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Essay

가끔씩 고향에 다녀올 때가 있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의 두메산골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보니 모두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논밭이 거의 천수답天水畓이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모내기를 해놓아도 비가 오지 않으면 농부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고, 남의 논 물꼬를 터서 그 물을 몰래 자기 논으로 끌어들이느라 이웃과 더러 다투기도 했다. 날씨가 아주 가물 때는 동네 우물의 물을 퍼내어 농로農路로 보내기도 했는데, 힘들게 퍼낸 샘물이 말라버린 물길을 따라 흘러가다가 잦아들다 보니 논에까지 들어가는 물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물이나마 논에 대어 어떻게든지 벼를 살려보려고 무척 고생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집 논은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잘 마르지 않는 옥답沃畓이었다. 동네에서 거리가 멀어 수확한 벼를 집에까지 나르는 일이 여간한 일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다물’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다른 논에 비해 값이 비쌌고,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우리 논을 부러워했다.

지금은 농로가 좋아지고 관정管井도 개발되어 농촌 환경이 많이 변했다. 가끔 고향에 가면 땅 한쪽 모서리에 콩 한 포기라도 더 심어 가꾸려고 애쓰던 지난날과 달리, ‘다물’ 논도 경작자가 없어서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있고, 논에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되었다. 불과 몇십 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 좋던 땅이 거칠고 황폐한 땅이 되고 말았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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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는 매년 땅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하고, 돌이나 자갈을 골라내기도 하며, 퇴비나 거름을 주어 비옥하게도 한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경작자가 없이 방치해 두면 거칠고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만다. ‘돌부처 살찌고 안 찌는 것은 석수장이 손에 달려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좋은 땅이 되느냐, 쓸모없는 땅이 되느냐는 경작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한다. 쓸모없는 땅이라도 경작자가 땅을 일구고 가꾸어 주면 부드럽고 좋은 땅이 되고, 좋은 땅도 가꾸지 않으면 굳어지고 거칠어지며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쓸모없는 땅으로 변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속담처럼 땅은 자주 갈아엎고 흙덩이를 부수어주어야 농사를 짓기에 좋은 부드러운 땅이 된다.

땅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교만이나 고집, 욕망이나 어두운 생각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그것들이 자라 마음을 거칠고 황폐하게 만든다. 땅이 굳어지고 거칠어지는 것보다 마음이 굳어지고 거칠어지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일이다. 특히 교만이나 고집은 어릴 때부터 꺾어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말 자식을 사랑하면 그 마음을 다스려주고, 낮추어 주어야 한다.

땅은 스스로 변할 수 없다. 그러나 경작자가 있으면 땅은 바뀐다. 굳은 땅이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 땅에 거름을 주면 비옥한 땅이 된다. 그 땅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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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도 그냥 내버려두면 굳어지고 거칠어지기 때문에 가꾸어 주고 다스려 주어야 한다. 마음도 가꾸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아름답게 바뀌는 것이다. 경작자가 있어서 마음 밭을 부드럽게 일구어 주고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낸 뒤 좋은 씨를 뿌리면, 꽃이 피고 귀한 열매를 맺는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며, 마음의 경작자가 있는 사람이 참 복된 사람이다.

필자는 아들 하나가 있는데, 자식 농사가 쉽지 않았다. 그냥 자식을 키우면 잘 크겠지 하고 키웠다. 그런데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 농사이며, 가장 중요한 농사도 자식 농사이고,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역시 자식 농사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내 기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옳은 말로 훈계를 했지만, 어린 아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이끌어 주지를 못했다. 그가 말을 안 듣고 점점 더 문제를 크게 일으키자 ‘아들이 아버지가 한번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혼을 냈다. 하지만 아들은 점점 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통제가 안 되었다. 나는 때로 격분하여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내상內傷을 많이 입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힘들어서 나 같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걸 원망했고, 나는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서로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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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버지와 살고 싶은데,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늘 선생님과 같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이 충격도 되고 내심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아들아, 그랬느냐?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버지가 그리웠겠나? 너한테는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구나.’

아들로 인해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을 때, 청소년 교육에 남다른 혜안慧眼을 가진 멘토 한 분이 다가오셨다. 그분은 특별한 지혜와 사랑으로 아들의 거칠어진 마음 밭을 부드럽게 만들어 가셨다.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 밭에 그분의 지혜로운 말씀이 심겨지면서 마음이 변해갔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 문이 열리고, 차갑던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무얼 해도 안 돼. 나는 남들보다 못해. 그냥 이렇게 막 살다가 스물 살이 되면 확 죽어버리고 말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아들의 마음에서 그 생각의 독초와 잡목들이 뽑혀나갔다. 그분은 계속해서 믿음과 소망과 감사의 씨앗을 심어 주시고, 마음 밭에 용기와 격려의 북을 주셨다. 땅이 정직하듯이 마음 밭도 정직하다. 마음 밭도 심은 대로 거두게 마련인지라 오랫동안 황폐한 땅과 같던 아들의 마음이 지금은 아름다운 옥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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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무나 달라진 아들을 바라보면 그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속으로 가끔 말하곤 한다. ‘지난날 참 미안했다. 아버지가 지혜가 없어서 너한테 상처만 많이 주었구나.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나? 좋은 아빠를 만나 마음의 앨범에 어린 시절 아름답고 행복했던 사진을 많이 담아 두었더라면….’

농부라고 같은 농부가 아니다. 나름 농사를 짓는다고 짓지만 농사를 잘 못 짓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남다른 지혜로 부지런히 논밭을 가꾸어 농사를 잘 짓는 농부도 있다. 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에 관한 많은 이론을 배웠지만 실제 자식 농사는 실패했다. 그런데 마음의 세계를 훤히 꿰뚫어보고 마음 밭을 잘 가꾸어 주는 인성교육의 대가가 아들의 마음 밭에 농사를 지은 결과는 정말 달랐다. 나는 지금도 그분으로부터 마음 농사짓는 법을 배운다. 그분의 방법으로 청소년을 가르쳐 보니 마음 농사짓는 일이 참 재미있고 행복해졌다. 나는 강연을 할 때마다 나 자신을 이 렇게 소개한다. “저는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라고…. 딱딱하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굳게 닫힌 마음 문이 열리며, 차가운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 이 농사짓는 재미가 여간 큰 게 아니다. 강태공은 세월을 낚는 어부였고,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였는데, 사람 키우는 농부의 행복도 보통 행복이 아니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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