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우울감을 느끼고 때로 정신적으로 어려움도 겪는다. 과거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1순위라서, 지금처럼 정신적인 고통이나 문제들은 수면위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물질적인 환경은 이전보다 더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척박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우울증 갤러리’에 대한 뉴스 방송을 들었다. 주로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데, 누구나 접속해 우울 증세에 관해 대화를 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유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들은 선뜻 남에게 꺼내놓기 힘든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정신적 어려움을 털어놓다가 오프라인으로 만난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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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이 커뮤니티에 하루 평균 60만 건의 글이 쏟아지고 있어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폐쇄시켜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일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타인의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또 다른 경로를 찾아낼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SNS나 각종 메신저 앱을 통해 유해 정보에 접속하거나 약물 관련 정보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요즘 들어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왜 많아지고 있을까? 지속적인 우울감을 스스로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 항우울제와 같은 약 처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출근길에 뉴스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오는 ‘두 늑대’ 이야기. 검은 늑대는 불행과 절망, 하얀 늑대는 사랑과 희망을 상징한다.(사진 원더풀마인드)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오는 ‘두 늑대’ 이야기. 검은 늑대는 불행과 절망, 하얀 늑대는 사랑과 희망을 상징한다.(사진 원더풀마인드)

미국의 체로키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오는 ‘두 늑대’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교훈을 담은 내용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두 마리는 항상 싸우지.”

손자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우리들 속에도 있어요?”

“그럼,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검은 늑대이고 한 마리는 하얀 늑대야. 검은 늑대는 분노, 질투, 불평, 억울함, 열등감, 헛된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고, 하얀 늑대는 사랑, 희망, 평온함,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두 마리 늑대처럼, 인간의 마음은 내가 어떤 생각에 먹이를 더 주느냐에 따라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점점 차지하게 된다. 그것이 마음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잘못된 생각을 품을 때가 많고, 그것을 마음에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사소한 일과 지나치는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전달자의 의도와 달리 ‘저 사람이 날 미워해서 그렇게 한 거야.’라고 잘못 오해해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주변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고립의 장막을 치기도 한다. 불편한 일로 생기는 마음속 감정에 반응하기보다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주변 지인들과 소통을 통해 자신이 반응하는 모습에 대해 살펴 보면, ‘내가 오해했구나, 잘못했구나!’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심리적인 질환을 약물 치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사진 프리픽)
현대 의학에서는 심리적인 질환을 약물 치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사진 프리픽)

며칠 전 퇴근 후 집에서 아들과 둘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며칠 동안 학교생활도 힘들고, 친구들이 불러도 대답하기도 싫고, 점심 먹는 것도 힘들어요. 내가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는 아들의 입에서 ‘에퍼드린 교감신경계’, ‘노르에피네프린’ 등 평소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의학 용어가 줄줄이 나왔다.

“몸에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려면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를 올려주는 약을 먹어야 돼요. 어제 기분이 안 좋아서 엄마가 주무실 때 인터넷으로 검색했어요.”

나는 너무 놀랐다. 내 눈 앞에서 내 아들이 눈물, 콧물까지 쏟아가며 밥 수저도 못들 정도로 우울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라서 사춘기가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자기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진단하고, 처방까지 한꺼번에 말하는 모습이 즉흥적인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은 인터넷 검색이나 학생들이 주로 공유하는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받은 정보대로 따라 하면, 지독한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도 처음 겪는 상황이었고, 알 수 없는 호르몬과 약 이름이 아들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와 더 놀랐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단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내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 마음속에는 여러 생각이 들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울이야. 그런데 마음 속엔 우울만 있는 게 아니라 감사도 있고 행복도 있고 기쁨도 있어. 네가 우울한 생각에만 먹이를 줘서 키운 것 같구나. 때로 잘못된 생각이 들 때 네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사실 확인이란다. 마음을 채우는 생각이나 느낌이 분명한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을 해야 해. 그러기 전에 그냥 믿어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해. 우리에게 우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사실 엄마도 매일 그런 감정들이 생기거든. 중요한 것은, 네가 어두운 생각만 받아들여 그 생각을 점점 키우니까 지금 네 마음이 온통 부정적이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이야.”

