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5] 말하듯이 쓰기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의 저서 네 권이 연속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구어체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구어체라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손으로 쓰는 시대였다면 구어체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가 있어서 구어체로 쓸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선배 교수들이 ‘논문을 구어체로 썼다. 문어체로 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문어체로 써야 하는 논문은 힘들다.” (규원, 발코니를 만들고 벤치에 앉자-구어체로 도시를 말하는 건축가, 21 WRITERS②, 한겨레21, 제 1405호 제1406호, 2022.3.28.,4.4.)

유 교수는 자신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주요인으로 ‘구어체’를 꼽았다. 정확하게는 차별성 있는, 독창적인 발상들을 말하듯이 쓴 게 주효했다는 뜻이다. 말하듯이 쓴 글이 독자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어디서 살 것인가》,《공간이 만든 공간》,《공간의 미래》 네 권 모두를 을유문화사에서 펴냈다. 이 책들은 분야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3월 초 출판사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네 권 합쳐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좋은 글은 ‘말하듯이’ 쓴 글이다. 누구에게 이야기하듯 쓴 글이 읽기 편하다. 설득력도 있다. 여기서 누구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다. ‘말하듯이 쓴다.’라는 말에는 글쓰기와 관련해 많은 힌트가 담겨 있다. 특히 글쓰기가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누구나 말하기는 쉽다고 하는데 글쓰기는 부담스러워하지 않는가. 그런데 말하듯이 글을 쓴다면 쉽게 쓸 수 있고, 잘 읽히기까지 한다니 시도해보지 않을 까닭이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글과 말은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니 말하듯이 쉽게 글을 쓰라고 충고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하는 목적은 의사소통이며, 문자로 뜻을 전할 때에는 글쓰기를 한다. 음성으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는 말을 한다. 생각을 전하고 감정을 나눌 때 말은 부담감 없이 잘하는데 글쓰기는 힘들어한다. “말하듯이 쓰라!”는 충고는 그래서 나왔다. 글도 말하듯이 편하게 쓰면 힘들 일 없다는 취지다.

글과 말이 하나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다. 글로 쓸 때 훨씬 조심한다. 말은 상대적으로 부담감 없다. 어쩌면 휘발성 때문일 수도 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중으로 흩어지고 만다. 책임을 추궁할 직접 증거가 남기 힘들다. 지금은 스마트폰 녹음 기능으로 증거를 챙기는 시대이지만, 과거에는 말에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말은 자유롭게, 편하게, 가볍게, 재미있게,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다.

글은 기록으로 남으니, 글 자체가 증거라서 함부로 쓸 수 없다. 글은 ‘은/는/이/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표현을 가려서 써야 한다. 단어 뜻을 이해하고, 맞춤법도 알아야 뜻을 글로 제대로 전할 수 있다. 글을 쓰려면 단어와 문장에 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쌓아야 한다.

글은 모든 의사 표현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으로 쓰이기에 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글은 지적 활동의 산물이어서 글 쓰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돋보이는 글을 쓰고 호평 받고 싶어 한다. 잘 쓰려고 한다. 그러니 편하게 글을 쓰기 힘들 수밖에…. 전문가들은 절대 글을 돋보이게 잘 쓰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나는 말하듯이 쓴다》등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를 펴낸 강원국 작가는 “이것 못 쓴다고 죽고 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양으로 승부하자. 수준 높은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많은 양을 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말하듯 쓰자. 글은 재능으로 쓰지 않는다. 엉덩이로 쓴다.” 라고 말했다. (강원국, 글쓰기가 두려운가요?, 한겨레신문, 2019년 7월 11일.)

글은 우선 한 문장을 주술 관계만 맞춰 쓰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게만 쓰면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말하듯이 쓰는 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지름길이다.

