸린다.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제공 노성도
달고, 고소하고 짭짤한 매력 만점 스리랑카 치킨커리. 사진제공 노성도
달고, 고소하고 짭짤한 매력 만점 스리랑카 치킨커리. 사진제공 노성도
갈레에서 지내는 동안 세 자매의 어머님이 주셨던 수많은 간식 중 하나. 하루에 꼬박 두 번씩 요거트에 꿀을 넣어주셨다. 사진제공 노성도
갈레에서 지내는 동안 세 자매의 어머님이 주셨던 수많은 간식 중 하나. 하루에 꼬박 두 번씩 요거트에 꿀을 넣어주셨다. 사진제공 노성도

‘갈레’라는 지역 외에 또 어떤 곳을 다녀왔나요?

경민: 동부에 위치한 ‘트링코말리’와 ‘암파라’를 비롯해 중부에 위치한 제2의 수도인 ‘캔디’에 간 적이 있었어요. 한달에 한 두 번씩 ‘K-connect’라는 한국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스리랑카 곳곳을 찾아가 행사를 하고, 모든 일정이 끝나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어요.

성도: 아, 그리고 수도 콜롬보 외곽에 위치한 동네에도 가본 적이 있었어요. KPMG 라는 글로벌 기업 대표님 댁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갔는데요. 차분하고 깔끔한 동네였죠. 반대로, 콜롬보 시내에서 벗어나 조금만 걷다 보면 강가에 빈민촌이 나와요. 그곳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죠. 제 마음이 무거웠어요. 스리랑카의 1인당 GDP는 한국보다 20배 정도 낮아요. 월급은 턱없이 부족한데, 물가는 높고요. 그래서 한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이 경험한 ‘다름’ 아닌 ‘새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밥 먹는 것, 옷 입는 것, 자는 것, 공부하는 것... 그 모든 것이 한국이 기준이었던 그들은 한 가지를 느꼈다고 했다. “스리랑카에 오니 그 기준으로 불평하고 좌절하고 원망했던 날들이 다시 바라봐졌어요. 저희는 극히 일부분만 보고 살아왔던 거죠.”

새로움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두 사람이 그냥 여행이 아닌 ‘봉사’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성도: 주변 선배들이 해외 봉사 활동을 했었어요. 소감을 들어보니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고요. 홀로 떠나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해외봉사에 먼저 도전하고 싶었어요.

경민: 저는 익숙하고 편한 대로 하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서툴고요.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봉사 활동은 저 혼자서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활동이 아니잖아요. 불편한 일도 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론 어려운 미션과 정면 돌파해야 할 때도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또,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소망을 주는 의미 있는 일도 해보고 싶었고요.

가족처럼 가까워진 일곱 명의 봉사단원들. 지부장님 부부, 통역하는 친구와 함께. 사진제공 노성도
가족처럼 가까워진 일곱 명의 봉사단원들. 지부장님 부부, 통역하는 친구와 함께. 사진제공 노성도

여기에 온 지 4개월이 흘렀어요. 기대했던 것들을 얻고 있나요?

성도: 선배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여기서 무엇을 하든 결국 제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갈레에서 저희를 초청했던 세 자매는 저희를 겨우 두세 번 만났던 친구들이에요. 횟수로만 따지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세 자매와 부모님은 저희를 아무 조건도 없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어요. 문득 ‘나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왔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Give & Take’ 즉, 받는 만큼 주고, 손해 보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부끄럽지만 봉사를 하러 와서도 희생하려는 마음은 크지 않았 어요. 제가 편한 쪽으로 행동할 때가 많았죠. 그런데 저희 단원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마음을 주는 현지 분들을 보면서 저도 똑같이 해보고 싶더라고요.

 ‘캔디’라는 도시에서 만난 현지 학생들.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사진제공 김경민
 ‘캔디’라는 도시에서 만난 현지 학생들.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사진제공 김경민

이젠 ‘Give & Give’가 되겠군요.

성도: 지부장님께서도 스리랑카에 지내는 동안, 몸과 마음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어요. 청소나 요리 등 작은 일을 할 때도 아낌없이 해보라고요. 요즘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다음에 하자’는 생각과 싸우며 살고 있어요. 한 번 더 마음을 쓰고, 내 것을 내어놓으면 손해만 볼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더라고요. 주변 사람이 행복해하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요. 물론, 제가 주는 것보다 스리랑카에서 받는 것들이 더 커요.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요.

경민 단원은 어떻게 지냈나요?

경민: 우선, 확실한 건 이곳에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피할 수 없다는 거예요.(웃음) 예전과 다르게 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지만, 생각지 못한 일을 만나면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사람들과 대화는 하고 싶은데, 제가 영어를 못하거든요. 그러면 배울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처음에는 입을 꾹 닫았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서툰 제 말을 들어주려 하고, 친구가 되려 하더라고요. 제 생각이 틀린 거였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그렇게 사귄 친구 중 ‘수지’라고 한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어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죠. 나이는 저와 같은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친구였어요. 수지와 이야기를 하면, 저도 앞으로의 삶을 깊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어요.

두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여행의 묘미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민: 평소에 쫓기듯이 살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마주할 때면 그냥 무시하거나, 틀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 방어하기 바빴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큰 행운이에요. 특히, 저희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지부장님을 만난 것이 감사해요.

저는 일을 할 때 원만하게, 잘 해내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거든요. 스리랑카에 와서도 사람들 눈치 보기 바빴고, 제가 잘 못해내면 한없이 실망했어요. 그런데 지부장님께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셨어요. 실수를 하고 잘못했을 때에도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하고, 동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거요.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감사를 느끼며 사는 게 진짜 행복한 삶이라는 걸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요.

경민: 사실, 스리랑카에 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행사 홍보를 하면서도 ‘우리가 준비한 행사에 사람들이 올까?’ 하는 걱정을 했고요. 그런데 걱정과 달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현지인들이 저희 활동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앞으로 많은 학생, 주민분을 비롯해 스리랑카를 이끌어 가시는 리더분들도 만나보고 싶어요.

성도: 한국 문화 교류 활동을 비롯해서, 규모가 크고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될까? 안될까?’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우선 도전해보려고요. 발을 내디뎠을 때 온 우주가 저희를 도와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표지 촬영 날, 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가장 먼저 취했던 포즈는 두 손을 합장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아유보완(안녕하세요)!’이라는 말이 나왔단다.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는 게 스리랑카 문화다. 처음에는 미소를 짓는 것도 어색했던 그들이 지금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젠 ‘사롱’ 입는 법도 제법 익숙해졌단다.

우리는 나와 같지 않으면, 조용히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 때가 많다. 만약, 우리가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다름’을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 것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쉬워진다면 말이다. 즐거워하는 두 사람을 보니, 그게 인생을 행복하게 여행하는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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