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항구도시 여수의 오동도에 가면, 등대 입구 돌비석에 ‘암야도광暗夜導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어두운 밤에 빛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칠흑과 같은 밤바다를 헤매며 혼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멀리서 비치는 등대 불빛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고 뱃머리를 항구로 돌리게 한다.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의 항구로 인도하는 등대는 무엇일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겸비한 마음과 절제라고 본다. 

홧김에 BMW 승용차를 강물에 밀어 넣은 청년

2019년 8월 인도의 한 부잣집 아들이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준 BMW 새 승용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홧김에 그 차를 강물에 빠뜨려 버린 일이 있었다. 인도 현지 언론 ‘타임스오브인디아TOI’를 비롯해서 한국의 여러 언론에서도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인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 하리아나주州 야무나나가르에 사는 그 청년은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준 흰색 BMW를 강에 밀어 넣어버리고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고 아버지에게도 영상을 보냈다. 청년은 생일 선물로 재규어를 원했는데, 아버지가 BMW3를 사주자 홧김에 차를 강물에 빠뜨린 것이었다. 강에 빠진 BMW는 잠시 물에 떠다니다 키가 큰 수초에 걸렸다. 인근 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들어가 자동차를 강 밖으로 끌어내느라 애를 썼고, 이를 구경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인도에서 재규어 차량은 약 400만~500만 루피(한화 6천900만~8천600만 원)이고, 청년이 받은 BMW3는 350만 루피(한화 6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재규어보다는 가격이 낮은 편이나, 생일 선물로 받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는 금액이다. 그런데 황당한 선물 투정을 부린 청년은 그 지역에서 아주 부자인 지주의 아들로 알려졌다. 

인도 매체에 보도된, 홧김에 생일 선물로 받은 새 승용차를 강물에 빠뜨린 사건 현장.(사진 cartoq)
인도 매체에 보도된, 홧김에 생일 선물로 받은 새 승용차를 강물에 빠뜨린 사건 현장.(사진 cartoq)

어느 나라에나 사회 양극화social polarization 현상은 존재한다. 필자는 인도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눈으로만 봐도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도는, 잘 사는 사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잘 살고, 그에 비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 있다. 새 자동차를 강물에 버린 그 청년은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할 조건이 많고 누구 못지않게 행복할 수 있을 텐데, 그의 행동에서 미루어볼 때 감사는커녕 불평과 불만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자녀에게 재산과 함께 가치관도 물려주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을 원한다. 대부분은 지식을 습득하고 스펙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원하는 것을 얻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는 없으며 모든 것을 다 하며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도 하지만 욕구를 절제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사람은 늘 불만족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 인도 청년의 아버지는 돈으로 자식을 키웠지, 욕구를 다스리는 법이나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못했다. 설령 부모가 재산이 많아서 자식에게 그 재물을 물려주더라도 올바른 철학과 가치관을 함께 물려주지 않으면 결국 자녀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부모도 고통스럽고 불행해진다.

커진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면 교만해지고,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 청년을 생각하면 ‘한 번 더 생각하고, 달리 생각할 수는 없었나? 그 정도밖에 생각을 못했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상삼요桑三搖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과 관련한 ‘상삼요桑三搖’의 고사 역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 몽골족을 몰아내고 한족이 명나라를 세워 초대 황제가 된 주원장에게는 아끼는 두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부인이자 황후인 마수영馬秀英이다. 마 황후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으며 책을 좋아하고 성품이 인자했다. 그녀는 걸식하던 주원장을 거두어주었던 홍건적 대장 곽자흥郭子興의 양녀였다. 그녀는 주원장과 결혼하여 남편에게 교양을 가르치기도 했고, 고락을 함께했다. 황후가 되었어도 여전히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백성을 사랑했다. 옷이 낡아도 기워서 입었고 흉년이 들면 푸성귀를 먹으며 백성이 겪는 어려움에 함께했다. 공주와 후궁들과 직접 옷을 만들었고, 어렵게 사는 백성들에게 만든 옷을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신하와 온 백성으로부터 진정한 국모라는 칭송을 받았다.

