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로 간 하은지

본지에서는 전 세계로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굿뉴스코 해외봉사단’과 콜라보레이션으로 ‘표지 사진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 대학생 224명에게 ‘내 마음 속 행복을 표현해 봐’라는 주제어를 제시했고, 수십 개 나라에서 참여했다. 그중 말라위에서 보내온 하은지 학생의 사진이 1등상을 수상했다. 현지인 친구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 속에 내밀한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국적도, 피부색도, 자라온 환경도, 문화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미소 짓게 하는가? 말라위 생활 3개월 차인 하은지 단원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하은지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 1학년을 마치고 말라위로 해외 봉사를 왔다.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 는 말라위 현지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표지 사진 콘테스트에 참가해 1등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 굿뉴스코 말라위 지부
하은지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 1학년을 마치고 말라위로 해외 봉사를 왔다.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 는 말라위 현지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표지 사진 콘테스트에 참가해 1등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 굿뉴스코 말라위 지부

표지 사진 콘테스트에서 1등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정말 내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거든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하하) 유난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한테 투머로우 잡지는 굉장히 특별해요. 고등학생때부터 애독자여서 매달 잡지를 읽었어요. 한 칼럼 한 칼럼마다 울림을 주는 감동의 글들이 정말 많았어요. 때론 형광펜으로 밑줄도 치고, 좋은 문장은 포스트잇에 옮겨서 책상 위에 붙여 놓기도 했었죠. 그런 글들이 힘들었던 고3 수험생활에 큰 힘이 됐어요. 제 최애 잡지로부터 상도 받고 인터뷰까지 하다니 정말 기쁩니다!

우리 잡지의 애독자라고 하니 더 반갑습니다. 굿뉴스코 단원들이 올해엔 95개국 나라로 파견되었다고 들었어요. 그중에 아프리카 말라위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난했어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조그만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어요. 학교 가면 친구가 새 가방, 새 옷 샀다고 자랑하는데 저는 언니한테 물려받은 헌 가방에 헌 옷 입고 있는 게 싫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라고 친구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도 창피했고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맛있는 것도 많고 재밌는 것도 많지만,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친구가 놀러오고 싶다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해야 했어요. 그런 제가 너무 불쌍했어요. 하루는 큰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저와 언니에게 옷을 사주시고, 제가 정말 갖고 싶었던 자전거도 사주셨어요. 제겐 너무나 큰 선물이어서 큰아버지가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평소 저를 귀엽게 봐주시던 학교 급식 선생님이 어린 사촌의 안 입는 옷들을 제게 챙겨주셨어요.

문득 그런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제가 받은 사랑이 정말 많더라고요. 불행하고 안 좋다고만 생각할 땐 제 인생이 전부 우울해 보였는데, 제가 받은 관심을 생각해 보면 이미 저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나중에 크면 열악하고 가난한 나라에 봉사를 가서 내가 받고 느낀 이 사랑을 전해줘야겠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있으며 그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라위를 선택했어요. 말라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져 있고, 식량 위기까지 겪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상상 못할 일이지만 이곳에선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렇게 부모를 잃은 고아들도 많고요.

매일 만나도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 만날수록 즐거운 현지 친구들이다.사진제공 하은지
매일 만나도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 만날수록 즐거운 현지 친구들이다. 사진제공 하은지

실제로 가서 본 말라위는 어땠나요?

도착한 날, 말라위 공항에서 차를 타고 릴롱궤 지부로 가는 길에 깜짝 놀랐어요. 6·25전쟁 당시 한국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제가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열악한 나라였어요. 앞으로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지 염려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어요.

지금까지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건 현지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정말 순수하거든요. 작은 일에도 까르륵 웃으며 좋아하고 즐거워해요. 같이 있으면 저도 웃는 시간이 많아져서 저절로 힐링이 돼요.

제겐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어요. 크리스티나와 메리인데요. 표지에 같이 나온 친구가 바로 크리스티나에요. 성격도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친구죠. 저는 크리스티나가 원래부터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이기적인 성격이었대요. 우연히 말라위 지부에서 주최하는 드림캠프에 참석했다가 마인드 강연을 들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가까워지는 법을 알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을 배웠대요. 그 후로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고요. 그래서 지금은 릴롱궤 지부에서 저와 같이 지내고 있어요.

말라위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메리(왼쪽)와 크리스티나(오른쪽) 사진제공 하은지
말라위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메리(왼쪽)와 크리스티나(오른쪽) 사진제공 하은지

크리스티나와 메리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줘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게 돼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전부 다요. 그다음엔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해요. 마찬가지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전부 쏟아 놓죠. 그렇게 한참 속내를 이야기하고 나면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어요. 가족처럼요.

