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사고에 관하여

강연 시작에 앞서 싱가포르의 한 호텔을 소개하려 합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인데요.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로 세 개의 빌딩 위에 큰 배가 올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특이한 외관만큼 건축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계 굴지의 건설 기업들도 이 호텔의 건축 시공 입찰을 포기할 정도였죠.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경.(사진 프리픽)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경.(사진 프리픽)

그렇다면 이 건물을 누가 지었을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기업인데요. 흔히 잘 알려진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아닌 ‘쌍용건설’입니다. 이 기업은 국내 시장보다 해외로 눈을 돌려 세계 고급 건축 시장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있는데요. 여러분들도 이 강연을 듣고 한국만 바라보지 않고, 세계로 눈을 돌려 크게 그리고 넓게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내 시야를 넓힐 것인가?’ ‘넓어진 시야만큼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노벨상’을 알 겁니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시작되었고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의학, 평화, 경제학 총 여섯 부문에 대해 시상이 이루어집니다. 그 중 경제학 분야 시상은 1969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경제학 분야는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상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과학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으면서 노벨 경제학상으로 편입되었고, 경제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으로 인류의 복지에 공헌하는 학자에게 수여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도에는 노벨 경제학상이 빈곤 퇴치 연구에 기여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 마이클 크레이머 세 사람에게 주어졌는데요. 약 30년 전, 이들이 인도의 한 빈민촌에서 실시했던 ‘예방접종과 렌즈콩 실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렌즈콩 실험’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작은 가치를 미래의 큰 가치보다 더 크게 보는 성향이 있음을 발견한다.(사진 노벨상 공식홈페이지)
‘예방접종과 렌즈콩 실험’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작은 가치를 미래의 큰 가치보다 더 크게 보는 성향이 있음을 발견한다.(사진 노벨상 공식홈페이지)

우리는 근시안적 사고를 하고 산다

사례1. 예방접종과 렌즈콩 실험 인도 빈민촌에서는 어린이 백신 접종률이 매우 낮습니다. 정부와 구호 단체가 충분한 양의 백신을 무료로 공급하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팀은 빈곤 지역을 선정한 뒤 세 개의 그룹으로 다시 나눴습니다. 한 그룹은 기존의 방식대로 부모들이 자녀를 직접 클리닉에 데리고 와서 접종하도록 했고요. 또 다른 그룹은 이동식 클리닉, 즉 백신 접종 차량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접종을 독려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것이 세 번째 그룹인데요. 이동식 클리닉을 유지하면서, 백신을 맞는 사람들에게 렌즈콩 한 봉지를 주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기존에는 어린이 백신 접종률이 6%이었는데, 이동식 클리닉을 운영했을 때 접종률이 18%로 증가했고, 렌즈콩 증정 이벤트를 하니까 접종률이 39%까지 올라갔습니다. 접종률이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이죠.

콩 한 봉지라는 인센티브로 실질적인 빈곤퇴치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노벨상 수상의 핵심적인 이유였는데요.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 바로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미래의 건강을 보장받는 것, 즉 미래에 대한 큰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렌즈콩 한 봉지는 작은 가치이죠. 하지만 지금 당장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가치를 저울질하는데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현재의 작은 가치가 아닌, 미래의 큰 가치를 보고 백신 접종을 결정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접종 시 렌즈콩 한 봉지를 줄 때 접종률이 두 배 이상 증가했죠. 많은 사람이 미래의 건강이 보장되는 큰 가치가 아닌, 현재의 작은 가치인 ‘렌즈콩’ 때문에 접종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현재의 ‘작은 가치’를 미래의 ‘큰 가치’보다 더 크게 봅니다. 근시안적 사고와 판단을 하기 때문이죠.

사례2. 흡연과 금연, 식단 결정의 오류 근시는 멀리 보지 못하고 가까운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근시안적 사고는 우리 삶 속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신체 관련 사례로 ‘흡연’을 들 수 있습니다. 흡연 시 당장에 얻을 수 있는 작은 가치가 분명히 있죠.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해요. 하지만 ‘금연’을 하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더 큰 미래의 가치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이 금연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큰 가치보다 현재 흡연이 주는 작은 가치가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음주를 쉽게 끊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있습니다. 1998년도에 경제학자 ‘리드’와 ‘반 리웬’이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초콜릿과 과일 중 지금 당장 디저트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고 선택권을 줍니다. 이때 실험 참가자의 70%가 초콜릿을, 30%는 과일을 택했다고 합니다. 과일은 비교적 미래의 건강을 지켜줄 음식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건강이라는 미래의 큰 가치를 버리고 초콜릿의 달콤함, 즉 현재의 작은 가치를 택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먹을 디저트가 아닌 다음 주 식단을 결정하라고 하자 74%의 사람들이 초콜릿이 아닌 과일을 택했습니다. 다음 주 식단을 결정하는 것은 초콜릿을 먹든 과일을 먹든 모두 미래의 일이죠. 즉 ‘현재’ 당장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없을 때, 그제야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례3 헬스장 멤버십의 오류 이런 연구도 있습니다. ‘델라비냐’와 ‘말멘디어’라는 경제학자가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헬스장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습니다. 플로리다 주에 있는 헬스장의 평균 한 달 멤버십 가격이 75달러라고 합니다. 한화로 약 10만 원 정도 되죠. 그런데 한 달 멤버십이 있는 사람의 평균 방문 횟수가 월 4회라고 합니다. 75달러를 냈으니, 결국 한 번 방문할 때마다 18.75달러를 지불한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멤버십 없이 헬스장을 1회 이용하는 가격이 평균 10달러라고 합니다. 만약 한 달에 4번 헬스장을 간다면 40달러만 내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월 75달러 멤버십을 선택해 낭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근시안적 판단을 한다는 것. 지금 좀 쉬고 싶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 즉 현재의 작은 가치 때문에 미래의 건강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은 나태할지라도 미래의 자신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리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달 헬스장 회원권을 결제할 때, ‘미래의 나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면서요.

