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퇴근을 하면서, 한강공원에 내려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트렁크에 있던 운동화를 꺼내 신은 다음 무작정 반포대교에서 성수대교 방향으로 뛰었다.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때부터 꾸준히 조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 상태를 보기 위해서 5킬로미터를 몇 번 뛰었다가, 명절에 처가에 내려가서 새벽 바다를 보며 개운하게 뛰고 나니 8킬로미터가 나왔다. 이때부터 더도 덜도 아닌 8킬로미터를 틈틈이 뛰고 있다.

처음 2킬로미터. 나는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몸이 무겁다. 조깅을 한 지 10년이면 거기에 맞게 몸이 변형될 만도 하건만 뛸 때마다 부담스럽다. 가벼운 리듬과 표정으로 뛰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러겠지 하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내 기대는 스르르 무너진다. 몸은 땅속으로 꺼지려고 하고, 탄력을 받아 위로 튕겨 올라와야 할 다리는 쇳덩이가 달렸는지 도무지 내 생각처럼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그냥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걸 괜히 뛰기로 했다며 후회가 몰려오고, 여기에 최근 겪었던 짜증스러운 일들까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자리에서 바로 걷기 모드로 바꿔도 누가 뭐라고 할 리 없겠지만, 그러려니 내 맘이 편치 않다. 어쨌든 시작했으니 조금이라도 뛰어보기로 하고 결정을 늦춘다.

그 사이에 4킬로미터를 향해서 뛰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니 다리가 가벼워진다. 귀에 낀 블루투스 이어폰을 타고 조금 전까지 헉헉대는 숨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쭉 뻗어 있는 길과 그 옆에서 나란히 흐르고 있는 하천, 그리고 멀리 서 있는 산들이 보인다. 가장 기분이 좋은 구간이라 흠뻑 만끽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노래가 들려야 할 이어폰에서 전화 신호음이 들려온다. 아내다. “집에 프린트기 고장 났어요.” 분명히 조깅하고 온다고 말했건만 그새를 못 참고 전화를 했나 보다. 지금 시간이 밤 11시가 다 돼서 12시 안에 잠을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다리는 계속 앞을 향해 뛰어간다. 4킬로미터 정도면 도달하는 굴다리 밑의 늘 같은 장소에서 나는 반환점을 돌아 집을 향해 달려간다.

6킬로미터. 힘들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구간은 그래서 맘에 든다. 좋든 싫든 집을 향해 가야하고, 걸으면 도착시간이 늦고, 계속 뛰면 원래 예정했던 시간 안에 도착을 한다. 몸에 이상이 없으면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어차피 집으로 가게 되어 있어서 뛰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때부터는 조깅과 상관없는 생각을 한다. 첫 출발 때 나를 괴롭혔던 ‘일’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한다. 말은 최소화하고 고개로만 의사표시를 하려는 사춘기에 있는 둘째 녀석과 언제 어디서라도 팔을 벌리면 달려와 안기는 막내 녀석이 떠오른다. 힘들게 뛰는 모습에 웃고 있는 얼굴을 상상해 보라. 바로 이 구간의 내 표정이다. 거기에다가 일 년 만에 곧 만나게 될 첫째 녀석을 떠올리면 이러다가 몸이 날아갈 것 같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마지막 구간 8킬로미터. 가벼워졌던 몸이 다시 조금씩 무거워진다. 하지만, 경쾌하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리듬을 타고 있다. 나를 잡고 있는 문제나 어려움을 다시 떠올려본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까짓것 뛰어들어 보자.’는 의욕이 생긴다. 실제 이때 내린 결정 덕분에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었다. ‘이 정도로 꾸준히 뛰어주면 살이 빠지겠지.’라는 기대를 한 적이 있지만, 집에 가면 뛴 것 이상으로 군것질을 하기 때문에 ‘살’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오늘도 무사히 잘 뛰었음에 만족한다. 집에 다 왔다. 다른 운동을 한다고 하면 아내가 말리기도 하지만, 돈 들어갈 일이 없는 조깅에 대해서 아주 관대하다. 어떤 때는 집에 들어와서 헉헉거리는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우리 각자는 서 있는 지점에 따라서 가지는 느낌과 생각이 다르다. 출발하기 전에는 아예 뛰기 싫다. 2킬로미터까지만 뛰면 몸이 무겁다는 것만 느낀다. 4킬로미터까지 가면 희한하게 뛸수록 힘이 덜 들어가는 걸 알게 되고, 6킬로미터까지 가면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그간의 스트레스가 빠져나간다. 마지막 8킬로미터 구간을 달리면 출발하기 전에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막막했던 것들 속에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첨벙 뛰어들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2킬로미터에서는, 4킬로미터의 맛을 모르고 그 다음 6킬로미터 구간에서 볼 수 있는 재미도 볼 수 없다. 삶을 살면서 다른 맛을 보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 멈춰서 있거나 늘 거기까지만 달렸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앞으로 가 보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누군가가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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