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외교관, 정태익

윤석열 대통령 임기 1년에 대한 외신 보도를 모아 보면, 명확한 외교 정책노선으로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졌고 한국의 ‘K’ 파워가 전 세계에 대중음악과 드라마, 웹툰 등 여러 갈래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 커지고 있는 한국의 영향력은 ‘외교’라는 공식 라인 외에도 국위를 선양하고 국익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짐을 뜻한다. 대한민국의 가치가 커질수록 우리 청년들이 국제 무대에 진출할 기회도 더 확대되고 있으니, 꿈과 포부를 중단하지 말라고 힘줘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정태익 전 주 러시아 대사이다. 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어오며 세상을 두루 경험한 그를 만나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청년 마인드에 대해 묻고 듣는다.

1943년생.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서울로 유학와서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제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주 뉴욕 부영사, 대통령 외교특보보좌관 주 미국 참사관, 미주국장, 주 이집트 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주 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2005년 퇴임할 때까지 36년 동안 외교 현장에서 국익을 대변하였다. 현재 러시아 레프 톨스토이협회 명예회원, 유라시아 포럼 대표, 안중근의사 의거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 대십자기사훈장, 러시아 정부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사진 박종도 기자
1943년생.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서울로 유학와서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제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주 뉴욕 부영사, 대통령 외교특보보좌관 주 미국 참사관, 미주국장, 주 이집트 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주 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2005년 퇴임할 때까지 36년 동안 외교 현장에서 국익을 대변하였다. 현재 러시아 레프 톨스토이협회 명예회원, 유라시아 포럼 대표, 안중근의사 의거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 대십자기사훈장, 러시아 정부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사진 박종도 기자

반갑습니다. 대사님 청소년 시절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습니다. 지금 당장의 생존이 절박했던 그때에 어떻게 국제 사회를 향해 외교관의 꿈을 가지셨나요?

꿈은 원래 현실이 캄캄할 때 더 빛나는 게 아니겠습니까?(하하)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영자신문을 발행했는데 제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취재한답시고 주한 대사님들을 만나면서 외국과 그 관계에 대해 처음 흥미를 느꼈습니다. 법대 진학 후에도 그 흥미를 이어서 국제법외교학회에 참가했고 2학년 때엔 회장을 맡아 국제교류와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했어요.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이 인정을 받으려면 국제법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흔히 법대생은 사법고시를 치르는 게 수순이지만 저는 국제교류에 더 관심이 갔어요.

한국 국제학생협회 창립 멤버가 되면서 일본에 초청을 받아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 생애 첫 해외여행인데, 다녀오면서 우리가 받은 교육이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일본의 오리진, 즉 기원은 한국이고 일본이 근대화되었어도 우리가 우위에 있으며 섬 나라에는 유물도 보잘 것 없다고 학교에서 배웠거든요. 그런데 가 보니 일본의 문화유산은 훌륭했고 자연 환경도 우리보다 좋았어요.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강대국이었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했어요. 판검사가 되어 맨날 죄인 심판하는 게 국가를 위하는 걸까, 외교를 통해서 넓은 세상에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 이 더 나을까? 그러면서 외교관의 꿈을 굳힐 수 있었어요.

그렇게 살아오신 대사님의 이력에 실패나 포기라는 단어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우등생이라는 칭찬보다, 초·중·고 12년 개근에 공직자 36년 동안 결근 한 번 없었던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타고난 건강 덕분이기도 하지만, 중단하지 않는 정신을 부모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공부에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오만’이에요. 자기가 남달라서 그런 줄로 착각하거든요. 공무원이신 아버지께서는 국가를 위해 일하려면 ‘수신修身’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몸소 자신을 엄격히 관리하며 사시는 모습을 제가 쭉 보아왔죠.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려면 명상이 필요해요. 그래야 오만을 경계할 수 있어요. 어머니 또한 ‘향상하는 삶’의 철학을 가진 분이셨어요. 우리는 내일이 더 행복한 길로 가야 한다고 하셨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니, 오늘 잘했다 싶어도 자만할 수 없었어요.

때로는 자신과 무관한 외부 환경 때문에 계획이 중단되거나 일이 실패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죠. 제게도 그런 일이 많았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외교관 시험 제도가 사라지는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어요. 외무고시를 봐야 외교관이 될 텐데 갈 길이 끊긴 거죠. 그런 상황에서 나를 오라는 곳은 군대밖에 없었어요. 공군 장교로 입대한 저는 ‘향상성의 삶’을 다시 고민했습니다. 공군사관학교 교관이 된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원래 가르치면서 배우잖아요. 노력해서 법학 교관이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없어졌던 외무고시 제도가 다시 부활했어요. 5년만에…. 저는 곧바로 응시했고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제가 꿈꿔온 외교관의 길에 들어선 겁니다.