하지만 경제학적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미래의 자신이 변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큰 착각에 불과합니다. 저 또한 헬스장 한 달 회원권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등록한 그날만 운동을 했습니다. 스스로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이런 데이터 결과를 보니 ‘자책할 필요는 없구나. 평균에서 약간 못 미칠 뿐이구나.’ 싶더군요.(웃음)

나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그림을 한 장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이라는 작품인데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내용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 장군이 귀향하는 이야기인데요. 집으로 가는 경로가 멀리 돌아가는 길이 있고, 빨리 도착하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름길에는 검은 요정들이 있지요. 바로 ‘세이렌’이라는 요정입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수많은 뱃사람을 유혹해 바다에 빠트리고 배가 난파되게 했습니다. 세이렌의 소리는 마치 현대의 마약과 같았습니다. 그 길을 지났던 많은 사람이 ‘나는 요정의 소리를 들어도 괜찮아.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 하고 착각을 했습니다. 근시안적 사고로 생기는 삶의 수많은 오류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또한 자만심에 기인합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1891년 그린 작품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사진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1891년 그린 작품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사진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길을 지나가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습니다. 자신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모두 봉인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자기 손과 발을 뱃머리에 묶었습니다. 그렇게 오디세우스의 지혜로 그들은 무사히 그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었죠.

저는 이런 분야의 실험이나 조사를 직접 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경제학자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국가의 세금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와 같은 정책적인 분야를 연구합니다. 제 연구에서는 오디세우스와 같은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근시안적으로 판단하기 쉽고, 굳은 의지만으로는 목표 달성에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제어해 줄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국가의 역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근시안의 오류에서 벗어날 방법은 이렇습니다. 오디세우스와 같은 리더와 함께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개인이 자기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근시안적 판단 오류를 제어할 방법을 고민하는 겁니다.

근시안적인 공부법을 사용하고 있다면

공부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암기Memorization, 두 번째는 사고Thinking입니다. 여러분 모두 특별히 열심히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집 주소를 기억하지요. 그것이 암기입니다. 암기란 건물을 지을 때의 ‘벽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에 사고라는 것은 그 벽돌 사이에 시멘트를 발라 벽돌을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암기와 사고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한데요.

사고하는 것은 암기할 때에 비해 당장의 큰 에너지가 쓰입니다. 더욱이, 사고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쓰면 미래에는 큰 성과가 나타나지만, 단기간 안에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진 않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현재 편향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요. 당장의 성과와 현재의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학습을 할 때 사고보다는 암기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은 암기 위주의 공부법이 매우 일반적입니다. 암기와 사고 이 두 가지 학습법을 50대 50 비율로 둬야 하는데, 우리는 오랫동안 암기와 사고의 비율을 99대 1로 두고 공부를 해왔습니다.

반면에 세계적인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유대인의 교육법은 반대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를 주제로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토론을 충분히 하는데 이때 선생님은 답을 알려주지 않고, 옆에서 간단한 코칭만 합니다.

유대인 교육은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면서 답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사진 EBS 방송 캡처)
유대인 교육은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면서 답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사진 EBS 방송 캡처)

답이 있는 문제를 주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은 ‘학습’이지만 유대인의 교육처럼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 가는 것은 ‘연구’입니다. 정통 유대교 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에 수학과 과학을 배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수학 공부를 시작하는데, 훨씬 더 깊게 이해해서 결국엔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은 민족입니다. 또한 다양한 K-Culture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기 바쁜, 근시안적 학습법으로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이 주류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실천을 해야겠죠? ‘사고하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사고력을 훈련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바로 ‘예습’입니다. 미리 학습하는 것. 예습은 구체적인 정보가 없기에 상상을 해야 하죠. 오늘 공부할 부분의 제목만 보고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라면 수업 시작 전 책상에 앉아서, 직장인이라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하면 됩니다. 단 1분 동안의 예습. 이것만 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공부할 때 답안지를 확인하기 전에 5초 동안 잠시 멈춰보세요. 처음에는 5초도 너무 길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5초 동안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생각해서 가능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사고훈련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해보세요. 생각의 범주가 높아지고 깊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그만큼 행복을 느끼는 강도도 확실히 커집니다.

* 최근 대학생 연합 워크숍에서 했던 특강입니다. 강사의 허락을 받아 지면으로 소개합니다.

강연자 강민욱

현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했으며,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거시금융, 재정, 경제이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특강을 열어 효율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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