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여름’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푸른 바다, 뜨거운 햇살, 녹음綠陰, 소나기, 휴가, 여행 등 여러 단어가 떠오른다. 이번 호에서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스페인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의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 속에 담긴 무언가를 읽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직업병 때문에 나는 편안한 마음보다는 고민과 질문을 가지고 작품을 대할 때가 많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그림이 왜 유명할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을까?’, ‘어디서 어떤 영향을 받아 표현한 것일까?’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수없이 오간다. 그런 중에도 호아킨 소로야(1863~1923)의 그림은 이 많은 질문들을 잊게 하고 그저 작품을 보면서 부드러운 힐링을 느끼게 해준다.

화가는 자신이 담고 싶은 것을 그림에 담는 법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담기도 하고, 유년의 즐거웠던 추억을 표현하기도 하며 거기에 자신의 예술혼과 정신을 불어넣는다. 호아킨 소로야는 자신이 사랑한 ‘고향의 바다’를 화폭에 담았다. 어렸을 적 태어나고 자란 스페인의 발렌시아 해변은 그에게 평생 그림의 배경이 되었다.

두 살 때 스페인을 덮친 전염병 콜레라로 부모님을 잃은 그는 이모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일찍 재능을 드러내어 10대 후반에 스페인 미술전에 참가했고, 발렌시아 예술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21세에 처음으로 그린 대형 역사화 ‘1808년 5월 2일’이 스페인 미술전에서 2위로 입상해, 이듬해 그는 발렌시아 주 정부의 후원을 받아 로마로 유학을 떠난다. 4년간 유학 생활 중 그는 로마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파리에선 처음으로 ‘모던 회화’를 경험한다. 특히 파리의 인상주의 미술은 소로야의 작품 활동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30대 중반에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미국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등 해외 유명인들의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뮌헨, 파리, 뉴욕, 시카고, 비엔나, 베네치아,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시도 열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소로야는 늘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고, 발렌시아 해변을 그리워했다.

그의 작품에서 주된 모티브였던 발렌시아 해변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은 드넓은 바다에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발렌시아는 스페인 동쪽 끝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로 바다가 세로로 길게 이어져 사람들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름의 따사로운 햇볕이 파도로 넘실대는 바다에 내리쬘 때의 그 찬란한 반짝임, 그 황홀함이 가득한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발렌시아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소로야는 잊지 못했다.

“저는 언제나 발렌시아로 돌아갈 생각만 합니다. 그 해변으로 가서 그림을 그릴 생각만 합니다. 발렌시아 해변이 바로 그림입니다.” -호아킨 소로야-

‘바닷가 산책’, 1909년, 캔버스에 유채, 205×200cm, 마드리드 소로야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닷가 산책’, 1909년, 캔버스에 유채, 205×200cm, 마드리드 소로야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닷가 산책’ 작품에서 흰색 원피스를 입은 두 여인이 바닷가를 걸어가고 있다. 해변을 산책하는 여인들(호아킨 소로야의 아내와 큰 딸)의 여유로운 한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도 그 여인들처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다. 파란색은 차가운 느낌을 줄 때가 많지만 호아킨 소로야의 파란색은 어딘가 모르게 반짝이며 따뜻한 느낌이 든다. 활기로 충만한 찬란한 태양의 빛과 함께 있어서 그런 것일까? 지중해의 발렌시아 해변을 배 경으로 여름 바다의 따뜻한 빛과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그림에 묻어 있다.

그의 작품은 순간적인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자연의 빛이 빚어낸 시적인 분위기를 캔버스에 담아낸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벨라스케스 인물 표현 방법과 빛을 회화로 표현하는 모네의 영향을 받아 그는 새로운 화풍을 구축했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소로야는 빛이 많을수록 그림은 더 생기롭고 진실하며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는 빛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한낮에 화구와 캔버스를 들고 해변으로 나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재빨리 그림으로 눈부시고 아름답게 묘사했다.