만약 시험제도가 없어졌다고 꿈도 버렸다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꿈을 품고 있으면 길은 언젠가 열려요. 그 시기가 가까울 수 있고 아주 멀 수도 있지만요.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만납니다. 외교관이 된 후에도 제게 어려운 순간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렵다고 내가 꿈꾸는 일을 중간에 포기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교과서 같은 얘기라고 하겠지만 맞는 말이에요. 기회가 포기하자마자 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마라.’

꼭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요즘 청소년들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우리 때엔 유엔 가입도 못했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유엔 분담금이 1조 원을 넘는 국가입니다. 국제적으로 영향력과 권한이 커졌다는 뜻이에요. 외무부 홈페이지에서 유엔과를 보면 유엔사무국 채용조건이 자세히 나와요. 주니어 전문가, 젊은 전문가 프로그램도 있고 유엔자원봉사단과 인터십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코 뒤지지 않는 스펙을 가졌어요. 본인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해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해요.

외교 현장에서 국익 수호를 위해 36년의 세월을 보낸 그가 정년 퇴임 후 발행한 책. 러시아를 중심 으로 동북아 정세를 분석한 외교 평론집이다. 사진제공 예스24
외교 현장에서 국익 수호를 위해 36년의 세월을 보낸 그가 정년 퇴임 후 발행한 책. 러시아를 중심 으로 동북아 정세를 분석한 외교 평론집이다. 사진제공 예스24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발간된 ‘오럴 히스토리’ 총서 시리즈. 사료적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 외교 전문가는 물론, 국제관계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도 요긴하다. 외교 현장의 생생한 증언과 교훈이 담긴 자료집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발간된 ‘오럴 히스토리’ 총서 시리즈. 사료적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 외교 전문가는 물론, 국제관계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도 요긴하다. 외교 현장의 생생한 증언과 교훈이 담긴 자료집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이전에 비하면 요즘 세대들은 의지력이 좀 약하지 않나요?

물론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고, 성공을 향한 견해도 차이가 나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지요. 그래서 사회 리더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젊은이들에게 바른 메시지를 전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었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잘 극복해 왔어요. 그때엔 사회에 여러 가지 운동이 있었어요.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는 MRA도덕재무장 운동과 덴마크의 엔리코 달가스가 시작한 국토개간운동 그리고 농촌계몽운동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이 시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청소년연합이 지향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나가 국제 교류를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능력이 뛰어나도 의지가 약하고 인성이 바르지 않으면 국제 진출을 해도 잘 헤쳐 가기가 어렵습니다.

의지와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대사님은 평소에 외교관의 필수 덕목으로 애국심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국제기구에 종사할 때에도 애국심은 마찬가지로 중요할까요?

애국심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쉽게 말해 애국심은 곧 가족애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남자가 입대를 해서 군사훈련이 끝나면 총을 받습니다. 내 손에 총이 주어진 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 총구를 남에게 겨누면 살인을 하게 되니까요. 내게 총을 쏠 임무가 부여된다는 것은 어디에 쏠지를 분명하게 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격 훈련을 받을 때 저는 ‘정당한 이유’를 줄곧 생각했습니다.

제가 찾아낸 정당한 이유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가장 소중한 가족이 이 땅에서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고, 가족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오면 앞장서서 총을 쏘겠다고 마음을 정했어요. 그게 애국심입니다. 지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쏘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외교관으로서 굵직굵직한 성과를 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과 이집트 양국이 대사급 수교를 맺은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1993년 주 카이로 총영사로 부임했을 때 우리나라는 이집트와 미수교국이었어요. 이집트는 중동, 마그레브, 유럽, 아프리카와 연결되는 중요한 나라여서, 역대 정부가 최고의 엘리트 외교관들을 카이로 총영사로 계속 보냈지만 수교의 뜻을 이루진 못했어요.

그런 자리에 제가 왔으니 부담이 됐죠. 매일 나일강변을 걸으며 원인과 해결법을 고민했습니다. 당시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1973년 4차 중동전쟁의 영웅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김일성 주석의 협조가 컸어요. 훗날 보답하려는 자리에서 김 주석은 ‘한반도가 통일되기 전까지 남한과 수교를 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죠. 그런 혈맹 관계였기에 수교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교의 열쇠를 쥔 무바라크 대통령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표를 세웠으니 전략을 수립해야겠죠. 저는 ‘공식 라인’보다 ‘비밀 라인’을 구축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대통령 최측근인 술레이만 정보부장과의 사귐에 집중했는데, 그때 저는 이집트 국익에 도움이 될 ‘새로운 친구’가 한국이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전략적 사고에 능한 정보부장은 공감을 보였고, 저는 다음 단계로 정보부장의 한국 방문을 비밀리에 계획했습니다. 그때 하늘이 돕는 일이 생겼습니다. 1994년 7월 12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 겁니다. 각국의 조문 행태를 면멸히 분석해 보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북한대사관에 가서 직접 조문하지 않았고 이집트 언론도 양국의 혈맹 관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와 북한의 맹약이 무너질 기미를 느끼셨겠네요.

