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축구 코치 전은창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쉬운 일도 함께 하면 더 쉬워진다는 뜻인데, 요즘엔 함께하는 것에 서툰 사람들이 많다. 2019년까지 15년간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올해 케냐로 해외봉사를 떠난 전은창 씨. 그곳에서 특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함께하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온라인으로 그를 만나본다.

전은창​​​​​​​​​​​​​​​​​​​​​​​​​​​​​​​​​​​2005년부터 2019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았다. 어릴적 꿈꿨던 축구 선수의 꿈을 지금 케냐 나이로비에 서 해외봉사자로 활동하며 이루고 있다. 케냐 학생들에 게 축구를 잘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사진제공 전은창
전은창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았다. 어릴적 꿈꿨던 축구 선수의 꿈을 지금 케냐 나이로비에 서 해외봉사자로 활동하며 이루고 있다. 케냐 학생들에 게 축구를 잘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사진제공 전은창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에서 15년 동안 살았다고요?

네, 2005년에 아버지가 이탈리아로 발령을 받으셔서 저희 가족 모두 로마에 가서 살게 됐어요. 남들은 시간 내고 돈 들여서 여행 오는 곳인데 저는 아버지 덕분에 로마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랐어요. 행운이었죠. 게다가 쉽게 배울 수 없는 이탈리아어도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하니,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이 굉장히 값진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데 어렸을 땐 그걸 잘 몰랐어요. 제 어릴 적 꿈이 축구선수였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왜 안 되는지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하고 싶은 걸 막는 부모님이 야속하고 미워서 반항도 했었어요. 부모님이 왜 반대하셨는지 그 마음을 크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 같아요.

이탈리아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외국에서 저희 삼형제를 키우기가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면서 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저희 부모님은 미래를 생각하며 항상 검소하게 사셨어요. 덕분에 저희는 어릴 적부터 자제하는 습관이 몸에 배였죠. 그래서 자유분방한 해외 문화를 접하면서도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란 것 같아요.

이탈리아 로마의 관광명소인 콜로세움 앞에서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 전은창
이탈리아 로마의 관광명소인 콜로세움 앞에서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 전은창

쉽지 않으셨을텐데 부모님이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어떻게 케냐로 해외봉사를 갔나요?

2019년에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잠시 나왔어요. 저는 그때 이탈리아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걱정돼서 부모님을 따라 잠시 한국에 나온 거죠. 제가 한국에 왔을 때가 12월이었고 몇 개월 후에 갑자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는 바람에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생각지도 못한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된 거죠. 그사이 군대도 다녀오고, 무역 회사에 취직해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어요. 케냐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해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는데 가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기간이 1년이래요. 안 간겠다고 했어요. 제가 해외에서 15년을 살다 왔는데 또 해외가서 1년을 더 살라니.... 유럽도 아닌 살기 불편한 아프리카로요.

게다가 그렇게 배우게 해달라던 축구를 못하게 하시더니 이젠 케냐에 가서 축구를 가르쳐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니까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됐었죠.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가는 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실랑이를 하는데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은창아, 단기간으로 보면 너에게 1년이란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고 아까울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앞으로 60년을 더 산다고 생각하면 그 60년 중에서 1년은 투자할 만하지 않니? 너의 인생을 위해서 말야.” 어머니는 1년이 저에게 소중한 경험을 줄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어머니가 나보다 연륜이 많으신데.’ 싶어서 결국 해외봉사를 지원했고, 지금 케냐에 와 있네요.(하하)

은창 씨가 어렸을 때 이루지 못했던 축구 선수의 꿈을 지금 케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루고 있는 셈이네요.

