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사업으로 동남아 진출 준비하는 청년 사업가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저는 부산에서 경상대학교를 다니다가 학생 때 자영업을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치킨 사업은 원래 하던 호텔 관련 사업과 인테리어 사업 후에 세 번째로 운영하는 거예요. 벌써 4년째네요. 최근에는 자본금도 축적이 됐고요. 가게 운영과 매출도 안정적이어서 얼마 전에는 근처에 있는 스시집을 하나 더 인수했어요. 또 제 적성이 치킨 사업 쪽에 맞는 것 같아서 외식업 회사를 꾸려 미얀마로 진출하려고요. 요즘은 현지에 맞는 메뉴를 개발, 테스트하며 새로운 매장을 꾸리는 중이에요. 치킨과 튀김 파우더를 공급 받는 일, 포장지 디자인과 마케팅등을 진행하면서 현지 탐방을 가기도 해요.

원래 꿈이 사업가이셨나요? 학창 시절이 궁금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생까지 양궁을 했어요. 거기서 만난 학교 선배의 소개로 대학생 때 댄스팀에 들어갔어요. 사업은 도전의 연속이잖아요. 저는 그곳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보여줄 공연을 매번 새롭게 준비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 자신을 절제하며 매번 새로운 안무를 만들어내며 팀과 호흡을 같이 해야 했어요. 때로는 멤버 간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면서 내 잘못이 아닌데도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저는 남들보다 빨리빨리 성공해서 자리를 잡고,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강하고 성격도 급해요. 그런데 분위기상 눈앞에 보이는 일을 바로 풀려 하기 보다는 제 일을 묵묵히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기회가 될 때 다들 모여서 서로 마음을 토로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이디어나 경험을 공유하는 습관도 생겼고요. 이런 생활을 오래 하며 각종 댄스대회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수상한 저는 이젠 새로운 일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2010 천안 흥타령 춤 축제에서 전통을 살린 ‘춘향전’을 추어 대상을 수상한 모습. 당시 그는 이몽룡 역을 맡았다.
2010 천안 흥타령 춤 축제에서 전통을 살린 ‘춘향전’을 추어 대상을 수상한 모습. 당시 그는 이몽룡 역을 맡았다.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도 해봤는데 ‘같은 공간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과 한정적인 업무를 하는 것보다는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도 자영업을 하는 게 나에게 잘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영업을 하면 망하는 사람이 90%’라며 우려 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안정이 될 때까지 ‘망하면 다시 일어서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메이저 치킨 브랜드를 다루지만, 이 안에서도 매년 10개 이상의 새로운 메뉴가 나오고 그중 9개 정도는 시장에서 외면을 당해 사라져요. 대기업도 10개를 던져 1개를 건지는 마인드로 일하는데, 저 같은 개인에게는 100개 이상을 던져야 1개를 얻는다는 도전정신이 필요하죠. ‘딱 한 번의 성공을 위해서 99개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도전해야 하는 거예요.

약속으로 말미암은 비전, 댄스팀 활동으로 몸에 밴 도전정신, 운동으로 다져진 깡. 올해 서른다섯 살인 장윤성 씨는 이를 원동력으로 꿈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약속으로 말미암은 비전, 댄스팀 활동으로 몸에 밴 도전정신, 운동으로 다져진 깡. 올해 서른다섯 살인 장윤성 씨는 이를 원동력으로 꿈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치킨 매장과 스시 음식점이 있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치킨 매장과 스시 음식점이 있다.

외식업체 대표가 된 것은 원래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셨기 때문인가요?

‘퇴사하고 치킨집 차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치킨집은 외식업 중에서도 정식 조리사가 아닌 사람들이 진입하기에 가장 장벽이 낮은 사업이죠. 그래서 조리사 자격증이 없는 제가 이 일을 시작 했고요. 실제로 짐킴홀딩스의 대표이자 ‘스노우폭스’라는 외식 프랜차이즈 회사의 총책임자이신 김승호 회장님도 처음엔 ‘펠리체’라는 브랜드로 성공을 하셨어요. 다행히 제가 했던 사업 중에서 치킨집이 저와 잘 맞아요.

요즈음 tvN의 ‘장사천재 백사장’과 JTBC의 ‘한국인의 식판’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지요. 백종원 씨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그랬어요. 가령 메뉴 개발을 할 때에도 모든 맛에서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요. 본인한테 맛있게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맛을 보라고 한대요.

미얀마에 출시 계획 중인 치킨 메뉴들. 그가 며칠씩 철야를 해가며 매장 뒤편 사무실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맛깔스런 신제품들이다.
미얀마에 출시 계획 중인 치킨 메뉴들. 그가 며칠씩 철야를 해가며 매장 뒤편 사무실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맛깔스런 신제품들이다.

그러면 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싱겁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말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주변 여러 지인들의 ‘된다’, ‘안된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고 일단 시장에 내놓아요. 소위 ‘카더라 통신’에 동요하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잠식할 걸 아는 거지요. 그런 다음에 시장에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수정을 하는 거예요. 그분의 이런 대범한 마음가짐이 무척 부러웠어요.

한편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님도 존경스러운 분으로 제 마음에 새겼져 있어요. 1분, 1초를 아끼고 동분서주하면서 안되는 걸 되게 만든 분이죠. 온 몸과 정신을 몰입해서 성과를 이루어낸 걸 보면, 저는 이제 맛보기를 조금 하는 정도죠.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을 보면 정말 따르고 싶어요.