누군가와 가족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건 특별한 일인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이 서로 흐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차이점도, 보이지 않는 차이점도 많지만 저와 친구들은 소통하면서 한마음이 되는 것을 자주 느껴요. 그러다 보니 서로 다름에서 오는 갈등이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감사로, 행복으로 마무리짓게 되더라고요.

그런 마음의 힘은 어떻게 가질 수 있었나요?

저희가 현지에서 하는 활동들은 굉장히 다양한데요. 그중 빠지지 않고 하는 활동이 마인드 교육이에요. 우리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등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마인드교육이, 해외봉사 활동이 계속 이어져오면서 아주 좋은 커리큘럼으로 갖추어져 있어요. 저희 지부장님은 “학생들에게 아무리 물질적으로, 지식적으로 도움을 줘도 올바른 마인드가 형성되지 않으면 금방 넘어지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거야. 그래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마인드 를 심어주고, 그 힘을 키워주는 게 가장 중요해.”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저희는 매주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목, 금, 토, 일 2시간씩 방송, 건축, 테일러링, 컴퓨터 4개의 아카데미를 하고 마지막엔 항상 마인드 교육을 해요. 먼저 마인드 강연을 듣고 그룹별로 모여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처음엔 자기 주장만 하던 학생이 점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 생각이 틀렸었다고 발표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꿈도 없고 목표도 없었는데 아카데미와 마인드 강연을 듣고 꿈이 생겼다고 이야기했어요. 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활동들을 더 늘려갔어요. 토요일 오전에는 단원들이 나뉘어서 클럽활동으로 한국어, 태권도, 축구, 댄스를 가르치고, 저는 월요일, 화요일 마다 일반 초,중,고등학교 방과후 뮤직클럽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리고 학교마다 다니면서 마인드 강연과 마인드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있어요. 저희가 하는 활동들이 많아질수록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현지 봉사자들이 늘어나고 덕분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어요.

또 얼마 전엔 낸시 템보Nancy Tembo 말라위 외교부 장관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장관님께 우리가 현지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과 앞으로의 계획들을 발표할 수 있었어요. 장관님께서 저희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셨어요.

말라위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캠프에서 노래와 간단한 율동을 가르쳤다. 캠프에 참석해 행복해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사진제공 하은지
말라위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캠프에서 노래와 간단한 율동을 가르쳤다. 캠프에 참석해 행복해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사진제공 하은지

보람 있는 활동을 하고 있네요.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요.

크고 작은 어려움은 항상 있었어요. 대상포진에 걸려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누워 있었던 적도 있고, 음악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또 제가 요리를 잘 못하는데 식사 당번으로 음식을 준비하면서 칼질하다가 애를 먹은 적도 있었고요.(웃음) 그럴 때 저희 지부장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어떤 일을 하든 어려움은 항상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어려움만 계속 있는 건 아니야. 해가 져도 다음 날 다시 해가 뜨듯이 고난 뒤에 따라오는 행복도 반드시 있어. 어려움을 보지 말고 뒤에 올 그 행복을 바라보면 소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길 거야.” 그래서 요즘은 어려워도 그냥 해요. 뒤에 찾아올 행복을 소망하면서요. 그러니까 어려워도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매주 월, 화 방과후 뮤직클럽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학생들이다. 사진제공 하은지
매주 월, 화 방과후 뮤직클럽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학생들이다. 사진제공 하은지
움친지umchinji라는 마을에서 무전여행 중에 만난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사진제공 하은지
움친지umchinji라는 마을에서 무전여행 중에 만난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사진제공 하은지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앞으로 6개월 정도 남았어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저는 앞으로 꾸준히 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어요. 초반에 말라위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었는데 지금은 활동을 잘 못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중엔 다 그리울 텐데 시간이 흘러도 이 추억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게 영상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말라위라는 나라와 이곳에서 저희가 하는 활동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그리고 새로운 일들도 많이 하고 싶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경험해 보고 싶어요. 크리스티나와 메리랑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고요. 그리고 올해가 지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말라위에 와서 살 거예요. 제가 언론영상학과인데 저희 말라위 지부에서 운영하는 방송국이 있거든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현지 사람들을 위해서 더 봉사하고 싶어요. 말라위 덕분에 인생 목표가 하나 생겼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영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제가 다시 말라위로 돌아왔을 때 제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제 이름을 크게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표지 사진을 다시 보았다. 조금의 불편함이나 어색함, 가식 없는 그들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아무런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이 사진처럼,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세상엔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다. 마음에서 서로를 향한 진실한 사랑과 감사를 발견해, 이들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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