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린 강태공
낚시에 숨겨진 심오한 이치
뛰어난 모략을 가진 강태공과 인재를 등용한 문왕

주周나라 문왕(기원전 1152~1056년)은 성이 희姬요, 이름은 창昌이다. 둘째 아들 희발姬發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군주가 되고 난 뒤, 아버지를 문왕文王으로 추숭하였다.* (추숭追崇 :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족이나 왕의 조상에게 사후에 왕의 지위를 주는 것. 나라를 새로 세운 경우, 왕은 위로 4대를 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법이었다.)

일명 ‘서백창西伯昌’이라고도 불리는 문왕은 중국 역사상 첫 번째 명군明君으로 평가받는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대周代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공자가 말한 ‘주대’가 바로 ‘주 문왕의 시대’이다. 주 문왕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중히 여겼고 현자賢者를 정중히 대접하는 등 어진 정치를 펼쳤다. 그러다 보니 인재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며, 이웃 제후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그에게 와서 판결을 구하곤 했다.

태평성대의 이상국가로 불리던 중국의 주周나라(사진 위키피디아)
태평성대의 이상국가로 불리던 중국의 주周나라(사진 위키피디아)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린 강태공

‘서백창’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주나라 건국의 기초를 만든 강태공이다. 서백창과 강태공이 처음 만날 당시, 은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애첩에게 빠져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간신의 말만 들으며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어느 날 서백창이 사냥을 나가려고 하자, 사관이 귀갑龜甲으로 점을 쳐보았다.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가?”

사관이 대답했다.

“저의 조상인 사관 주가 우임금을 위하여 점을 쳐서 명재상인 고요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점괘는 그에 견줄 만합니다. 이번 사냥에서 얻게 될 것은 용도 곰도 호랑이도 아닌, 패왕霸王(춘추전국 시대에 황제라는 뜻으로 쓰인 호칭)을 보필할 신하입니다. 장차 임금에 버금가는 위치에 오르거나 제후가 될 그런 인재이지요. 이는 하늘에서 폐하께 스승을 보내시어 국사를 보좌토록 하신 것이니, 이 나라를 3대에 걸쳐 돕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인재를 얻게 될 것이라는 사관의 말에 서백창은 내심 기뻤다. 그는 사흘 동안 목욕재계를 한 뒤 사냥용 수레와 말을 타고 위수의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날따라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발길을 돌리려던 차에, 나이 일흔이 넘은 한 노인이 오고가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강가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을 발견한 순간, 서백창은 첫눈에 그가 비범한 사람인 것을 직감했다. 이 노인이 바로 강태공이었는데, 그는 서백창을 만나기까지 10년 동안 위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명군으로, 후세 유가로부터 성천자聖天子로 숭앙 받은 문왕.(사진 위키피디아)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명군으로, 후세 유가로부터 성천자聖天子로 숭앙 받은 문왕.(사진 위키피디아)

하지만 강태공은 낚시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낚시 바늘은 굽은 것이 아니라 일자였다고 한다.

서백창이 가까이 가서 물었다.

“낚시를 즐기시는가 보군요.”

노인이 대답했다.

“예, 나는 물고기를 낚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먹이로 물고기를 낚는 것은 녹봉을 주어 인재를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군자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됨을 즐거워하고, 소인은 눈앞의 일이 이루어짐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낚시질하는 것은 그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근원이 깊어야 강물이 흐르고, 물이 흘러야 물고기가 생기지요.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잘 자라며, 나무가 우거져야 열매가 잘 열리지요. 낚싯줄이 가늘고 먹이가 작으면 잔고기가 이를 먹고, 낚싯 줄이 약간 굵고 먹이가 향기로우면 중치의 고기가 이를 먹으며, 낚싯줄이 굵고 먹이가 풍성하면 큰 고기가 이를 먹습니다. 좋은 먹이를 주면 크고 살찐 고기가 잡히는 것과 같이, 녹봉祿俸으로 천하의 훌륭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 임금에게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동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강태공의 이미지는 주로 긴 낚시대를 드리운 노옹 老翁의 모습이다.(사진 대한은퇴자협회)
동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강태공의 이미지는 주로 긴 낚시대를 드리운 노옹 老翁의 모습이다.(사진 대한은퇴자협회)

낚시에는 세 가지의 심오한 이치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미끼로 고기를 낚는 것인데, 이는 녹祿을 주어 필요한 인재를 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두 번째는 좋은 미끼가 큰 고기를 낚듯이, 인재에게 녹을 많이 줘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런 신하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는 크기와 종류에 따라 요리법이 다른데, 이는 인재의 성품과 됨됨이에 따라 벼슬을 달리 맡기는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겉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모였다가도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군주가 덕이 있으면 반드시 멀리까지 비칠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덕이란 보통 사람은 가늠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그윽한 것이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저절로 모여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여든 인재를 소홀히 대하면 곧 떠나버릴 겁니다.”

