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행가들은 ‘떠나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은 같은 환경과 사람, 반복되는 일 속에 묻혀 살다 보면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올해 초, 세상과 삶의 또 다른 이면을 보는 법을 배우고자 세계 각국으로 봉사를 떠난 대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 아르헨티나에서 봉사 중인 정연주 단원이 엄마에게 보낸 감동의 편지와 딸의 변화를 응원하는 김길남 씨의 진심 어린 답장을 소개한다.

엄마 아빠 안녕!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아.

편지 안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여기에 온 지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어제는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버스를 타고 칠레로 왔어. 이동하는 길에 버스에서 본 풍경이 잊히질 않아. 책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안데스산맥’이 내 두 눈앞에 있더라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을 보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눈으로 보는 게 훨씬 예쁘다는 거? 카메라 렌즈 안에 그 아름다운 모습이 다 담기지 않아서 카메라를 잠시 끄고 맨눈으로만 보기도 했어. 나는 여행에 크게 관심이 없었잖아. 그래서 내 의지로는 와보지 못했을 곳인데, 우연히 보게 된 그 풍경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 왜 한국이 작다고 이야기하는지, 왜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 건지 등등.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잖아. 나가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 말이 맞더라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하는 일투성이인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 풍경, 음식, 문화…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야.

언어를 배우는 것도 그래.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워. 근데 그게 재미있더라? 작은 단어라도, 하나를 배워서 실제로 사용했을 때 정말 기뻤어. 어릴 적 한글을 처음 배우던 그때도 이랬을까(웃음)?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현지인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단한 말이지만 스페인어로 대답하는 내 모습이 신기해. 가끔은 ‘왜 언어 실력이 빨리 늘지 않을까?’ 하고 고민될 때도 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새로운 언어를 배우니 알겠어. 왜 다양한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 는지.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단어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 아반떼 자동차, LG 냉장고인 디오스, 구두 브랜드 엘칸토,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 등 한국에서는 그저 상품 브랜드 이름으로 지나쳤던 것들이 각자 고유한 뜻을 품은 스페인어였더라고! 몇 가지 단어를 익혔을 뿐인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아르헨티나에 오지 않았더라면 몰랐겠지?

여기 온 뒤로 하루하루가 소중해. 정말이야! 힘들 때도 많지만, 밖에 나와 집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처음인 것 같아. 물론 그립고, 보고 싶지. 그런데 예전에 했던 경험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하루 24시간을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고, 하나하나 배우고 싶어. 그렇게 매일 살다보면 금세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무척 아쉽겠지? 그렇기에 오늘을 더 소중히 보내려고 해.

한국어 교실 수업에 참가한 현지 학생들과.
한국어 교실 수업에 참가한 현지 학생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멘도사, 후후이 등 아르헨티나 곳곳을 경험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한 다리 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멘도사, 후후이 등 아르헨티나 곳곳을 경험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한 다리 위에서.

오늘 내가 경험한 것, 배운 것 전부 다 엄마 아빠와 나누지는 못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편지에 적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 중이라는 거야. 이 편지를 쓰면서 엄마 아빠가 내게 선물해 준 이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

아 맞아, 나 한국어 교실 수업도 하고 있어. 내가 사람들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것도 스페인어로 말이야!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조금 힘들었지만, 학생들이 집중해서 공부하고, 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열심히 준비하고 싶어졌어. 신기하지?

있잖아,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간절히 얻고 싶은 것들을 생각한 적이 있었어. 특히 한계에 부딪힐 때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뛰어넘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여기서 일 년 동안 마음껏 도전하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설레.

엄마 아빠, 내 어버이가 되어 주어 고마워. 그리고 이렇게 값지고, 벅차도록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해. 그럼, 안녕. 잘 지내! 자주 연락할게♥

-2023.05.01

한국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서 연주가

지난 5월, 정연주 단원의 편지가 카네이션과 함께 전달되었다. 봉사단의 깜짝 이벤트에 놀란 부모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사진제공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지난 5월, 정연주 단원의 편지가 카네이션과 함께 전달되었다. 봉사단의 깜짝 이벤트에 놀란 부모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사진제공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사랑하는 딸, 연주야.

네가 보내준 편지 잘 받았어.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네 편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보았단다.

연주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어. 네가 어릴 적에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면 꼭 하나를 남겨두거나, 아니면 껍질이라도 보관을 해두고는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보여줬잖아. 그때처럼, 네가 아르헨티나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엄마 아빠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싶은데, 그곳에서 느끼는 벅찬 감동이 글 안에 다 담기지 않을까 봐 아쉬워하는 네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어.

처음에 네가 해외봉사를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어떤 나라로 갈지 고민할 때, 또 연주 마음에 여러 걱정들을 가지고 있었을 때, 언제나 엄마 아빠는 연주를 돕고 싶었단다. 하지만 연주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기에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지 몰라 답답할 때가 있더구나. 그런데 네가 아르헨티나에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고 어떤 마음인지 알려주니 너무 기쁘고, 안심이 돼.

엄마는,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연주가 1년 동안의 봉사 활동을 통해 네가 얻고 싶었던 것, 배우고 싶었던 것, 찾고 싶었던 것 모두 다 이루고 돌아오기를 바라. 물론 엄마 아빠는 지금 있는 그대로 연주도 너무 사랑하지만, 1년 후에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돌아올지 기대가 되네.

연주가 아르헨티나에서 연락을 줄 때면, 엄마가 종종 이렇게 말했었지? “연주야,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그런데 네가 싫다고 절대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하.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르게 이야기하려고 해. 연주야, 아르헨티나에 기왕 간 거, 마음껏 열심히 봉사 활동하다가 와!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거기서도 하루하루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는 거 알지?

엄마가 연주 편지 읽으면서 안 울려고 참 노력했는데, 결국 눈물을 닦으면서 편지를 읽고 있더라? 오래오래 네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보고 있어.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소식 전해주렴. 사랑한다, 우리 딸.

P.S. 종종 연주랑 통화하거나 보내준 사진을 볼 때면, ‘지금 연주는 행복하구나~! 그곳에서 사랑을 듬북 받고있구나!’ 싶어. 엄마 아빠는 기쁘고 행복해~ 고마워 연주야♡

- 2023.06.10

언제나 연주를 응원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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