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연필’이라고 대답한 소년
-24살의 나이에 ‘약속의 연필’을 설립해 학교 짓기 프로젝트 실행해
-‘약속’을 캠페인화하고 ‘약속’의 연쇄작용을 즐겨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의 책 표지를 보며 나에게 ‘연필’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떠올려봤다. 학창 시절,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이라고 추천되던 일명 깜지를 써내느라 항상 내 손은 연필 흑연의 새까만 때로 가득했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즐겨하지도 못했던 애증의 연필. 해방되고 싶은 공부라는 사슬, 학생의 신분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지루하고 부담스런 일상의 한 상징이었던 연필.

하지만 ‘연필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책의 저자 애덤 브라운은 말하고 있었다. 넉넉하여 절실함이 없는 자에게 싱거운 것으로 여겨지는 연필 한 자루는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전 세계 5800만 명의 어린이에게는 무한 잠재력의 거인 ‘지니’를 깨우는 요술램프와도 같았다.

“온 세상에서 제일 갖고 싶은 게 무엇이니?”

돈 잘 버는 금융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던 애덤 브라운은 브라운대학교에 입학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의 정석을 밟던 중, 선상 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배낭 하나 메고 세계 곳곳을 누빌 기회를 얻는다. 애덤은 여행하는 나라의 한 아이씩 붙잡고, “온 세상을 통틀어서 뭐든 가질 수 있다면 뭘 제일 갖고 싶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춤추는 것’, ‘책’, ‘마법’, ‘엄마의 건강’ 등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대답이 쏟아졌다. 동남아시아를 돌고 갠지스 강이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를 찾았을 때,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한 남자 아이에게도 역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온 세상을 통틀어서 뭐든 가질 수 있다면 제일 갖고 싶은 게 무엇이니?”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딱 잘라서 대답했다.

“연필이요.”

비영리단체 '약속의 연필'이 세운 학교의 아이들이 선물 받은 연필을 자랑스럽게 치켜들었다. 연필은 가능성을 약속했다.(사진 북하우스)

연필? 정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아이 입에서 의외의 것이 나오자 믿기지 않았다.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는 소년은 연필을 잡고 글을 쓰는 한 친구가 마냥 부러웠다고 한다. 애덤이 연필 한 자루를 건네자, 소년의 얼굴이 눈부시게 빛났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필을 쳐다보는 그 간절하고 빛나는 눈빛이 애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고작 연필 한 자루 달라고 손을 내밀고 서 있는 아이’에게 연필은 흔하디 흔한 필기도구가 아니다. ‘가능성으로 향하는 문’이다. 생각해 보면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연필 한 자루에서 시작했으며 연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세계를 탐구하고 맛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애덤은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지구의 그늘진 곳, 가난이 일상인 수많은 아이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자라날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한다.

배낭여행 후, 애덤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회사에 들어가지만 그의 마음속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 손에 연필을 쥐어 주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딱 하나 만들자’는 열망이 커져갔다. 이 무언無言의 ‘약속’을 잊지 못하고 24살의 애덤은 단돈 25달러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게 된다.

단체의 이름은 ‘약속의 연필’이라고 지었다. ‘연필’ 안에 애덤의 열망뿐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의 가능성, 미래, 꿈을 ‘약속’으로 연결지었다. 세계 최고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베인 앤드 컴퍼니도 그만두고, 전 세계 곳곳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애덤은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인 2014년, 전 세계 221개의 학교에서 2만 8310명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장본인이 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약속의 연필’은 유엔에서 주최한 ‘2014년 올해의 교육기관상’을 수상했고 2023년 현재, ‘약속의 연필’은 589개의 학교에서 13만 1127명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이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굉장히 중요했다. 사진 왼쪽이 애덤 브라운이다.(사진 북하우스)

안정과 모험 사이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애덤 브라운이 ‘약속’을 지키기까지 안정과 모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갈등했는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첫 입사한 베인 앤드 컴퍼니는 거액의 연봉, 멋진 아파트, 파티 등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꿈꿀 수 있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텅 비고 비참하기만 한 이상한 감정과 마주했다. 배낭여행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 그가 택한 것은 타협안, ‘부업’이다.