“어떻게 하면 천하 만백성의 민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만민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익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군주는 천하를 얻을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자는 반드시 천하를 잃게 됩니다. 하늘에는 춘하추동 네 계절이 있어 음과 양이 순환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지에는 생산이 이루어져 재물과 보화가 있게 됩니다. 이 하늘의 시時와 땅의 재財를 백성들과 함께 누리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인仁이 있는 곳에 모이게 마련인지라 어진 사람이 정치를 하면 그 덕이 저절로 나타나 어렵지 않게 천하의 민심도 얻을 것입니다.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건져주고,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며, 위급한 사람을 구제해주는 것은 덕德입니다. 천하 인심은 덕이 있는 곳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뭇사람들과 시름을 같이 하고, 뭇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꺼리면 이것은 의義입니다. 천하의 인심은 의가 있는 곳으로 쏠리게 됩니다. 본래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하며, 덕을 좋아하고 이득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며 그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데 힘쓰는 것을 도道라고 합니다. 천하의 인심은 도가 있는 곳으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노인의 말을 다 듣고 난 서백창은 기뻐하며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조부께서 ‘한 성인聖人이 나타나 주나라를 융성하게 이끌어 갈 것이다. 주나라는 이로 인해 흥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실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야말로 그 성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어찌 하늘이 내리신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삼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며 노인을 수레에 태워 궁으로 돌아와 스승으로 모셨다.

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

문왕 서백창이 위수에서 만난 이 노인은 문왕의 조부인 태공이 꿈에서 기다리던 인물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했으며, 그의 성이 강씨였기에 후세에 ‘강태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강태공은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정승을 겸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강태공은 탁월한 지혜로 문왕에게 뛰어난 모략과 부국강병책을 제시하여 은나라 제후들이 주나라를 따르게 하고,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건국에 절대적 공을 세운다.

그러나 문왕이 그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전쟁 중에 죽자 둘째 아들 희발이 왕위를 계승하여 무왕에 올랐고, 강태공을 역시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강태공은 정치를 개선하고 풍속을 존중하며 예법을 간소화하는 등 백성을 위하여 올바른 정치를 펴나 갔으며 어업 외에 제염업 등 상공업을 진작하고 수산을 장려함으로써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또한 강태공은 병법과 군사의 시조로 볼 만하다. 역대 황제들은 강태공을 무성武聖으로 봉하였고, 당나라 때에는 무성왕武聖王으로, 송나라 때에는 조열무성왕照烈 武聖王에 봉했다. 그는 부국강병을 도모할 방법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책에 집약돼 있다. 이 책은 최초의 병서兵書로서 후대의 전략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후대의 손자, 오자 등 중국의 제가諸家가 만든 병법도《육도삼략》을 기초로 한다. 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다는 변치 않는 사실을 강태공의 행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병서로 손꼽힌다.(사진 yes24)
중국의 대표적인 병서로 손꼽힌다.(사진 yes24)

이 시대에 필요한 강태공과 문왕

생전에 강태공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해와 달이 아무리 밝더라도 엎어 놓은 항아리의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며, 뜻밖의 재앙도 조심하는 집 문안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현명한 지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눈은 밝아야 하고, 귀는 총명해야 하며, 마음은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가 보통 사람과 같으면 국사國師가 아니다. 장수가 지혜롭지 못하면 군대 전체가 의심한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으면 살고, 물을 벗어나면 죽고 만다. 그러므로 성인과 군자는 언제나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자연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의 말에 비추어 오늘날의 정치인들을 보면 철학도 소신도 없고, 민생이나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얄팍한 처세술과 공명심에 빠져 나라꼴이 어찌 되든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이 어지러운 시대에 강태공처럼 남다른 통찰력과 혜안을 가진 인재가 나타날 수 있을까? 또한 그 뛰어난 인재를 낚아 백성들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성인이 나타날 것인가? 강태공도 지혜와 덕이 뛰어났지만,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던 문왕의 겸손과 도량,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무왕의 마인드는 이 시대 지도자들과 경영자들이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이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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