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터오면 짙게 드리웠던 어두움이 서서히 물러가고 아침이 찾아온다. 푹 자고 맞는 아침은 우리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깊은 산 외진 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만나 밤새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의 긴 시간을 보냈다면, 그 아침은 한없이 새롭고 반갑고 소중할 것이다.

해가 뜨면 아무리 짙은 어두움도 물러간다. 그런 이치에서라면, 생명이 있는 곳에서 죽음이 물러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들을 삶 속에서 접한다. 살다 보면 병이 찾아와서 건강한 몸을 헤치기도 하고, 죽음이 찾아와 삶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삶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있지만, 슬픔도 겪는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겪게 된다.

아무도 이 현상을 거스를 수 없어서 받아들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죽음에 삼켜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병이 건강한 몸보다 강하고, 죽음이 생명보다 강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마주한다. 마치 어두움이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현상을 일상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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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밝은 등불이 켜져 있는데도 주변이 어둡다면 그 등불은 진짜가 아니다. 빛은 어두움에 잠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에 그려진 등불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실존하고 실재하는 등불은 불을 켜는 순간 어두움을 금세 몰아낸다. 등불이 켜져 있으면 어두움이 찾아올 수 없다. 그래야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책 속에 있는 등불과 비슷해 보인다. 참 것이었다면 죽음이 깃들지 못하도록 몰아냈을 것이며, 죽음이 찾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화병에 꽂힌 꽃처럼 생명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침내 죽음에 삼켜지고 만다.

책 속에서 등불이 아무리 환하게 타오르고 있어도 책장을 덮어버리면 등불은 어두움에 덮이고 만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오면, 생명은 그 어두움에 조금씩 잠식당해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 누구도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

대단한 권력을 가졌던 중국의 진시황은 신선들이 먹는다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냈다고 한다. 엄청난 힘을 가졌으니, 할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진시황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어두움을 이기는 빛처럼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갖고 싶어 한다. 성경 요한복음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구절이 있다. 빛과 생명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참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참 생명은 죽음을 몰아내며, 참 빛에는 어두움이 깃들지 못하고 참 생명에는 죽음이 깃들지 못한다.

글 박민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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