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제약산업의 청년 기수, 전요섭

100세 시대, 코로나19 팬데믹 등 현 시대의 가파른 흐름 속에 제약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주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제약회사에서 올해로 9년째 근무하고 있는 전요섭 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특별한 꿈’이 있다는데,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들어본다.

투머로우 독자들에게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바이오 제약기업인 한국MSD(Merck Sharp & Dohme Corp, 본사:미국)에서 2015년도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윤리경영팀에 소속되어 국내외 관련 법규와 회사 내부적인 윤리 규정을 회사 내에 적용하고, 직원 대상 준법 교육 및 관련 사항들을 모니터링하며 회사가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제약산업이 규제 산업이다 보니 약사법과 같은 국내 법규들과 공정경쟁규약에 따른 준수 규정들을 따라야 합니다. 특히 MSD는 미국 내 상장, 등록된 기업들이 준수해야 하는 해외부패방지법을 지키고 있으며 업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 기준과 문화를 형성해왔기에 내부적으로도 요구되는 여러 규정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업무의 과정에서 이를 잘 준수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의약품, 백신사업에 쏠리게 됐어요. MSD에 다니면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것 같아요.

MSD는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Patient first’라는 환자 중심의 가치를 우선으로 두고 있어요. 이윤만을 위한 결정보다는 더 많은 환자를 위한 결정들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에 따라 아직 치료 옵션이 부족한 질환을 위한 의약품을 개발하다보니 해당 치료 옵션에서 최초의 의약품들을 많이 개발하고 공급해 왔어요. 또 전염병 등 공중 보건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에볼라 백신이나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공급했고요. 팬데믹 상황에서 MSD가 보여준 기업 가치와 의학적·사 회적 역할에 저 역시 큰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고 회사의 조직원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며 업무에 전념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저희 회사는 강점이 많습니다. 직원의 커리어 개발 측면에서 개인의 의지가 있다면 회사 내 직무이동 장벽이 높지 않아요. 여러 부서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아서 다른 업무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고요. 여성 직원 차별이나 세대 간 갈등의 문제도 다른 기업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편입니다. 직장 내 다양성 존중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기 때문이죠. 신입이라도 팀 내에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고 어떤 문제든 그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스피크 업 문화’ 역시 강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MSD의 지향 가치, 사회적 역할, 회사 문화 등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회사 사랑이 남다릅니다. 처음부터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요?

사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대학에서 계속 공부해 왔었습니다. 사회적인 성공을 쫓고자 했고 제 스스로에 대한 삶의 보상을 가장 중요시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봉사를 가게 됐는데 내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이 바뀌고 그때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구직을 앞두고는, 물론 모든 기업이 좋은 이념과 가치관을 내세우겠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을 찾게 됐어요. 그러다 한 지인이 MSD 청년 슈바이처상을 받는 걸 보고 한국MSD를 처음 알게 됐고 제약회사가 의약품·백신 개발, 사회적 활동으로 큰 역할을 하는 걸 봤어요. 자세히 알아볼수록 이 기업의 가치관과 활동들이 저에게 맞겠다 싶었고 다행히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현재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마음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아프리카 쪽 지사로 가고자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MSD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여러 곳에 지사가 있는 글로벌한 일터라는 점이었어요. 더 넓은 세계에서 나의 가능성과 포부를 펼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변화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커리어 개발의 기회만 본다면 본사가 있는 미국도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곳이지만 저는 아프리카 쪽으로 지원해서 그곳 한 국가의 Managing Director가 되고 싶어요. 이 이야기를 회사 생활 9년 동안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거예요.

미국계 회사는 연차가 쌓이면 다음 기회가 보장되는 시스템이 절대 아닙니다. 회사 내에서 관심이 있고 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나의 업무 전문성과 탁월한 적합성을 계속 어필해야 기회가 찾아와요. 제 목표를 위해서는 직무 로테이션을 통해 커리어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 하던 영업에서 현재 다른 직무로 전환해 일을 배워나가고 있어요.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제 역량을 키우고 있고요. 곧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회사 내 직원개발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새로운 업무를 배워 이러한 기회들을 발판 삼아 아프리카로 나가고 싶습니다.

아카데미 오리엔테이션 사회를 맡아 수업운영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 아카데미 운영 외에도 유스캠프 진행, 자원봉사자 모집, ‘한국의 날’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전요섭
아카데미 오리엔테이션 사회를 맡아 수업운영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 아카데미 운영 외에도 유스캠프 진행, 자원봉사자 모집, ‘한국의 날’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전요섭
봉사단원들과 함께 짐바브웨의 곳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간 대 인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사진제공 전요섭
봉사단원들과 함께 짐바브웨의 곳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간 대 인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사진제공 전요섭

왜 아프리카죠?

대학 졸업 1년을 남기고 짐바브웨로 1년간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안 해 본 일들과 맞닥뜨려야 했고, 부담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생각을 늘 해야 했어요. 한국에서 익숙하게 의지하고 믿어왔던 것들이 통하지 않았고 잘하려고 했던 계획도 실패하고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죠. 제 마음과 삶을 돌아보면서 솔직한 내 자아를 발견하고 또 내력內力을 키울 수 있는 성장의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어떠한 위선이나 가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삶을 보면 하루하루 사는 게 무척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가난, 내전, 질병으로 꿈꿀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그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죠. 이것을 바꿀 수 있는 조금의 노력들이 모아졌을 때 사람들의 삶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거기에 일정 부분 공헌할 수 있겠다, 공헌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요?

