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학생과 부모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
여름방학을 잘 보내려면 분명한 목표설정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사고하는 습관을 키우면
일부러 고생스러운 활동이나 체험을 해보길 추천

기다리던 방학, 그러나…

방학이 기다리고 있는 7월은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온갖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거의 100여 일 동안 규칙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빡빡한 스케줄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방학은 그런 일탈이 허락되는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더운 날씨와 함께 학기 초의 쌩쌩했던 에너지가 고갈되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학생들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천국처럼 다가올 것이다. 자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자고,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리라는 꿈을 꾸며 방학을 맞이한다.

반면에 부모는 어떨까? 시간이 갈수록 흐트러지는 자녀들의 생활 태도에 한마디 충고를 하게 되고, 그러면 자녀들은 귀찮은 잔소리로 듣기 일쑤다. 싸우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참아보지만, 방학 동안 아이가 더 퇴보해 버릴 것 같은 조급한 마음에 자녀들과의 언쟁은 계속 높아져 간다. ‘선생님들 미치기 전에 방학해야 하고, 엄마들 미치기 전에 개학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방학은 학생과 부모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이다. 꼭 있어야 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문젯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학 생활에 대한 올바른 목표설정이 중요

슬기로운 방학 생활을 보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방학을 준비하는 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설정이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이나 혹은 방학 지도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어떤 면의 성장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필자가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사고력 향상’이다. 이때의 사고력 향상은 학기 중에 배웠던 지식을 더 심화해서 정리하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과 주변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에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문제점을 발견해 해결 계획을 세우며, 실천하려는 의지까지 갖게 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의 사고력을 말한다.

두 종류의 사고력에서 가장 대비되는 차이점은 ‘스스로’이다. 지식을 더 심화해서 정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 주는 것을 받아들이면 가능하지만, 후자의 사고력은 외부에서 가르쳐준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재적인 동기와 관심이 생겨야 스스로 하려고 하는 열정과 노력이 따라온다.

거꾸로 교실 방식을 중학교에서 실시한 결과, 한창 졸릴 5교시 국어시간에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고 한 학기에 반 평균 점수가 12점 올랐다. 한편 왕따현상이 줄어드는 성과도 보았다.사진제공 KBS 뉴스 캡처 
거꾸로 교실 방식을 중학교에서 실시한 결과, 한창 졸릴 5교시 국어시간에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고 한 학기에 반 평균 점수가 12점 올랐다. 한편 왕따현상이 줄어드는 성과도 보았다.사진제공 KBS 뉴스 캡처 

자기주도적 학습과 거꾸로 학습법

최근 10여 년 동안 교육계에서 가장 화두가 된 주제가 ‘자기주도적 학습력(Self-Directed Learning, SDL)’이다. 말 그대로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 학습의 주도권을 가지고 수행하는 학습을 말한다. 학생들이 각자의 수준과 관심에 근거해서 지식을 능동적으로 구성해가며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는 학습능력의 습득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유능한 교사의 역할도 매우 달라졌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지식을 잘 구성하여 더 많은 양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높은 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자극을 제공하며 이끌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언론에서 자주 듣게 되는 ‘거꾸로 교실’이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거꾸로 학습법Flipped Learning에서는 새로운 이론이나 지식을 교실에서 처음 접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미리 가정에서 동영상이나 책을 통해 스스로 학습을 한다. 그 후에 교실에서 질의응답, 토론, 실험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미국 학교의 80% 이상이 이 방법을 도입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학교를 필두로 지금은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거꾸로 학습법’을 접목한 교육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기 때문에 각각의 수준에 맞는 1:1 맞춤형 수업 방법이 필수적이고, 그래서 가장 최근에는 새로운 IT기술이 접목된 에듀테크가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로 볼 때 에듀테크는 미래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한 방법으로 도입된 것인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과거처럼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많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어서 올바른 교육관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방학 동안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스스로 생각하고 통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고력 향상이다. 이를 위해서 고려해야 할 3가지를 설명해 본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진이 만든 ‘Coursera’라는 에듀테크 모델이다. 사진제공 coursera
2012년 스탠포드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진이 만든 ‘Coursera’라는 에듀테크 모델이다. 사진제공 coursera

사고력은 ‘여유’로운 시간에서 비롯되고

첫 번째 키워드는 ‘여유’이다. 대부분 생물의 성장은 쉬는 시기에 이루어진다. 낮 동안 광합성으로 열심히 양분을 저장한 나무들은 밤에 호흡하며 성장한다. 그래서 밤새도록 환하게 불을 켜 놓으면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 동물이나 사람들도 밤에 깊은 잠을 자야 성장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고 면역력도 높아진다.