글을 말하듯 편하게 쓰려면, 말과 글이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은 뜻을 주고받는 걸 말한다. 뜻을 통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다. 말과 글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진다. ‘잡음’을 제거해야 본래 뜻이 왜곡 없이 전달된다. 사실을 꾸미지 않고 전해야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소설가 김훈은 이문재 시인과의 대담을 담은《글쓰기의 최소원칙》 에서 많은 보와 사실을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열한 것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확한 정보와 사실이 많이 담기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배열된 글을 뛰어난 글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김훈,《글쓰기의 최소원칙》, 룩스문디, 2008년 12월, 50쪽.) 사실을 적절한 순서로 늘어놓기만 해도 좋은 글이 된다는 주장이다.

좋은 글은 재능이나 재주에 좌우되지 않는다.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해 ‘정보’와 ‘사실’을 챙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엄마들은 요리할 때 신선한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아무리 양념을 황금비율로 해도, 그것으로 시든 상추를 버무리면 상추무침은 숨이 죽어 제맛이 나지 않는다. 양념 맛이 조금 떨어져도 상추가 싱싱하면 상추무침은 아싹하게 씹히고, 상큼하게 느껴진다. 글쓰기 할 때 ‘정보’와 ‘사실’이라는 신선한 재료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질서정연’하게 배열하면 글맛이 좋다. 막힘이 없고, 거부감 없이 이끌리듯 읽히는 글이 된다.

글을 쓸 때 사람들이 ‘양념’에만 신경을 많이 쓴다. 감탄을 연발케 하려고 멋있게 권위 있게 꾸미려 한다. 말을 할 때면 그런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사실과 정보를 짧게, 짧게, 계속 쏟아낸다. 어떨 때는 감정도 거르지 않은 채, 꾸밈없이 내뱉은 그 말이 가장 정확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선 후회할 때도 있지만…. 꾸밈없는 글, 진실한 글은 말하듯이 쓴 글이다.

글을 말하듯이 쓰려면 그 글을 읽을 대상을 상정하는 게 좋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쓰면 쉽게 쓸 수 있다. 타깃을 설정해야 한다. ‘누군가’에 따라 글이 내용, 형식, 표현 등이 달라진다.

실제로 베스트셀러《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를 펴낸 김수현 작가는 교보문고 ‘북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쓸 땐 가상의 독자를 상정해 두는데, 애정을 담아서 쓰고, 독자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써요.”라고 말했다.(박수진, “결국 중요한 건 균형”《애쓰지 않고 편안하게》김수현, BOOKNEWS, 2020년 6월 12일.) 김수현 작가처럼 많은 작가가 작품을 쓸 때면 특정 개인을 머릿속에 넣고 그와 대화하며 글을 풀어간다. 그렇게 말하듯이 써야 글이 일정한 톤을 지닌다. 또 더 쉽게, 빨리 쓸 수 있다.

타깃은 좁게 설정해야 한다. 이 글은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싱글맘’이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타깃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특정인이어야 한다. 누군가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써야 한다.

그 누군가, 한 명의 가상 독자에게 편지 보내듯이 글을 쓰면, 이야기하듯, 말하 듯 쓸 수 있다. 더 편하게 소통하는 글을 쓸 수 있다. 타깃을 세밀하게 설정하면 원고작성이 수월하다.

글 쓸 때뿐만 아니라 요리할 때도 타깃을 분명히 하면 요리가 쉽다. 그 타깃을 머릿속에 그리며 콘셉트를 구축할 수 있다. 남편을 주 타깃으로 정한 저녁 식사면 반주를 곁들일 수 있을 만한 요리, 안주가 될 만한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 예를 들면 두부김치나 김치찜에 술을 같이 내놓는다면 남편은 흡족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초등생 아들이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면 피자, 고구마 맛탕, 초코쿠키 정도를 내놓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다. 점심때 중학생 딸에게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면 눈웃음으로 보답할 것이다.

타깃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면 요리는 물론, 글의 콘셉트와 주제도 선명해진다. 그만큼 글쓰기가 쉬워진다.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누구나 책쓰기》가 있고,《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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