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해녀 신호진

“설령 시간을 돌려, 일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져도 저는 거제 바다를 택할 거예요.” 세상의 수많은 바다 중 거제 바다가 가장 좋다는 신호진 씨. 거제도의 쪽빛 바다는 그가 매일 마주하는 ‘힐링’의 장소이자, 그의 생업이 이루어지는 ‘일터’이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출근 시간을 결정하고, 바람과 파도 읽는 법을 배워야 하는 그의 직업은 바로 ‘해녀’이다. 2년 전, IT회사 사원증을 벗고 고무 잠수복을 집어 든 그에게 ‘바다’의 의미를 물었다.

신호진 씨는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에서 8명이 한 팀이 되어 해녀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 거제시청 홍보실

거제 바다가 무척 매력적인가 봅니다.

특히 바닷속이 아름다워요. 거제 바다가 지리상 동해 바닷물과 서해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라 그런지 위치마다 펼쳐지는 바닷속 풍경이 다채로워요. 또 바다는 계절 따라 모습이 바뀌거든요. 그 변화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신나는 일이죠. 겨울처럼 수온이 낮을 때는 미역, 몰과 같은 해초들이 수북하게 자라나요. 긴 건 8m까지 자라죠. 정글 숲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반면에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수온이 점점 올라가면 풀들이 조금씩 사라져요. 6월 중순인 지금은 둥글둥글하거나 넓적한 풀들이 있는 편인데요. 한여름인 7~8월에는 풀이 거의 사라집니다.

바다 환경이 바뀌니, 철마다 잡히는 해산물도 변하는 거군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잡히는 해산물이 달라지니 해녀들이 일하는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요. 겨울에는 해삼을 주로 잡거든요. 해삼의 경우, 통에 담아 올려서 무게를 재면 작업이 끝나요. 반면에 초여름인 지금은 성게가 제철이에요. 성게의 경우 물질*이 끝난 후에 뒷작업을 해야 해요.(*물질: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따는 일. 주로 해녀들이 하는 일이다.) 두 쪽으로 갈라서 숟가락으로 알을 조심스레 퍼내야 하거든요. 평균 네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또 종종 우뭇가사리도 뜯어서 망사리에 가득 채워 뭍으로 올리는데요. 하루에 뜯어서 올리는 젖은 우뭇가사리 무게가 약 200kg이랍니다. 무거워서 기계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잘 널어 말리고, 다시 담아야 하기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올해로 2년 차 거제 해녀가 된다고요.

네. 바다의 사계절을 두 번 겪으며 제 몸이 ‘바닷속 세상’에 조금 적응한 것 같아요.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수압이 세지잖아요. 처음에는 바닷속에서 수중 압력과 체내 압력이 평형을 이루는 동작이 익숙하지 않아서 코피도 많이 났어요. 바다에 몸을 편안하게 맡기기까지 꼬박 1년은 걸렸죠.

저는 30년이 넘도록 도시에서만 살아왔잖아요. 그렇기에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바닷속에서 사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에요. 처음에는 바닷속에서 큰 물고기만 마주쳐도 깜짝 놀라곤 했어요.(하하) 이제는 바다에 펼쳐지는 풍경이 꽤 익숙해졌죠. 이 외에도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파도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그냥 찰랑거리는 파도인지 사람을 밀어내는 위험한 파도인지 등을 구분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가고요.

바다에선 조급해하거나 ‘이겨내야지’ 하고 결심해서 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아요.(웃음) 어르신들 말씀에 해녀 일은 적어도 4, 5년은 해야 ‘내 일’이 된데요. 그때까지 기다려 봐야죠!

배를 타고 출근하는 해운호 해녀들. 해녀는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거제 해녀 문화는 120년째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 거제시청 홍보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에 뛰어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해녀가 되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우선, 저는 제가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일을 꼭 하려는 성미가 있어요.(웃음) 해녀가 되기 전에 게임 회사에서 일했는데요. 그것도 제가 게임을 무척 좋아해서였죠. 그런데 입사 10년 차가 되던 해에 문득 ‘10년 뒤 내 모습은 어떨까?’라는 물음이 생기더군요. 미래 모습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생기질 않았어요. 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무직원이었는데, 제 자리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겠더군요.

또 그즈음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입원해 수술한 적이 있었어요. 얼마 후, 출근해서 우연히 천장을 바라보는데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바라보는 곳이 회사 천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푸른 바다였어요. 어릴 적부터 유일하게 잘하고 좋아했던 운동이 수영이어서 그런지, 바다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결혼 후에도 주말만 되면 아이들과 바다를 찾아갈 정도였어요. 그렇게 시작된 고민이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왔어요.

운이 좋게도 거제시에서 지원하는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고, 거제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감사하게도 남편과 아이들이 저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요. 해녀학교에서 3개월 과정을 수료한 뒤, 아이들과 함께 거제로 이사를 했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해녀로서 제2의 삶이 시작되었죠.

처음 커다란 뿔소라를 잡은 날. 사진제공 신호진 
처음 커다란 뿔소라를 잡은 날. 사진제공 신호진 
탱글탱글한 성게알은 물질의 고단함도 잊게 만든다. 사진제공 신호진
탱글탱글한 성게알은 물질의 고단함도 잊게 만든다. 사진제공 신호진

해녀가 되기 전과 후 ‘바다’의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수면 위의 바다 풍경을 주로 봤어요. 바다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이 있는 장소였고, 언제 봐도 보고 싶고 힐링이 되는 곳이었죠. 물론, 지금도 출퇴근 길에 배를 타고 바다 위를 가르며 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요. 수면 아래의 바다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해녀가 된 지금, 바다는 제 일터가 됐죠. 전쟁터 같기도 하고요.(웃음) 매일 긴장해야 하는 곳이기도해요. 해녀로 40년 넘게 일하셨던 어르신도 늘 바다에선 긴장을 늦추지 않으세요. 제게 늘 바다에 받아들여진다는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세요.

