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세계 자폐인의 날’을 기념하여 푸에르토리코의 카타뇨 시에서 ‘자폐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 순서 중에 굿뉴스코 해외봉사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추은상 학생의 발표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자폐성 장애 스펙트럼의 하나에 속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던 그가 강단에 서서 아직 서툰 스페인어로 또박또박 말했고, 그가 전한 희망의 메시지에 카타뇨 시장님 부부를 비롯해 참석한 자폐아와 부모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감동 스토리를 본지의 독자들과 공유한다.

발표자 추은상(배재대학교 3학년)

Hol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추은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후 변화된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 여기에 섰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자폐성 장애 스펙트럼의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하는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못했고, 특히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어려웠어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늦게 집에서 나와 학교에 지각을 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참 빨리도 왔네. 빨리도 왔어. 잘했다, 잘했어.”

학교가 끝난 후 저는 집으로 왔고, 아침에 늦은 걸 아시는 엄마가 물으셨어요.

“은상아, 혹시 선생님께 꾸중을 듣지 않았니?”

“아니요, 잘했다고 칭찬만 하셨는데요….”

저는 이렇게 상대방이 표현한 반어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는 친구들과 사귈 수 없었고 항상 따돌림만 당했습니다. 점점 더 의기소침해진 저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 안에 ‘안 된다’는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 놓고 그 동그라미 안에 스스로 갇혀 살았습니다.

여러분께 질문 하나를 할게요. 혹시 여러분은 언제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나요? (대답을 잠시 기다린 후) 네, 만약 여러분이 건강한 신체를 지녔다면 대부분 7살이나 8살 때 문제없이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달랐습니다. 운동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두발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는 체육 수업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각종 스포츠는 제게 두려움의 대상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큰스님과 동자승이 한 절에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동자승이 절에서 말썽을 자꾸 일으켜 큰스님이 동자승에게 과제를 하나 내주었어. 흙바닥에 원을 그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네가 원 안에만 있으면 평생 밥을 못 먹을 것이다. 그렇다고 원 밖으로 나오면 내가 절에서 쫓아낼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동자승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참 고민한 동자승은 뒤꼍으로 가서 빗자루를 가져와 바닥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지웠습니다. 원이 사라졌으니 자유로워진 겁니다. 엄마가 해 주신 동자승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게 용기와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중학생이 된 저는 초등학생 때 나를 옭아맨 동그라미를 지우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전 과제 하나로, 두발자전거를 처음 탔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제게 이렇게 말하시는 거예요.

“이제부터 ‘안 된다’는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워 보면 어떨까? 아주 작은 것부터 도전을 해보는 거야.”

우리는 두발자전거를 끌고 동네 공원으로 갔습니다. 저녁 8시경이라서 사방은 캄캄했고 가로등 불빛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제 마음속엔 ‘나에게 왜 이런 걸 시키시지?’ 하는 불만도 많았습니다. 그날, 제가 자전거를 타다가 여러 번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고 땀과 눈물 범벅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이렇게 된 이상 안 되더라도 타보자!’ 하는 오기가 생겨 계속했고, 연습한 지 두 시간이 지나자 혼자 두발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6년 동안 절대로 못 탄다고 생각했던 자전거를 두 시간 만에 넘어지지 않고 타는 기적이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날 저와 엄마는 정말 감격해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 속에서 ‘나도 할 수 있고 되는구나.’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검도, 첼로 연주, 마라톤 등 많은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검도 역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제 둔한 운동신경을 굉장히 민첩하게 해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운동신경이 점점 좋아져 검도 초단을 딸 수 있었습니다. 첼로 역시 중학생 때부터 시작해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 배웠습니다. 실력이 늘어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연주 무대에 오르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마라톤에 도전한 일도 제게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저는 뛰다가 중간에 쓰러져서 앰뷸런스에 실려 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꿋꿋하게 완주를 해서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참가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 부상으로 노트북을 받아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참가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 부상으로 노트북을 받아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고등학생 때 전국 규모의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일입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네 이야기를 주제로 원고를 써서 나가 봐.”라며 추천해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속 동그라미를 지웠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원고를 썼고 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도 입상조차 하지 못했던 저는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내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예선 대회에 참가했고, 최종 발표에 1등상으로 제 이름이 불렸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1등이지?’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요. 도별 예 선 대회에 출전한 학생들 중에서는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특목고 학생들도 있었거든요. 결국 그 대회 전국 최종 결선에서 1등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류 문화를 소개한 ‘K-아미고스(친구들)’ 행사에서 해안가 쓰레기 수거와 딱지치기 게임을 담당했다. 
한류 문화를 소개한 ‘K-아미고스(친구들)’ 행사에서 해안가 쓰레기 수거와 딱지치기 게임을 담당했다. 

푸에르토리코에 오기 전, 제가 살던 한국의 광주라는 큰 도시에서 청소년 문화 콘서트가 있었고 저희 엄마가 자녀교육 강사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엄마의 강연 중간에 제가 특별 출연을 해서 그동안의 변화 스토리를 1,4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내용에 감동한 학부모님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엄마한테 연락해서 발달장애 자녀를 교육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동그라미를 지우는 또 하나의 도전 과제로, 저는 낯선 땅 이곳 푸에르토리코에 봉사하러 왔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는 ‘내가 과연 남을 위해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제 마음의 동그라미를 지워왔던 경험들을 토대로 이겨낼 수 있으며, 제 안의 한계를 깨뜨리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은, 제 마음에 그려진 절망의 동그라미를 지우고 소망을 향해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맛본 저는 부담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절망의 동그라미를 지워보세요. 그러면 어떤 어려움이 오든 무엇이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중에 혹시 저와 같은 사람이 있으시다면 저와 같이 대화를 하면 어떨까요? 제 마음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다가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검도 초단자인 추은상 학생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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