예, 대통령실과 정보부를 상대로 물밑 교섭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마지막 전략은 양국 국민이 수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저는 민간 차원의 문화외교에 집중했습니다. 수잔 무바라크 영부인이 깊은 관심을 표시한 앙드레 김의 패션쇼를 필두로 미술 전시회, 음악 연주회, 음식축제, 대중가요제 등 여러 행사를 카이로에서 잇따라 펼쳤죠. 양국 간 친선 행사의 열기가 높아지자 이집트 최대 일간지 ‘알하람’이 ‘한국이 이집트와 수교한 것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하였다.’는 오보를 내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아랍에는 ‘낙타가 천막 안으로 코를 들이밀면 머지않아 몸도 따라 들어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해 겨울, 한국을 비밀리에 다녀온 술레이만 정보부장은 돌아와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이집트의 국익을 위해서 한국과 정식 수교를 해야 한다고 적극 건의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문제들에 봉착했지만, 1995년 4월 12일에 수교 협정 서명이 이뤄졌습니다.

1995년 4월, 한국과 이집트의 수교 문서 서명식. 이집트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맹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나라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1995년 4월, 한국과 이집트의 수교 문서 서명식. 이집트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맹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나라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2002년 3월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태익 대사, 세 번째가 푸틴 대통령. 사진제공 정태익
2002년 3월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태익 대사, 세 번째가 푸틴 대통령. 사진제공 정태익
아내 민강희 여사는 외교관 남편을 빛낸 내조로 잘 알려져 있다. 부임한 나라에서 활발한 공공외교로 국위 선양을 해왔다. 이집트 수교 전 총영사부인으로서, 수잔 무바라크 영부인을 예방했을 때 모습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아내 민강희 여사는 외교관 남편을 빛낸 내조로 잘 알려져 있다. 부임한 나라에서 활발한 공공외교로 국위 선양을 해왔다. 이집트 수교 전 총영사부인으로서, 수잔 무바라크 영부인을 예방했을 때 모습이다. 사진제공 정태익

김영삼 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로 평가되고 있는 한·이집트 수교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이집트에 외교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남북 대결 외교전에서 역전을 이룬 사례가 되었죠. 총영사로 부임했던 저는 수교를 계기로 초대 대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수교 1주년 행사에는 피라미드 앞에 특설 무대를 설치해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앙드레김이 패션쇼를 했습니다. 여기에 수잔 무바라크 영부인도 참석하셨죠. 그 행사 후에 저는 정무차관보 임명을 받아 서울로 귀국했습니다.

양국 수교를 위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다각도에서 접근한 전략이 놀랍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터 ‘외교’ 현장에서의 활약을 듣다 보니,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받아낸 고려 시대 서희가 떠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젊어서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까요?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추천합니다. 이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약 1만 킬로미터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지평선을(수평선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바라보면 저절로 알거예요. 이 열차를 왜 타야 한다고 했는지를.

바이칼 호수에 도착하면 수영도 해보세요. 신비로운 기운을 느낄 겁니다. 우리는 좁은 한반도에서, 그것도 모자라 남북으로 나뉘어서 살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경쟁이 붙어 득의하고 실의하며 지내는데, 시베리아 여행을 하고 나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겨요. 답답한 가슴이, 옹졸한 생각이 트이면서 사람이 변합니다. 이 여행을 경험한 청년은 세상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인생도 훨씬 풍성해질 겁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무려 7박 8일간 달려가야 도착하는 대장정의 노선이다. 기차를 타고 끝이 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사진 러시아 트레인 티켓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무려 7박 8일간 달려가야 도착하는 대장정의 노선이다. 기차를 타고 끝이 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사진 러시아 트레인 티켓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바이칼 호수는 수심 40미터까지 내려다 보일 만큼 투명하여 ‘지구의 푸른 눈’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꼭 수영을 해보길 권한다. 사진 구글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바이칼 호수는 수심 40미터까지 내려다 보일 만큼 투명하여 ‘지구의 푸른 눈’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꼭 수영을 해보길 권한다. 사진 구글어스

그의 이름은 한자로 ‘큰 날개’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그는 한국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은 큰 날개였다. 한쪽 날개엔 애국심을, 다른 쪽 날개엔 국익을 수호하려는 사명감을 얹고 말이다. 세상에 아버지의 겉모습을 그대로 닮은 아들은 많이 있지만, 아버지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 사는 아들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그의 아들 정기용 주 모로코 대사는 아버지와 교집합이 정말로 많다. 같은 고교에 같은 대학이고 학회, 군대, 외무고시도 모두 선후배 사이다. 첫 부임지가 중동지역인 것까지도 닮은꼴이다. 세상에 그냥 따라가는 경우는 없다. 우러러보지 않는다면, 닮고 싶지 않다면 누가 단번의 인생을 걸고 따르겠는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는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아버지가 살아온 가치는 충분히 가늠이 된다. 국제 교류가 더욱 부각되는 이 시대에 그는 귀감이 되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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