제가 운영했던 컴퓨터 아카데미의 수강생 존 마가다, 이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존은 연초부터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지각, 결석 없이 정말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했어요. 한 집안을 이끄는 가장으로 가구점에서 회계를 보는 분이었는데 삶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죠. 여러가지 꿈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 존의 초대로 그의 집에 가게 됐는데 저희 지부와 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여서 깜짝 놀랐어요. 아카데미도 근실하게 참여하고 그 외의 행사 때도 자주 왔던 분이 알고 보니 차로 왕복 8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했던 거예요. 상당히 가난해 보이는 본인 집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러워하고, 또 가족을 소개해 주면서 자기가 꿈을 꾸고 살아가는 삶을 공유해 주더라고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운거죠. 나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이분의 삶은 너무나 어려워서 형편만 보면 무척 힘들다고 말해야 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형편에 내어주지 않고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품은 꿈의 가치를 귀하게 생각해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갔어요. 지금의 삶의 수준과 상관없이 꿈을 좇는 그의 태도가 정말 멋있고 가치 있다는 마음이 들었죠.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저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고요? 학창 시절 어떤 아이였는데요?

초등학생 시절엔 친구들한테 외모 놀림을 많이 받아 소심한 아이였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다 보니까 바쁘시고, 물론 형이 있긴 했지만 형과 가깝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늘 외로웠어요. 친구들의 놀림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하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는 학교가 달라지니까 나를 놀리고 괴롭히기 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더 무서운 존재가 되면 고통을 받지 않겠다 싶었죠. 그래서 중학생 때는 도리어 강하게 보이려 했고 탈선의 길을 갔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갈 때쯤 또 변화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별거하게 되면서 앞으로의 내 삶은 내가 개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에 매달렸죠.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갔고 마음이 다 무너지더라고요. 2, 3개월 동안 집밖을 안 나갔어요. 당시에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삶의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죠. 대학에 가서도 친구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고 사귀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을 피해 다녔어요. 초반에는 공강 시간에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화장실에 들어가 있기도 했어요.

어떻게 그 패배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귀국 발표회를 보게 되었어요. 일단 학생들이 댄스를 정말 잘해서 놀랐고, 봉사를 다녀온 몇몇 단원들이 앞에 나와서 자신의 체험담을 하는 데 그때 한 번 더 놀랐어요.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자면 나보다 훨씬 더 괴로워야 하는 게 맞는데 자신은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왜 행복하지?’ 그게 일차적인 마음이었고 ‘나도 행복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기더라고요. 그 미소, 정말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잊히지 않아서 몇 년 후 저도 같은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짐바브웨에 다녀왔고 제 삶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삶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네요. 그때의 경험이 회사 생활에서도 도움이 됐나요?

처음에 저는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한번은 이전 담당자가 정말 잘해왔던 지역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해당 지역은 거리가 멀고 이전 담당자가 잘 해왔다 보니 모두들 후임 담당자가 되기를 꺼려했죠. 저도 부담스러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하루가 쌓여서 길을 만든다’는 해외봉사 때의 마음가짐으로 성실하게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해당 지역 고객들의 신뢰를 조금씩 얻게 되고 매해 성장을 거듭해 3년간 연속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고 3년째에는 부서에서 가장 우수한 영업사원으로 뽑히게 됐어요.

그때 저를 회사에 뽑아 주셨던 매니저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나요.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부딪혀서 어떻게든 길을 찾는 사람은 당신과 같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아프리카 해외봉사에서 도전적인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인 것 같다. 다음에 직원을 뽑을 때는 이런 기준을 활용할 수 있겠다.”고 하시는데 감사하면서도 기억이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회사 영업일을 했을 때 높은 성과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다양한 업무를 배워 보고자 현재 다른 직무로 전환하여 일하고 있다.
회사 영업일을 했을 때 높은 성과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다양한 업무를 배워 보고자 현재 다른 직무로 전환하여 일하고 있다.
20대 청년들의 멘토가 되어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20대 청년들의 멘토가 되어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꿈과 가족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아내는 항상 그를 믿고 지지해준다. 딸 별하는 늦게 태어나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다. 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사진제공 전요섭
꿈과 가족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아내는 항상 그를 믿고 지지해준다. 딸 별하는 늦게 태어나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다. 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사진제공 전요섭

전요섭 씨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프리카에서 ‘의료와 교육’의 일을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에요. 1차 의료기관도 부족하고 클리닉이라는 개념도 거의 없어요.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하게 의약품이 공급되고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그것을 지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이것은 MSD 안에서의 역할을 통해서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최종적으로 병원, 특히 소아 병원을 건립하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아프리카 지사로 가서 작은 목표들을 이뤄나간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실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요.

또 저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대안학교 교사를 잠시 하기도 했고 현재 대학생, 청년들을 지도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발전시켜서 교육재단을 아프리카에 설립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고, 졸업 후 진로와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습니다.

제약산업 분야에서 일하길 원하는 취준생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한국 제약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중요한 시장입니다. 그만큼 많은 기회가 열려 있고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직접 공헌할 수 있다는 보람도 느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외국계 제약사들이 한국에 진출해 있어서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으니 어떤 직무가 있는지 알아보고 관심 있는 직무가 있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길 추천 드립니다.

전요섭 씨는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게 나’라는 태도로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물밑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일이 될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결코 편안하고 안락한 길은 아니었다. 단,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충만한 삶이었다. 안정된 삶을 뛰어넘어 충만한 삶에 이르고자 전요섭 씨는 오늘도 끝없는 연습과 도전을 반복한다. 그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가 걷는 길을 함께 응원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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