방학은 그런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의미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주는 것이 사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가 만든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보다, 투박하지만 나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전문가가 계획한 좋은 프로그램에 10번 참여하는 것보다, 지루하고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엉성하더라도 나 스스로 계획한 활동을 해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학기 중에는 어렵기 때문에 방학 때가 적기이다. 그런데 그렇게 여유를 누리며 사고력을 키워야 하는 방학조차도 부족한 과목과 기능을 익히기 위해 각종 어학 캠프 및 특별 프로젝트, 학원 수강에 내몰리는 바쁜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학기 초에 담임교사에게 제출하는 기초 설문조사 중 ‘자녀에게 바라는 점’ 항목에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언급한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숙제하면 좋겠어요.’, ‘스스로 학습 준비물을 챙기면 좋겠어요.’, ‘스스로 책을 보면 좋겠어요.’ 부모도 자녀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숙한 상태가 되기를 고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바람과 실제 행동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먼저 시키고 몰아가는 상황에서 자녀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린다.

사진제공 프리픽
사진제공 프리픽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두 번째 키워드는 ‘고생’이다. 요즘 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속담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이다. 이 속담을 들먹이면서 젊은 세대에게 온갖 고생을 떠맡기고, 사회가 같이 감당할 책임도 미룬다는 것이다. 이런 반론을 제기하면서 나중이 아닌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청년들은 역설한다. 예전과 다른 현대 사회를 감안할 때 이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그런 속담이 나오게 된 의미까지 묻어 버려서는 안된다. 훗날의 성공을 위해 일부러 고생스러운 길을 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위인전을 보면 반드시 어릴 적 역경을 겪었던 일화가 소개되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와 버린 힘든 환경을 이겨내다 보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성공을 이룬 것이다.

고생스러운 경험이 주는 가치와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단 개인의 삶 속에서 뿐 아니라, 역사 사회 경제 분야에서도 반드시 실패와 어려움이 있고, 그것을 이겨내고 넘어섰을 때 비로소 큰 성공과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반면에 현대 사회는 물질적 풍요로 인해 육체적인 고생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능력을 갖춘 부모들은 풍부한 정보력과 경제력으로 자녀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주고, 문제 상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앞서 고민해서 알려주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당연히 스스로 하고 싶은 동기를 발휘할 수 없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된다.

지혜로운 부모와 교사라면 그 점에 주의하여 자녀교육에 어떤 방식으로 고생의 경험을 제공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취지로 극기 훈련, 극기 캠프 등을 운영했었는데, 체험 중 발생되는 안전사고로 인해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

방학 동안 캠프나 체험활동에 참여시키고 싶다면, 고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볼 것을 권유한다.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문제가 보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나온 캠핑 장비를 뒤로 하고 고생해서 만들어가는 캠핑, 스스로 계획하는 힘든 여행, 돈 없이 핸드폰 없이 살아보는 경험 등 최대한 일상의 현대인들이 싫어하는 활동에 몸을 맡겨 보면 없던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도 쑥쑥 튀어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이 함께 떠난 캠핑 여행에서 정작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 나뭇가지를 주워 아이들과 놀아 보자. 치밀한 일정보다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고력 증진에 필요하다.     사진제공 곽병관,임성예가 공저한 캠핑놀이 지침서《좀 놀아본 캠핑》
가족이 함께 떠난 캠핑 여행에서 정작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 나뭇가지를 주워 아이들과 놀아 보자. 치밀한 일정보다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고력 증진에 필요하다.     사진제공 곽병관,임성예가 공저한 캠핑놀이 지침서《좀 놀아본 캠핑》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함께 고된 훈련을 받고 있지만 표정에는보람이 가득하다. 사진제공 해병닷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함께 고된 훈련을 받고 있지만 표정에는보람이 가득하다. 사진제공 해병닷컴

스스로 기록하고 피드백을 하는 스케줄러

마지막 키워드는 ‘스케줄러’이다. 한 번 만들어서 한 달 내내 벽에 붙여 놓기만 하는 생활계획표가 아니라, 수첩을 활용해 매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스케줄표를 스스로 적도록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정하는데, 아이가 어리다면 시간별로 빡빡하게 정하기보다는 중요한 활동 위주로만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대한 아이들의 결정을 지지해 주되, 반드시 저녁에는 하루를 되돌아보는 피드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부분은 잘되었고, 저것은 잘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이러이러했다. 왜 그랬을까?’ 등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력이 향상된다.

IQ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사고력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습관이다. 인간에게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적어도 66회 이상의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방학 동안에 아이들이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반복해서 제공해 주면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학생들에게는 신나는 방학, 청장년들에게는 달콤한 휴가가 있는 7월, 우리들의 휴식 시간을 좀 더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사고력을 발휘해 보자. 이번 방학이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아름다운 고생을 즐길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스스로 만든 계획을 실천할 강한 마음이 만들어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올해 2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2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춘천교도소 초청으로 2015년부터 재소자들에게 매달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상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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