나는 흰 종이를 꺼내 아들의 마음을 커다란 동그라미로 그렸다. 그 다음엔 작은 원을 커다란 동그라미 안에 그려 까맣게 칠하고, 그 작은 원을 점점 더 크게 그려서 커다란 동그라미 안이 모두 새까맣게 채워진 모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게 지금 너의 어두운 마음과 같아. 현대 의학에서는 이런 마음이 되면 약물 치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높지.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먼저 우울한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치료법을 말할 수 있지 않겠니?

네가 친구들한테 말 걸기도 싫고 밥 먹기도 힘들다고 했지. 그런데 마음이 상처를 받는 것은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이 아니란다. 내가 누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표면적인 원인일 뿐이야. 근본적인 원인은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약한 마음이지. 엄마도 예전에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누구 때문인 줄로만 알았어. 내 마음이 약해서 상처를 받는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처음엔 호기심에서 약물 복용을 하지만 나중에 내성이 생기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처음엔 호기심에서 약물 복용을 하지만 나중에 내성이 생기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우리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영양, 휴식, 운동 3요소가 필요하단다. 신체 활동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고, 피곤할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해. 그리고 근육이 단단해지도록 운동도 해야 하고. 그건 너도 알고 있지?

그러면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도 몸과 같아서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해.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도전하려는 노력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튼튼한 근육이 생기면서 마음이 강해지는 거야.

얼마 전에 심리 특강을 들었는데, 현대인들이 가장 잘 넘지 못하는 부분이 인간 관계의 어려움이고 그 원인이 약한 마음 때문이라고 하더라. 우리가 자신의 약한 마음을 인정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약해져서 나중엔 고립 상황에 이르거든. 우리가 마치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도 부담스런 상황을 계속 피하면 더 내성이 강해져서 점점 더 도망가고 싶어진단다. 네 마음속에 우울감이 있더라도 거기에 먹이를 주면서 반응하지 말고, 마음속에 있는 긍정적인 것들로 시선을 돌려봐. 그게 부담을 피하지 않는 방법이야.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훈련하면 된단다.”

나는 마음속에 있는 검은 늑대와 하얀 늑대를 다시 그려 보이며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그 늑대가 마음을 차지해 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앞으로 이런 마음이 또 생길 때 그 생각을 따라 가지 말고, 너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밝은 생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두운 생각에서 밝은 쪽으로 마음을 이끌어 주니 대화를 마치기도 전에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마음은 어려움을 하나씩 넘어갈수록 이전보다 강해지는 속성이 있다. 아이와 함께 대화하며 용기를 주고, 난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 마음에 면역력을 키워주는 길이었다. 잠시 후, 나는 물었다.

“내일 병원에 같이 가서 약물처방을 받을까?”

“아뇨.”라고 하면서 아들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며칠 동안 속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아무것도 아니었네.’라고 깨닫는 표정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크게 확대시켜서 약물로 해결하려 했던 아들은 그런 생각에서 한 번 벗어난 뒤로 이전보다 한 단계 성숙해진 듯 보였다.

우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아들에게 내가 해주었던 이야기는, 마음의 생김새와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또 우울함이 밀려 올 때 그 생각에 손을 들어주면 약물 해결로 가는 길에 쉽게 빠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후로 우리 아들은 우울감에 잘 빠지지 않고, 설령 빠졌더라도 금방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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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먹구름이 가득했던 어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들은 활기찬 모습으로 등교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도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늘 생기는 일상적인 불편들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을 자주 점검한다. 그리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잘 관리해주면서 깊이 사고하는 법도 배우고 훈련하고 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도 부족한 엄마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무언가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아들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터득한 마음관리법을 친구들에게 알려주며 학교생활을 씩씩하게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엄마로서 정말 행복하다.

우리 머릿속에는 하루에 5만여 가지의 생각이 지나간다고 한다. 그중에서 선택 된 몇 개는 둥지를 틀고 우리 마음과 행동을 좌지우지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결정이 어렵거나 마음이 힘든 상황이 생기면 약물에 의존하기보다 주변에 믿을 만한 심리상담가를 만나 대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면 내 기준과 내 경험에 맞지 않는 상황을 만나도 상처받지 않고 지나칠 수 있게 되며, 긍정적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강한 마음이 형성될 수 있다.

글쓴이 노순미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중앙항업(주) 기획실, 농어촌공사 조사설계처를 거쳐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술경영융합대학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2020년 교육부 혁신행정업무 유공자, 노원구 평생학습 증진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이외에 별내 ‘시월에 독서모임’ 대표로, 지역사회에서 강연과 토론회를 펼치고 있다 이런 재능기부 활동은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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