사외 연수제도*(사외 연수제도 : 본인이 선택한 다른 회사에서 6개월 동안 근무하고 본사로 복귀할 수 있는 안전장치.)기간에 단체를 하나 설립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린 뒤 다시 베인 앤드 컴퍼니로 복귀해 부업으로 계속 운영한다! 6개월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만 모험을 시도하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무모하지는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는 나란 사람은 그래서 가슴 뛰는 세계를 잘 못 만나지 싶다.)

하지만 ‘왜 평범하게 살려 하는가why be normal’라는 브라운 집안의 신조가 애덤을 가만두지 않았다. ‘약속의 연필’을 설립해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제1호 학교를 세웠더니 이게 웬걸? 아이들 손에 연필을 쥐어주고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약속의 가치, 이것을 지켜내는 사명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파면 팔수록 그 ‘희미한 가능성의 빛’이 자신의 ‘꿈’이 되는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린다. ‘약속의 연필’과 베인의 병행이 쉽지 않아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깊은 시간이었다.

결국 이렇게 살았노라고 가장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약속의 연필’임을 깨닫게 된 애덤은 본격적으로 이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흔들림 없는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닌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지극히 보통 사람 애덤의 이야기는 똑같이 평범한 우리도 모험을 감행하여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가졌노라고 용기를 불어주는 것 같았다.

'약속의 연필'과 함께해 준 애덤의 친구들과 아이들이 어우러져 사진을 찍었다. 그중 눈에 띄는 인물은 세계적인 팝스타인 저스틴 비버. 그도 이 단체의 설립 취지에 매료되어 약속 캠페인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사진 bnrmagazine)

교육은 가능성을 약속한다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은 많고 많은데 왜 애덤은 유독 ‘교육’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애덤의 친조부가 겪은 생생한 이야기와 관련있다. 그의 친할머니 에바와 할아버지 요셉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사람은 할머니 삼촌의 주선으로 만나 결혼했고, 몇 년 후 헝가리 혁명이 터지자 가족을 이끌고 몰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첫날밤을 유대인 난민 수용소에서 보낸 그들은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브루클린에서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얻어 치과 기공사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자식을 교육시켰고 아이들과 미래의 손자들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애덤이 보기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집안 사람들이 상실의 아픔을 딛고 살아남아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의지, 타인의 도움 그리고 ‘교육에 대한 강한 집념’ 때문이었다. 교육이 약속하는 가능성의 힘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아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훌륭한 ‘브라운 집안’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또 다른 상실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소외된 이웃이 강한 의지와 타인의 도움, 교육의 힘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의 원천이 되었다. 그 결과가 ‘약속의 연필’이다. 애덤은 ‘약속의 연필’이 세운 한 학교를 에바에게 바치는데 할머니가 역경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덕분에 애덤의 인생이 좋은 쪽으로 올 수 있었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해도, 학교가 있고 지식을 쌓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소망이 있다면 그 아이는 결코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성이다. 시대를 이끌어나갔던 사람들의 행보는 이런 가능성 위에서 이루어졌다. 교육은 그 가능성을 약속한다.

의외로 ‘가치 있는 약속’에 열광하는 사람은 많다. 약속을 캠페인화하라

애덤이 한 일 중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가치 있는 약속’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해 ‘약속을 캠페인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재능 있는 주변사람을 찾아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열정을 다해서 강조했다. 이 유능한 사람들의 마음에 경제적인 성공의 욕심도 있지만 뭔가 가치 있는 일에 영혼을 내어 주고 싶은 욕구가 숨겨 있는 걸 간파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약속 프로젝트의 가치를 알아본 그들은 의욕적으로 재능 기부를 했다. ‘약속의 연필’은 홍보, 디자인, 영상, SNS, 재무, 홈페이지 제작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가치 있는 약속에 매료된 자들이 함께해 주었다.