주원장은 인물도 못 생기고 다혈질에다 잔인한 황제였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다. 마 황후는 뛰어난 지모智謀로 황제를 잘 내조하여 ‘내조의 여왕’이라 불리며,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국모로 손꼽히고 있다. 주원장도 조강지처였던 마 황후를 끔찍이 아꼈고, 그녀의 건의는 무조건 받아들였다고 한다. 훌륭한 아내였던 마 황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폐하께서는 널리 현자를 구하여 간언을 받아들이고, 국가를 처음 세웠을 때의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 황후의 죽음 앞에서 주원장은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한다. 그리고 황후의 자리를 영원히 비워두어 아내와의 정리情理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원장이 아끼는 또 한 사람은 갖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개국공신 상우춘常遇春이었다. 상우춘은 정승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잘 보여주는 ‘상삼요’ 고사와 관련된 명나라 태조 주원장(홍무제)의 초상. (사진 위키피디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잘 보여주는 ‘상삼요’ 고사와 관련된 명나라 태조 주원장(홍무제)의 초상. (사진 위키피디아)

어느 날 황제, 황후, 정승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가 주원장이 “우리 셋은 이미 인생의 뜻한 바를 모두 이루었소. 황제가 되고 황후가 되고 정승이 되었소. 이제 더 무슨 욕망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아직 무슨 욕망이 남아있는지 서로 속마음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의 말이 참이라면 저 뜨락의 뽕나무가 분명 흔들거릴 것이오.”하니 모두 찬성했다.

먼저 주원장이 말했다. “나는 옥황상제 다음가는 천자天子가 되었으니 사람으로서의 영광과 욕심을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내 앞에 빈손으로 오는 신하보다는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신하를 대할 때 더 흐뭇하고 기쁜 걸 보면,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뜨락의 뽕나무가 크게 흔들거렸다. 

주원장과 고난을 함께 해온 조강지처요 현숙한 국모였던 마 황후는 “나는 여자로서 남편이 황제이고, 나 또한 황후가 되었으니 부족함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조회 때 만조백관이 들어선 가운데 건장하고 잘 생긴 젊은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쏠려 저러한 사나이를 한 번 가까이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하니 뽕나무가 또 한 번 크게 흔들거렸다.

마지막으로 상우춘이 말했다. “폐하의 은덕을 입어 벼슬이 재상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황제만이 윗사람인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폐하가 앉아계신 용상龍床에 한 번 앉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번에도 뽕나무가 크게 흔들거렸다. 이로부터 뽕나무가 세 번 흔들거렸다 해서 ‘상삼요桑三搖’라는 말이 나왔고, ‘그 욕심에 뽕나무도 흔들겠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타인의 위에 올라서서 남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욕, 이성에 대한 욕망, 재물을 향한 탐욕이 끝이 없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욕구를 잘 다스리고 절제하면 화를 면하지만, 이것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사람은 욕구의 종이 되어 불행하게 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욕구의 노예’가 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미련한 삶을 종종 살고 있다.  

어느 선교사의 아름다운 아내 

얼마 전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선교사의 페이스북에서 짧지만 감동적인 글을 읽었다. 그는 아이티에서 선교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누명을 뒤집어 쓴 채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아내가 유산을 했는데 돈도 없고 갈 만한 병원도 없어서 엉엉 울기도 했었다. 장티푸스에 걸려 한 달 만에 체중이 12kg이나 빠졌고, 풍토병에 걸려 숨을 헐떡이는 딸아이를 붙잡고 밤새 울며 기도하기도 했었다. 

운전하고 가다가 갱단에게 수십 발의 총격을 받아 정말 죽을 뻔도 했다. 얼마 전 복음을 전하다가 무장한 갱들에게 납치를 당해 14일 동안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다가 석방되었다. 지금은 도미니카로 옮겨 새로 선교를 시작했다. 그런 그가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말 감동적인 글이었고, 선교사의 아내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에 에워싸여 있는데도 그걸 볼 만한 눈이 없어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얼마든지 절망하고 포기할 형편에 처해 있는데도 기쁨과 소망 속에서 산다. 참된 행복은 욕구의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욕구를 다스리고 절제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마음이 부하고 높은 사람은 어딜 가도 만족이 없고, 마음이 낮은 사람은 어디를 가도 행복과 감사에 젖어 산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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