“그림을 그릴 땐 빠르게 해내야 한다. 안 그러면 다시 만나지 못할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호아킨 소로야-

'해변에 정박한 보트, 발렌시아’, 1915년, 캔버스에 유채, 100×120cm, 개인 소장. 사진 위키아트
'해변에 정박한 보트, 발렌시아’, 1915년, 캔버스에 유채, 100×120cm, 개인 소장. 사진 위키아트

다시 만나지 못할 일상을 소중히 여긴 것이다. 실제 몇몇 작품에는 두텁게 발려진 유화물감에 모래알이 섞여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그의 손놀림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배가 밧줄에 꽁꽁 묶여 정박해있는 모습을 그릴 때도, 그는 빠르게 그려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라 하더라도 태양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매 순간 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다’와 ‘아이들’은 그가 가장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준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 소재다. 작품을 더 살펴보자.

‘해변의 아이들’, 1916년, 캔버스에 유채, 70×100cm, 개인 소장. 사진 위키아트
‘해변의 아이들’, 1916년, 캔버스에 유채, 70×100cm, 개인 소장. 사진 위키아트

위 그림의 구성은 조금 복합적이다. 찰랑거리는 바닷물에 엎드려 노는 아이들이 화면 조금 멀리에 있고, 화면 중앙에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자리한다. 더 멀리는 파도를 맞으며 신나는 한때를 보내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음에 나올 그림들을 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뜨겁고 찬란한 태양을 자신만의 색감으로 그려 독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행복감이 느껴진다. 역동적인 물결과 투영된 햇살의 반짝임, 물에 비추인 아이들 몸의 움직임에서 휴양지의 여유로움과 흥겨움이 드러난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놀았던 추억에 빠져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며 행복해진다. ‘그는 왜 발렌시아를 좋아했을까?’, ‘왜 아이들을 그렸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그 저 작품을 바라보고 느끼기에 끝이 없다.

'여름’,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49×252cm, 아바나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여름’,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49×252cm, 아바나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수영하는 아이들’, 1905년, 캔버스에 유채, 90×126cm, 마드리드 소로야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수영하는 아이들’, 1905년, 캔버스에 유채, 90×126cm, 마드리드 소로야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호아킨 소로야가 발렌시아 해변에서 기쁨을 주는 그림을 그려낸 것은 그의 실제 삶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그는 아내와 세 아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한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였다. 여행 중에도 매일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고, 그렇게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800통이 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나의 모든 사랑은 당신을 향해 있어요. 나는 아이들을 몹시도 사랑하지만 여러 면에서 당신을 훨씬 더 사랑하오. 말해 무엇 하겠어요. 당신은 나의 몸이요, 나의 인생, 나의 정신, 내 평생의 이상이오.” -호아킨 소로야-

아내에게 일상과 감정, 작가로서의 철학과 이상까지 솔직하게 편지에 썼고, 그 감정을 아내와 함께 나누려 했다. 가정적인 그의 성격은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여인과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 속에 그대로 담아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을 보는 필자도 내내 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이와 같이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은 일상 속에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냈다. 햇빛과 빛나는 바다, 사랑스러운 천진함, 함께 어울려 나누는 소소한 행복, 즐거움이 묻어나는 여유로운 일상 속에 행복이 가득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나의 일상 속에는 어떤 행복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이들과 힘께 보내는 시간들, 도서관에 앉아 보는 책들,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맛있는 음식들…. 찾아보면 나의 일상에도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사고를 하는지에 따라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누구든 그 삶 속엔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기쁨을 발견하면서 걸어가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기쁜 일만 보고 생각하다 보면 슬프고 힘든 일은 잊히고 그냥 가버린다. 슬픔이 왔는지조차 모르게 말이다. 호아킨 소로야 역시 일찍이 유명해졌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보다 가족, 고향 그리고 일상의 즐거운 순간만을 생각했기에 그의 그림은 항상 밝고 행복하다.

그림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가끔은 바쁜 일상 속에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그림을 보며 한숨 돌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 참 좋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그림 한 점이 필요할 때이다.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을 보며 우리 모두 마음의 힐링을 하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길가온 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서 미술교육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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