일찍 사업을 시작해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요. 장윤성 님에게 약속은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일했어요. 첫 달에는 매출이 반의 반토막이 나더라고요. 치킨만 튀길 줄 알았지, 사이트 관리, 메뉴 관리, 주문 접수, 조리와 서비스, 마케팅, 배달까지 운영 전반에 서툴렀던 거지요. 그런 것까지는 누가 가르쳐 줘도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라서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거든요. 최선을 다해도 하나 처리하면 다른 하나가 또 터지는 식으로 문제가 계속 일어나더라고요. 공포감이 밀려와서 아침에 가게를 오픈하는 게 무서울 정도였어요.(웃음)

지금 장사가 잘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서 치킨 주문도 하루에 저희 매장의 한계는 80마리인데 150마리가 주문이 들어오면, 같이 일하는 종업원은 사장과 다르게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어하거든요. 잘되도 힘들고 안되도 힘든 게 자영업이에요.

눈앞이 깜깜하도록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제 주변을 바라보기보다 제 마음에서 제 자신과 했던 약속들을 바라봐요. 그리고 그걸 마음에 품고 살면서 힘을 얻어요. 맞아요, 제가 세상을 견디고 이겨내는 원천이에요. 지금까지 몸은 일터 속에서 온종일 살지만 마음은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그리면서 살았어요.

원래는 먹고사는 것에만 집중을 했는데 저도 그 과정을 겪고 뛰어넘고 나니까, 자금 문제나 사람 문제가 또 들이닥치더라고요. 그런 게 또 자연스레 해결되는 걸 보면서 제 한계를 넘어가게 되었어요. 지금은 사업 초기 때보다는 제 마음의 그릇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렇게 작은 성공들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생겨서 더 큰 일들을 바라보게 된 거예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숱하게 펼쳐질 테지만 지금껏 해온 것처럼 실패를 거듭해도 제 마음속의 비전을 계속 바라보면서 살려고 해요.

국적은 다르지만 얼굴이 남매처럼 닮은 부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의 돌잔치를 지난달에 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얼굴이 남매처럼 닮은 부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의 돌잔치를 지난달에 했다.

다문화 가정이라고 들었어요. 아내분하고는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상황이 다 해결됐지만, 같이 사업을 시작한 동업자와 자금적으로 문제가 있었어요. 그분은 “무리한 대출을 해서라도 먼저 사업을 시작한 뒤, 여기서 나오는 수입과 따로 또 만들고 있는 수익을 합해 빨리 대출금을 상환해 가자.”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분의 재무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저 혼자 모든 채무를 떠안게 됐어요.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그 말만 믿고 제 명의로 대출을 1억 가까이 빌려서 다달이 700만원을 상환해야 했어요. 매달 나오는 수입은 최대 600만 원 정도인데 말이죠. 신용불량자가 될 뻔했어요. ‘내가 사업을 한답시고 건드리는 것마다 모두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한때 우울했어요.

지금도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통 매장 운영과 사업 구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걸 좋아해서 짬짬이 연마한 기술로 스시 요리사라는 직업도 추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통 매장 운영과 사업 구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걸 좋아해서 짬짬이 연마한 기술로 스시 요리사라는 직업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준비하는 데 큰돈이 들잖아요. 상식적으로 그런 빚쟁이 주제에 결혼을 하면 신부에게 미안하잖아요. 제가 대학생 때 미얀마에 가서 지낼 기회가 있었어요. 울적한 마음이 드니까 그곳에서의 추억이 생각났어요.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미얀마 지인에게 앱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당시 미얀마가 쿠데타로 국가비상사태였는데 다행히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회답이 왔어요. 제 안부를 물어보면서 지나가는 말로 ‘내가 아는 좋은 미얀마 아가씨가 있는데 소개해 줘도 되냐?’고 물으셨어요. ‘나 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어떤 아가씨라도 이런 나를 받아준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번에 좋다고 했어요. 그분이 놀라면서 ‘진심이냐?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셨지만 저는 미얀마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고,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잘 알아서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어요.

이전에도 연애를 몇 번 해봤지만, 아내는 제게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사람이에요. 이 사람과 결혼 후에 저는 모든 일들이 잘 풀렸거든요. 결혼식을 치르라고 경제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 후 대출이자도 낮춰지고 월 상환액도 조절하게 되면서 숨통도 트였죠. 나중에는 대출금도 모두 상환했어요. 동업자 없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어요.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고요.(웃음) 흔히들 한국으로 시집온 동남아 여성들은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직 한국에 대해 적응이 안 됐을 때 이야기지요.(웃음) 한국의 경쟁 구조에 익숙해지다 보면 동남아 사람들도 점점 성격이 억세져요. 제 아내도 그래요. 제가 전형적인 부산 상남자에 성격이 다소 과격하거든요. 아내 역시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어서 제 모난 부분에 맞서기도 하고, 하지만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남편을 섬겨주어서 고마워요. 동남아로 진출하려는 것도 이런 아내와 지인들이 계기가 된 것이지요.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세요?

K 드라마에 나오는 치킨과 맥주 문화가 간식으로 알려지며 한국은 전 세계에 치킨 종주국이 되었어요. 저는 이 메뉴를 기반으로 간장치킨, 양념치킨, 치즈맛 치킨 등 다양하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오뚜기’ 같은 식품회사를 차려서 그 재료들의 원재료를 판매하고 싶어요. 부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짧은 인생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에요. 한 번씩 치킨 창업자 아카데미 전문코스 등을 개설하는 것도 머릿속에 떠올려요.(웃음)

약속은 서로 간의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의 힘이자 믿음의 끈이 되어 시련이 와도 인내로 견딜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믿음의 결실을 보게 되면 더 큰 영역으로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딛는다. 장윤성 씨도 그렇게 세상을 이겨가는 법을 체득한 듯했다.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 나이지만, 그에게 가정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가장의 풍모가 물씬 풍김을 느꼈다. 그의 도전정신 가득한 행보로 인해 동남아시아인들이 양념치킨과 프라이드 치킨을 즐기는 모습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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