그렇죠. 이탈리아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또 축구를 잘하잖아요. 저도 이탈리아에서 살며 어릴 적부터 축구를 많이 했고, 재능이 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축구선수가 되려고 꿈도 꾸었죠. 기술적인 부분을 익히고 전술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고 축구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축구를 전문적으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모든 부분을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현재 케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케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대학 입학 시험을 봐요. 고3 때 입시를 치르는 한국과 달라요. 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공백이 있어요. 그 기간에 학생들이 할 게 없으니까 술이나 마약을 하면서 점점 나쁜 쪽으로 빠지는 거예요. 케냐 정부에서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국제청소년연합 나이로비 지부에서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기획했대요. 그 내용은 케냐의 학생 100명을 모집해서 6개월 동안 합숙을 하며 축구와 태권도를 가르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케냐에 온 것이고요. 이 프로젝트는 기초부터 시작해서 6개월 후에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으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이 나쁜 쪽으로 빠지지 않고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거죠. 학생들에게 올바른 마인드를 형성시켜 주려고 인성교육과 마인드 교육도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어요. 아직은 학생 모집 단계라 매일 나가서 고등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있어요. 매주 토요일엔 아카데미를 열어 축구와 태권도를 가르쳐주고 있고요.

6개월 동안 100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맞아요. 제가 축구 클래스를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데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저는 축구를 잘하고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건 또 다르잖아요. 게다가 이곳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전 영어는 잘 못하거든요. 사실 한국말도 어려운 단어는 잘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축구 공부도 해야 하고 동시에 영어공부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컸어요. 또 ‘내가 100명의 학생들을 6개월 동안 이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제 걱정들을 지부장님께 말했더니 이렇게 답해주셨어요. “은창아, 나는 우리의 프로젝트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그래서 학생들에게 소망이 생기고 꿈이 생겨서 그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길 바라. 이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하는 거야. 네가 축구 클래스 담당이지만 혼자서 클래스를 잘 운영하고, 학생들을 이끌려고 하면 너도 힘들고, 우리 모두에게도 유익하지 않아. 하지만 어렵거나 문제가 있을 때 물어보고 이야기하면, 우리가 모여서 같이 생각하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어. 난 네가 이곳에서 함께하는 삶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 말씀이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렸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축구 아카데미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굿뉴스코 케냐 지부
매주 토요일마다 축구 아카데미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굿뉴스코 케냐 지부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저는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생기면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요. 제 주변에 절 도와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제 스스로 고립시키고 있었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니까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교류하게 됐어요.

저 혼자 생각했을 땐 어렵고 막막했던 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니 금방 해결되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이렇게 함께 하면 쉬운데 나는 이제까지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았지?’ 그리고 저를 돕는 주변 분들에게 감사했어요. 1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저를 키워주시고 늘 함께 있어주신 부모님, 저의 인생을 위해 아낌없이 조언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지부장님, 늘 제 말을 들어주고 따라주는 8명의 단원들, 그 외에도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난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케냐에 온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요?

먼저,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거예요. 케냐 학생들이 이전에는 술이나 마약과 함께해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 프로젝트와 함께 하면 축구도 배우고, 태권도도 배우고, 올바른 마인드도 배워서 인생에 소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그랬듯, 이번엔 제가 이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함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전 아직 배울 것들이 많아요.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뭐라도 더 배우고 싶어요.

케냐에서 만난 현지 친구들과 함께 8명의 굿뉴스코 단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제공 전은창
케냐에서 만난 현지 친구들과 함께 8명의 굿뉴스코 단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제공 전은창

이번에 투머로우 5월호 표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 속에서도 항상 저희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어요. 그런 부모님과 함께였기 때문에 제가 이탈리아에서 잘 지낼 수 있었고, 지금 이곳 케냐에도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어머니,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뚝뚝한 아들이라서 사랑한다는 표현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네요. 사랑합니다~~. 제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두 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인게 자랑스럽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는 축구 아카데미에 11살부터 20살까지 학생들이 참석하고 있다. 그가 보내온, 축구 조끼를 입고 축구공을 차며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학생들의 사진을 보니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카데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꼭 한두 명씩 찾아와 그에게 말한단다.
“코치님! 저도 코치님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리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의 케냐 라이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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