겸손한 자세로 임하라는 뜻인가 봅니다.

맞아요. ‘바다가 주는 대로 받아라.’라는 말도 많이 하시는데요. 바닷속에서는 더 욕심내려 하거나, ‘오늘 내가 이것밖에 못했네.’하며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적든 많든 ‘오늘 바다에서 받은 내 몫이 이만큼이구나.’라고 생각하래요. ‘다음번에 또 큰 몫이 오겠지.’하면서요. 물속에서 살아가는 법은 확실히 달라요. 그래서 바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의 제2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새롭게 사는 기분이에요. 인생을 다시 배우는 곳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인생을 살면서 고비는 파도처럼 온다. 바다 위의 파도처럼, 하나의 파도가 지나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파도가 온다.” 바다에서 일하면서 그 말이 자주 생각이 났어요. ‘어려움이 왜 끝이 나지 않느냐고 불평할 수만은 없구나. 다만, 끝없는 너울을 만나는 삶 속에서 그 파도를 어떻게 흘려보낼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인생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지만,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아요. 해녀 일도, 인생도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 바다는 미국 식품의약국 FDA가 인정한 청정 해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들. 사진 위쪽부터 전복, 해삼, 성게. 사진제공 신호진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 바다는 미국 식품의약국 FDA가 인정한 청정 해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들. 사진 위쪽부터 전복, 해삼, 성게. 사진제공 신호진

호진 씨가 막내 해녀인가요?

저는 지금 거제 동남쪽에 있는 ‘구조라항’의 해운호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어요. 저희 배에서는 가장 막내인 아기 해녀죠.(웃음) 수십 년간 해녀로 일해오신 어르신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수십 가지의 바람의 종류를 아는 것이나, 물질하는 능력도 대단하신데요. 무엇보다 매일 고무 잠수복을 입고 허리춤에 납덩이를, 팔에는 테왁*을 낀 채로 바닷속에서 일하시면서 삶을 일구고 가정을 이끌어오셨던 것.(*테왁: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가장 기본 도구. 숨을 고르는 해녀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근처 어선에 해녀가 작업 중이라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아래에 달린 망사리에는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그 자체가 너무 존경스러워요. 저는 젊어도 일이 너무 힘든데 말이죠.

사진 프리픽
사진 프리픽

또,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제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애들 챙기느라 힘들었지?” 하고 한마디 해주곤 하세요. 어르신들도 다 지나온 길이기에 아시는 거죠. 그 한마디에도 위로가 돼요. 신기하게도 어르신들이 제 표정만 봐도 다 알고 물어보세요. ‘신랑이랑 싸웠지?’ 하면서요.(웃음)

아름다운 자연, 고도의 기술, 생사를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등 ‘해녀’라는 직업 안에는 참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해녀 일도 장단점이 있어요.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되는 날도 있지만, 때론 뜨거운 해 아래에서 추가 작업을 해야 하는 날도 있죠. 수입이 많은 날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일 때도 많고요. 겨울에는 숨이 멎을 것처럼 차가운 바닷물을 견뎌야 하기도 해요.

하지만 정말로 바다를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저만 이 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그 독특한 사람이 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작년에 거제로 와 해녀가 된 지 1년이 된 언니가 한 명 있거든요. 그 언니도 해녀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더군요. 이 일을 즐겁게 함께할 젊은 분들이 계속 유입이 되어서 해녀라는 직업이 계속 전승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녀들은 산소 호흡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잠수복, 오리발, 수경, 추에 의존해 입수한다. 해녀는 보통은 한번 잠수할 때 1분 정도, 길게는 2~3분 숨을 참고 해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숨을 고른다. 자신의 숨만큼 해산물을 잡을 수 있기에, 다른 어종에 피해가 가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어업의 형태로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 거제시청 홍보실
해녀들은 산소 호흡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잠수복, 오리발, 수경, 추에 의존해 입수한다. 해녀는 보통은 한번 잠수할 때 1분 정도, 길게는 2~3분 숨을 참고 해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숨을 고른다. 자신의 숨만큼 해산물을 잡을 수 있기에, 다른 어종에 피해가 가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어업의 형태로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 거제시청 홍보실

이 기사를 읽고 해녀를 꿈꿀지도 모를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저와 함께 바다를 누비게 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종종 학창 시절의 저를 떠올릴 때가 있어요. 제가 대학을 조금 어렵게 갔거든요. 삼수를 했어요. 그때, 스스로를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100% 틀린 것이었죠. 그 힘든 과정들도 결국 하나씩 하나씩 쌓여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나온 모든 시간이 이곳에 오기까지 이어진 ‘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도 여기서 해녀 어르신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하하)

그는 아름다운 거제 바다를 보게 된다면 ‘이 바다 어딘가에 호진 씨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달라 말했다. 36살에 새로 사는 법을 배운다는 그가 어쩐지 부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 고수해 왔던 삶의 가치관은 극히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바다 위만 바라보며 그게 다라고 여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올여름에는 바다 아래를 탐험해 보고 싶다. 가끔은 성게알 하나에 깃든 해녀의 숨소리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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