또 애덤은 약속을 ‘캠페인화’했다. 학교를 짓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인과 단체의 모금 활동이 필수적이다. 대기업의 CEO, 재력 있는 사업가뿐 아니라 개인의 열성적인 후원이 필요했다. 애덤은 수많은 강연과 전략적인 SNS 홍보를 통해 누구나 ‘약속의 연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설득했다. ‘약속의 연필’ 홈페이지에 가보면 “여러분의 캠페인 목표를 설정하고 여러분이 왜 교육에 열정적인지 세상에 알리세요.”라는 문구가 우리를 반긴다. 그중 하나가 ‘생일을 기부하라’는 캠페인이다. 소개 글은 이렇다.

“올해, 여러분의 특별한 날은 두 배의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교육을 지원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념하세요. 단돈 75달러로 학생 한 명이 1년 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일 촛불을 불면서, 여러분은 또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약속과 꿈을 열 수 있습니다.”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저자 애덤 브라운은 유엔에서 주최한 ‘2014 올해 의 교육기관상’을 수상한 비영리단체 ‘약속의 연필’ 설립자이자 CEO. 그는《포브스》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30대 이하 30인’,《와이어드》가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50인’,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10대 글로벌 리더로 꼽혔으며 백악관과 유엔, 클린턴 재단에서 특별 강연회도 개최했다.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저자 애덤 브라운은 유엔에서 주최한 ‘2014 올해 의 교육기관상’을 수상한 비영리단체 ‘약속의 연필’ 설립자이자 CEO. 그는《포브스》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30대 이하 30인’,《와이어드》가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50인’,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10대 글로벌 리더로 꼽혔으며 백악관과 유엔, 클린턴 재단에서 특별 강연회도 개최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비교적 후원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들도 자신의 생일이나 성인식 때 선물 대신 기부금을 달라고 해서 후원금을 내는 사례가 굉장히 늘어났다고 한다.

약속을 캠페인화하는 것은 한 고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콜로라도에 사는 열일곱 살의 케네디 도넬리는 후원금을 모집하려고 부모님과 함께 자전거로 전미 일주에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약속의 연필’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감동을 받아서 6,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미국 땅 횡단으로 1만 달러의 성금을 모아 교실을 하나 지을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학교 동아리 결성하기 캠페인(우리나라의 학교에도 ‘약속의 연필’ 동아리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부터 마라톤·경주 등 피트니스 챌린지에 이르기까지 ‘약속의 연필이 일상의 중심이 된 사람들’을 늘려나갔다. 그렇게 해서 ‘약속의 연필’은 단기간 안에 놀랍게 성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판매된 햄버거 값이 아프리카 가나의 일 년 교육비보다 55,000배 정도 많았다. 이 사실을 알려서 저개발국가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 결코 큰 비용이 들지 않고 가치 있음을 '약속의 연필' 캠페인이 보여주었다.
2012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판매된 햄버거 값이 아프리카 가나의 일 년 교육비보다 55,000배 정도 많았다. 이 사실을 알려서 저개발국가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이 결코 큰 비용이 들지 않고 가치 있음을 '약속의 연필' 캠페인이 보여주었다.
난민을 위한 기부에 관심 많은 안젤리나 졸리도 캠페인에 함께했다.
난민을 위한 기부에 관심 많은 안젤리나 졸리도 캠페인에 함께했다.
영국에 설치된 연필 모금함 캠페인(사진 네이버 블로그 kimsk1997)
영국에 설치된 연필 모금함 캠페인(사진 네이버 블로그 kimsk1997)

작은 것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약속의 연쇄작용을 즐겨라

무엇보다 모든 일은 굉장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애덤은 처음엔 아이들 손에 연필을 쥐어주고 싶다는 작은 약속, 소원을 품었다. 여행할 때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로 연필을 나눠주기도 한 이 약속이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딱 하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작은 약속이 또 다른 약속을 만들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서 나중에는 600곳에 가까운 학교를 설립하는 연쇄작용을 낳았다. 약속 안에는 ‘전염성 강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알고 보면 다 약속이다. 작은 약속부터 해 보면 정말 설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은 또 다른 애덤 브라운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그 약속을 이루게 되었는지 들려줄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거창하거나 원대한 무엇인가 아닐지라도 사소한 보통의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작은 약속에서 빛깔과 향기를 지닌 가슴 뛰는 세계가 피어날 것이다. 그러니 약속의 연쇄작용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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